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부천에서 축포를 쏘아올린 KBS 교향악단
[공연리뷰] 부천에서 축포를 쏘아올린 KBS 교향악단
  • 박제성 음악칼럼니스트
  • 승인 2023.07.01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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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 KBS포스터 (사진제공=)
부천 KBS교향악단 연4주회 포스터 (사진제공=부천아트센터)

[더프리뷰=서울] 박제성 음악칼럼니스트 = 6월 25일 부천아트센터 콘서트홀. KBS 교향악단의 연주를 부천아트센터 콘서트 홀에서 듣노라니 지금까지 예술의 전당이나 롯데 콘서트 홀, 아니면 KBS 홀에서 듣던 교향악단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오케스트라를 듣는 듯했다. 정확한 음상과 자연스러운 다이내믹 레인지는 물론이려니와, 합주시 모든 파트가 거의 균등한 밸런스로 들릴 뿐만 아니라 음색이나 디테일까지도 손에 잡힐 듯 들릴 정도였다. 음향의 측면 외에 전임 예술감독인 요엘 레비의 여전히 막강한 리더쉽도 한 몫한 듯하다. 악장을 비롯한 몇몇 수석들과 함께한 레비는 특유의 단호한 박자감각과 흔들림을 허용치 않는 파트별 밸런스와 합주력을 바탕으로 음악의 세부 디테일과 전체의 구조 모두를 집요하게 살려냈기 때문이다.

최근 교향악단의 연주회들을 일별해 보면 지휘자에 따라 그 완성도에 있어서 얼마간 편차를 보이곤 했는데, 레비의 지휘봉 아래에서 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최상의 기량을 선보이며 부천아트센터 개관 기념 연주회로서의 훌륭한 음악적 완성도를 보여주었다. 그가 상임으로 활동하던 당시에는 상당히 많은 연주횟수 때문에 그의 해석과 스타일이 조금 진부하게 다가왔던 것도 사실이지만, 이렇게 오랜만에 등장한 덕분에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온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 2023년에 관람한 KBS 교향악단의 상반기 연주회들 가운데 마렉 야노프스키의 지휘와 더불어 최고의 연주로 손꼽을 만하다고 자신한다.

기돈 크레머(좌측) 요엘 레비(우측) KBS교향악단 (사진제공=부천아트센터)
기돈 크레머(좌)와 요엘 레비(우). (사진제공=부천아트센터)

첫 곡으로 연주한 바그너 <탄호이저> 서곡. 바그너 전문 지휘자들의 연주처럼 관능적이거나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레비의 정확한 비팅과 균형감 두드러지는 음향 밸런싱 덕분에 악보를 보듯 음악의 모든 파트들이 강건한 구조 안에 펼쳐졌다. 더군다나 홀 특유의 스튜디오 모니터적인 음향에 힘입어 현악 파트의 그 현란한 핑거링들과 바쁘게 움직이는 보잉이 손에 잡힐 듯 또렷하게 보였을 뿐만 아니라 목관 파트들의 탁월한 활약과 적절한 표현력의 대화가 선명하게 그려졌다. 이후 이 날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기돈 크레머 협연의 슈만 <첼로 협주곡>이 이어졌다. 지난 2014년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와의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이후 한국에서는 두 번째로 연주하는 크레머의 고전 협주곡 연주인 만큼 지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슈만은 그가 가장 즐겨 연주했던 작곡가 가운데 하나로, 바이올린 협주곡 뿐만 아니라 바이올린을 위해 편곡한 첼로 협주곡 또한 그의 메인 레퍼토리. 오자와 세이지와의 레코딩(DG)은 쇼스타코비치 편곡인 반면 이번 연주회에서는 요제프 요아힘을 위해 슈만이 직접 편곡한 버전이라 더욱 큰 호기심을 자아냈다.

기돈 크레머(좌측) 요엘 레비(우측) (사진제공=부천아트센터)
기돈 크레머(좌), 요엘 레비(우). (사진제공=부천아트센터)

여전히 어딘지 어눌한 듯한 자세로 연주를 시작한 크레머는 한 음 한 음 진중하게 짚어가면서 나이를 무색케 하는 음악적 흡인력과 호소력을 발산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보면 첼로보다 바이올린으로 연주하는 것이 훨씬 감각적이고 스케일도 크게 느껴질 정도로 크레머는 첼로와는 또 다른 스토리 텔링과 새로운 의미 부여로 독창적인 동시에 격정적으로 음악을 이끌어 나아갔다. 이번 연주의 백미로 2악장을 손꼽을 수 있을 텐데, 크레머의 사색적인 뉘앙스와 독보적인 음색 컨트롤도 역시 거장의 솜씨임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이를 뒷받침하며 나름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이어간 레비와 KBS 교향악단의 역할 또한 크레머에 못지 않았다. 마지막 3악장에서는 크레머의 고음역이 만들어내는 개방감과 리듬의 호방함 또한 첼로 버전에서 전달받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큰 임팩트로 다가왔다. 금관이나 하프가 추가된 쇼스타코비치 편곡과 다르게 원곡과 같은 오케스트라 편성인 만큼 슈만이 의도한 음향이 잘 드러남과 동시에 크레머의 원숙함이 음악 이상의 커다란 감동을 얹어준 명연의 순간이었다. 앙코르로 크레머가 연주한 우크라이나 작곡가 실베스트로프의 <세레나데 – 알레그레토 콘 모토>의 그 비애감은 현재 우크라이나가 처한 상황을 대변하는 듯하여 또 다른 내적 울림을 안겨주기도 했다.

기돈 크레머 (사진제공=부천아트센터)
기돈 크레머 (사진제공=부천아트센터)

2부에 등장한 스트라빈스키의 <불새>는 레비가 상임일 당시 훌륭한 연주를 보여주기도 했던 만큼 이번에는 어떤 연주를 들려줄지 기대가 높았다. 처음부터 미묘한 현악 파트의 긴장감을 바탕으로 바순과 오보에 같은 목관악기들이 신비한 음향을 선보이기 시작, 불새가 등장할 무렵 바이올린 파트의 날렵한 스케일과 강렬한 어택, 목관(특히 플루트)의 짜릿하면서도 관능적인 울림, 혼과 금관의 풍부하면서도 기민한 호흡이 어우러지며 시청각적인 감수성을 쉼 없이 자극해 나아갔다. 마치 발레를 직관하는 듯 캐릭터의 동선과 표현이 고스란히 살아나는 듯한 해석을 선보인 레비는 특히 무곡적인 멜로디가 등장할 때 이전 연주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정확한 디테일과 진행을 강조한 것이 돋보였는데, 불새와 왕자가 함께 하는 장면에서의 음향적 효과가 불러일으키는 시각적 인상은 대단히 훌륭했다. 카쉬체이와 부하들의 군무 장면의 교향악적인 스펙터클함은 너무나 강력했는데 홀의 특성 덕분에 콘트라바순부터 피콜로, 혼에서 타악기에 이르는 모든 파트가 선명하게 포착된 탓에 기대 이상의 쾌감과 만족감을 얻을 수 있었다.

러시아적인 색채와 동화로서의 전설적인 색감, 무곡으로서의 박진감과 작곡가 특유의 현란함 모두가 완벽에 가깝게 재현된 이 날의 연주는 마지막 결혼식 장면의 장대함까지 일체의 흐트러짐 없이 진행되어 청중의 가슴 벅찬 갈채를 이끌어냈다. KBS 교향악단의 다음 부천아트센터에서의 연주회가 손꼽아 기다려진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비평활성화 사업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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