[신간] '철학하는 무용가' 김윤정의 '펜으로 쓰는 춤'
[신간] '철학하는 무용가' 김윤정의 '펜으로 쓰는 춤'
  • 조일하 기자
  • 승인 2023.06.30 16: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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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으로 쓰는 춤' 표지 (사진제공=오렌지디)

[더프리뷰=서울] 조일하 기자 = 재독 안무가 김윤정의 예술과 인생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집 <펜으로 쓰는 춤>이 오렌지디에서 출간됐다. 그동안 인터넷신문 <더프리뷰>에 연재했던 글들에 새로운 글들을 추가, 한 권의 단행본으로 묶었다. 

저자 김윤정은 한국에서 현대무용을 전공한 후 유럽으로 건너가 활동해왔으며 ‘철학하는 무용가, 사유하는 예술가’로 불린다. 본업인 공연예술뿐만 아니라 문학, 철학, 미술 등 인문학과 예술 분야에도 해박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사상가와 예술가에게서 받은 영감과 끊임없는 고뇌를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온 저자는 예술과 우리의 삶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무엇이 나를 춤추게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고자 시작되었다는 글쓰기는 예술을 창작하고 향유하는 안무가의 삶, 타국에 사는 이방인의 삶을 그린다. 공연예술에 대한 성찰에서부터 세계 여행기, 문화 감상록에 이르는 다채로운 글들은 때로는 기분 좋은 유쾌함을, 때로는 진지한 사유를 건네며 독자들을 지적인 사색의 세계로 이끈다.

예술은 삶이 힘들 때 더욱 빛을 발한다. 예술이 모든 인생의 질문에 답을 줄 수는 없지만, 우리의 일상을 구원할 수는 있다. 살다 보면 시시때때로 부딪히는 난제를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이 책은 예술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자기다운 삶의 모습을 찾아 일상을 사소한 행복으로 채우다 보면 진정한 삶의 완성에 이르게 되지 않겠느냐는 답을 제시한다.

공연예술가의 눈, 이방인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

- 예술과 인문학이 만나는 지적인 사색의 기록

<펜으로 쓰는 춤>은 안무가이자 공연예술가의 시선에 비친 일상을 담은 에세이다. 예술과 인생에 대한 고찰, 세계 각국을 여행하며 쓴 진솔한 여행기와 인상 깊은 예술/문화 작품에 대한 감상은 일상에서 예술을 발견하는 일의 즐거움을 일깨운다.

첫 번째 장은 인생에서 예술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공연예술가에게 ‘무대’가 지니는 의미와 예술에 주어지는 상에 대한 단상부터, 독서와 공연을 통해 인생의 의미를 찾아가는 일화들은 예술이 인생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려준다.

두 번째 장에서는 무대를 바깥으로 옮겨 독일살이와 여행기를 다룬다. “독일에서도 한국에서도 늘 아웃사이더로서의 삶에 익숙하다 보니, 어디를 가도 관찰하고 영감을 받는 것이 나의 정체성이 되어버렸다”라는 저자는 20년 넘게 이방인으로 살면서 겪은 경험을 털어놓는다. 또한 공연을 위해, 개인적인 여행을 위해, 친구를 만나기 위해 떠난 수많은 여행은 내면을 한 뼘씩 성장시켰음을 스스로 발견한다. 새로운 세계와의 조우 역시 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한다.

마지막 장은 저자에게 영감을 준 전시와 영화, 문학 작품에 대한 감상록이다. 쿠사마 야요이, 페데리코 펠리니, 파스칼 키냐르, 페르난두 페소아, 버지니아 울프 등 유명 작가들의 작품에서 건져 올린 사유의 결과물은 저자의 유연하면서도 단단한 문장이 만들어진 과정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펜으로 쓰는 춤>에는 한결같이 삶을 예찬하는 긍정의 힘이 있다. 삶에서 피할 수 없는 사랑, 죽음, 만남과 이별을 말하면서도 비관이 아닌 긍정주의를 견지하는 태도는 우리에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위로와 용기를 준다. “내일, 아니 한 시간 뒤, 10분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우리는 모르기 때문”에 “매 순간 하고 싶은 말과 감정을 표현하고 살아야 한다”라는 저자의 말은 그래서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펜으로 쓰는 춤> 저자 김윤정
(c)진나연
(사진제공=오렌지디)

김윤정

안무가, 공연예술가. 수원대학교 무용과를 졸업한 후 이화여자대학교 예술대학원에서 현대무용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유럽으로 건너가 아시아인 최초로 네덜란드 아른험 예술대학에서 무용으로 디플롬을 받았다. 독일 주정부의 지원으로 첫 작품 활동을 시작한 후 미국, 러시아, 영국, 일본 등 전 세계 페스티벌에서 공연을 펼치며 현지 평론가들로부터 “춤 안에서 명확히 표현되어야 할 자신만의 언어를 알고 있는 안무가”로 인정받았다.

2001년 독일 푀르데룽 프라이스 후보에 올랐으며, 2006년 〈닻을 내리다〉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선정 올해의 예술상, 2007년 〈베케트의 방〉으로 무용예술상 작품상, 2018년 〈인터뷰〉로 한국춤비평가협회 작품상을 수상했다. 〈그런데 사과는 왜 까먹었습니까?〉로 2021년을 빛낸 안무가상과 한국춤비평가협회 베스트 6 작품상에 선정되었다. 예술의 전당과 LIG아트홀, 나비아트센터에서 공연을 제작했으며,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와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시댄스) 등 많은 축제에 참가했다.

현재는 YJK 댄스 프로젝트 대표로 활동하면서 다양한 무용 장르를 해체하고 조합하여 새로운 언어로서의 춤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추천사

나는 김윤정을 ‘철학하는 무용가’라고 부른다. 늘 바쁘게 몸을 써야 하는 무용가에겐 책 한 권 읽는 일도 쉽지 않다는 현실을 감안하면 이러한 지칭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여기에 연륜까지 더해져 충분한 여유를 가지고 삶과 예술을 들여다보는 그녀의 글은 만만치 않은 지적 사유의 저력을 느끼게 한다. 인생의 즐거움과 괴로움, 과거에 대한 반추를 거쳐 미래로 나아가는 삶을 아우르는 이야기는 귀에 익은 노랫소리처럼 편안하게 들려온다. 이종호(유네스코 국제무용협회 한국본부 회장, ‘더 프리뷰’ 편집인)

인간의 가장 오래되고 진실된 언어는 ‘춤’일 것이다. 살면서 보고 듣고 읽게 되는 것들을 ‘언어’로 안무한 <펜으로 쓰는 춤>은 어디를 펼쳐 읽어도 자유롭고 자연스럽다. 예기치 않은 것들이 주는 즐거움, 뜻밖의 여행과 문득 건네는 사유 그리고 느낌표를 단 질문들까지, 그녀의 넘치는 활력의 리듬에 저절로 발이 맞춰진다. 노영심(작곡가)

김윤정은 매우 똑똑하다. 지적이고 상냥하며 진중하다. 예술가로서 확실한 철학과 신념이 있으며, 많이 알지만 가르치려 하지 않고, 깊이가 있지만 지루하지 않다. 그녀는 이 책에서 무용, 미술, 문학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춤추듯 그려냈다. 그녀를 통해 나의 예술적 세계관이 더욱 넓어지고 깊어질 수 있었듯, 부디 여러분의 세계도 그렇게 확장되길 바란다. 팝핀현준(공연예술가)

■ 본문 중에서

무대의 또 다른 매력은 완성되지 않는 우리의 진짜 인생과는 다르게 무대는 완성으로 끝나야 한다는 것일 것이다. 인생은 마지막 눈을 감는 순간까지 완성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언제나 진행형이다. 우리는 인생 전체를 소유하거나 통제하지 못하고 따라서 인간의 삶 속에 진정한 완성이란 있을 수 없지만,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은 약속된 시간과 공간 안에서 끝을 맺는다. _「‘무대’라는 세상은 무엇인가」, 20쪽

요즘에는 평소 관심이 없던 분야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읽으면 읽을수록 아는 것들은 적어지고 모르는 것들이 늘어난다. 너무 신기하고 새롭다. 새로운 세상은 점점 더 나를 비우며 모름의 공간을 늘려준다. 나는 나라는 사람이 이렇게 작아지고 작아져서 한 점이 되고 단순해지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면 너무 멋질 것 같다는 공상도 해본다. _「나를 언어로 규정하기」, 38쪽

희망은 인생의 중요한 동기가 되지만 때로는 극복해야 하는 대상이기도 하다. 희망 없이도 행복할 수 있는 삶이야말로 얼마나 실존적인가 말이다. _「여자들의 수다」, 181쪽

나는 어느 순간부터 주변의 죽음들을 마주하며 죽음을 직시하게 되었고, 죽음을 모르고 삶을 산다는 것은 허상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일 죽으면 오늘의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그 결정을 하지 않는다면 그저 일상을 따라 시간이란 물결에 떠밀려 결국 죽음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_「햇살 예찬, 죽음의 사유」, 248쪽

가을은 왠지 고독해도 될 것 같은 계절이다. 가을에는 불행 속에 빠져들어도 되는 특권을 부여받은 듯하여 마음껏 불행해진다. 기왕이면 매우 근원적이면서도 시작도 끝도 없는 심연 속으로 빠져드는 불행이었으면 하는 열망에도 빠진다. 불행하고 싶은 열망이라니! 가당치 않은 소리 같지만 우리에게 가을이 없었다면 이 불안함에, 이 고독에 기댈 근거가 없었을 테니 얼마나 다행인가. _「가을날, 프랑스 영화, 다가오는 것들」, 2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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