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애들레이드에서 만난 열정적인 독립무용가 리나 리모사니
[공연리뷰] 애들레이드에서 만난 열정적인 독립무용가 리나 리모사니
  • 김혜라 무용평론가
  • 승인 2023.08.03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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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mosani Projekts
호주 리모사니 프로젝트의 'BÁRBAROS' (사진제공=리모사니 프로젝트)

[더프리뷰=서울] 김혜라 무용평론가 = 호주 애들레이드(Adelaide)에서 독립 무용단으로 활동하는 리모사니 프로젝트(Limosani Projekts)의 <BÁRBAROS> 공연 현장에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시댄스) 프로그래머로 참관을 했다. 안무가 리나 리모사니(Lina Limosani)의 홈페이지에 소개된 작품 영상(https://vimeo.com/699766401/0d633bf879?share=copy)이 상당히 강렬하여 본 공연이 기대가 되었다.

애들레이드 중심가에 위치한 애들레이드 페스티벌 극장 50주년 기념으로 <BÁRBAROS>(6월 29일-7월 1일)는 야심찬 협업의 산물로 관객을 맞이했다. 춤 공연에서 무대장치와 음악은 오래된 동반자이다. 이색적인 협업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고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있을까 싶지만, 독창적인 예술가들의 발상은 관객들의 상상력을 어김없이 자극한다. <BÁRBAROS>도 무대 장치의 활용도와 디자인이 독특했다. 근래에 한국도 공격적으로 타 장르와 협업을 하며 작품의 의미망을 폭넓게 지지하며 확장시키고 있다. <BÁRBAROS>도 다소 정치적인 소재를 다루는 데, 무대장치와의 창의적인 협업으로 작품의 의도가 입체적으로 조명되었다.

‘BÁRBAROS’ (사진제공=리모사니 프로젝트)

‘BÁRBAROS’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작품은 ’야만‘에 대한 정의와 현재적인 의미를 재고하고자 한다. 안무가는 미디어에 노출된 야만성과 관련된 이미지에 의문을 갖고 작업을 시작했다. 흔히 스스로 문명인, 문화인이라 자부하는 사람들이 이방인을 대하는 인식에 대한 문제의식이랄까. 다시 말해 자신들의 기준에만 맞춰 미개와 야만을 구분하는 행동과 습성이 실제로 더 야만적인 것이 아닌지를 추적한다. 무대 중앙에 자리한 성(castle) 같은 장치물은 정복자의 시선에서 보면 이방인이자 야만인을 정복한 성과이다. 여성 무용수는 성 아래 주변에서 낮은 자세로 오가고, 또 다른 남성 무용수는 성 위에서 주변을 살핀다. 서로 다른 공기에서 살고 있는 이질적인 사람들의 모습으로 극명하게 비교된다.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하는 과정을 묘사하는 미개한 분위기가 엿보이다 서로는 꽤나 거칠고 팽팽한 힘 대결로 대치한다. 구체적인 서사전개는 아니나 쉽게 역사적이고 모순투성이인 식민지 쟁탈 억압을 떠오르게 한다. 정복자는 총을 쏘거나 칼로 위협하는 행위를 하다가 갑자기 핸드폰을 꺼내는 몸짓을 한다. 과거와 현재적 시공간이 뒤섞여 맥락을 명확하게 짚을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격양된 무용수들의 힘겨룸이 작위적이지 않고 진지하고 실제적이다. 극한의 서바이벌 현장과 닮아 있으나 반면 무대 뒤 벽면에는 성의 그림자가 비치고, 사운드의 울림(echo) 진폭이 강해지며 봉합되지 않은 상처가 드러나듯 멜랑콜리한 분위기가 형성된다. 시종일관 무용수들 간의 직접적인 갈등 양상은 개인의 심상으로 파고드는 여정으로 회항한다.

‘BÁRBAROS’ (사진제공=리모사니 프로젝트)

인간 내면에 양립하는 본능과 지성, 소위 야만과 문명이란 개념의 실체와 경계를 가시권으로 명료하게 표현하기가 쉬운 일인가. 난해할 수 있는 개념을 안무가는 융의 무의식에 근거하나 이해하기 용이한 연극적인 방식으로 실타래를 풀어낸다. 검정 의상을 입은 익명의 퍼포머가 두 무용수의 심리적 갈등을 매개하며 문제의식을 감당한다. 이러한 관계설정이 뻔해 보이기도 하지만 내면에 공생하는 다면적인 습성이 요동치는 형상으로 잘 읽히기는 했다.

‘BÁRBAROS’ (사진제공=리모사니 프로젝트)

또한 작품은 무대장치의 다양한 활용으로 협업의 긍정적인 면모를 검증했다. 오브제로서 역할을 잘 감당했던 성의 형상이 여성의 승리로 견인되어 의미가 확장된다. 견고했던 성의 모습이 여성의 드레스로도 보이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처럼 장치를 적극 활용한 부분이 매력적이나, 훈련된 근육과 몸이 부딪히며 생성 및 교류되는 긴장감과 몰입감이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다. 변화무쌍한 무대장치와 에너제틱한 춤에 관객은 아마도 자연스럽게 작품의 의미를 되짚어 볼 가능성이 높다. 힘을 가진 자의 논리로 기울어진 ‘야만성’의 의미가 과연 온당한지, 혹은 각자의 해석대로 말이다.

공연 다음날 안무가 리나, 기획자 데이비드와 함께 작품부터 애들레이드의 창작환경까지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먼저 리나는 컨템퍼러리 퍼포먼스에 주력하며 시각적인 요소와 파워풀한 움직임이 창작의 주요 메소드라고 했다. 그녀는 자신이 무용수로 있었던 무용단(격렬하고 피지컬한 요소가 특화된 단체인 개리 스튜어트Garry Stewart의 ADT-Australian Dance Theatre의 창단 멤버였다)에서 섭렵한 방식을 바탕으로 여러 장르와 교류하며 개념을 확장해 왔다.

'BÁRBAROS' (사진제공=리모사니 프로젝트)

무용단이 세 개 밖에 없는 애들레이드에서는 대부분이 독립 예술가로 활동을 한다고 한다. 따라서 지원금의 유무에 따라 작업이 진행되거나 멈추기도 하는데, 그 과정이 모두에게 쉽지 않은 것 같았다. 독립 예술가로서의 삶이 녹록치 않은 것은 한국이나 호주나 마찬가지이다. 일반적으로 지원금을 받기 위해서는 서류작업에만 석 달이 걸리고, 결과를 알기까지 1년, 최종 자금을 받기까지 거의 3년이 소요된다니 한국에 비해 훨씬 더 인내심이 요구된다. <BÁRBAROS>도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 정부의 지원을 받았고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3년이 걸린 셈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세 군데 이상 축제에서 초청을 받게 되면 이런 유예기간 없이 지원금 수령이 빨라진다고 한다. 호주의 큰 축제인 멜버른 축제 외에도 다른 나라로 진출하고자 하는 의지와 동기가 또렷해 보였다. 그렇기에 시댄스를 비롯하여 여러 축제 관련자를 초정하여 자신을 적극적으로 어필하지 싶었다. 새로운 작품을 구상하고 있다고 넌지시 짧은 영상으로 보여준 차기작도 17세기(?) 동화를 각색한 작업으로, 의상과 디자인이 무척 이국적이었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것은 주도면밀한 무대장치의 제작이다. <BÁRBAROS>에서 사용된 장치도 극장만이 아니라 갤러리나 열린 장소에서 사람들에게 공유되도록 입체적으로 만들었다. 이를테면 백스테이지 개념 없이 공연 후에도 작품을 만져보거나 안으로 들어가는 체험 가능성까지 고려하고 있었다. 거대해 보이는 유럽의 성 같은 장치가 실제 공연 중에 만신창이가 되는 데, 이 또한 종이 한 장으로 쉽게 대체 가능하게 디자인되었다. 장소와 이동에 따른 제한까지 계산하여 레퍼토리의 국내외 유통 가능성을 열어 놓은 것이다. 문화는 다르지만 예술가들의 열의는 비슷함을 느끼게 해준 인터뷰였다.

'BÁRBAROS' (사진제공=리모사니 프로젝트)

시드니나 멜버른과는 달리 별달리 아는 바가 없었던 애들레이드를 둘러보는 것도 공연 못지않게 설레는 일이었다. 호주에 있는 7개 주 중에서 애들레이드는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 주도로 대략 인구 130만이 사는, 크지 않은 도시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 호주는 영국의 식민지로 죄수들을 보내면서(그 전에는 미국으로 보냈으나, 미국이 독립을 하며 호주로 보냄) 만들어진 나라이다. 반면 수많은 식민도시 중에서도 애들레이드는 당시 죄수들이 아닌 자유 이민자들이 정착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도시라는 점이 특징이다. 그래서인지 1마일 반경의 정사각형 센터와 이를 둘러싼 공원들로 구획된 점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도시 초창기부터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었고, 세계대전 이후 여러 나라와 배경에서 자유를 향해 사람들이 모여든 곳이 애들레이드인 셈이다. 초기부터 이민을 받아들인 애들레이드는 종교박해를 피해 이민해 온 독일인들이 들여온 포도나무로 바로사 밸리에서 와인 제조의 기초를 다졌고, 현재 호주에서 가장 유명한 와인 생산지가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현재까지도 이어져 애들레이드 시민들은 '프리 피플(free people)'이란 자부심을 갖고 산다고 한다.

한 시간 정도면 둘러볼 수 있는 애들레이드 중심가는 작지만 인터내셔널 대학들(애들레이드 대학교, 플린더스 대학교,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 대학교)이 도시 중심에 위치해 길거리에서 각국의 젊은 학생들을 볼 수 있었다. 나라와 도시들을 비교적 많이 가본 필자로서도 다른 도시와는 비교불가로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 있어 이민자들의 나라임을 실감했다. 활기찬 에너지와 다양성 말고도 우리나라보다 시차가 30분 빠르나 계절은 정반대여서 초겨울의 날씨가 꽤나 매력적이었다. 또한 영국의 옛 건축물, 도로명, 우측 운전석까지 영국과 흡사했다. 그래서인지 영국의 높은 물가를 닮아 한국에 비해 모든 것이 비싸게 느껴졌다. 심지어 맥도널드 커피까지도 말이다. 목축업이 발달되어 있어 우유 생산량이 많고 다양하여 플랫화이트를 시킬 때마다 우유 종류를 선택할 수 있는 소소한 재미도 색다른 경험이었다.

호주는 땅이 굉장히 넓지만 대부분이 사막이라 사실상 사람이 살 수 있는 지역은 한정되어 있다고 한다. 대부분의 도시들은 바다와 가까운 물이 있는 곳에 위치해 있고, 도시 간 이동이 오래 걸리는 지리적 요인이 있다. 그래서인지 국제선보다는 국내선 공항이 더 발달되어 보였다. 다소 놀라운 점으로, 주말이나 공휴일에 일하는 직원들에게 정부에서 의무적으로 10-15%의 추가 급여를 지급하는 것이 생소했다. 짐작하건대 최근에 생긴 정책이 아닌가 싶다. 물론 그 비용은 업주가 아닌 소비자의 몫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는 갈수록 일할 사람이 줄어든다는 반증이기도 하고, 하여 워킹홀리데이로 다른 나라보다 손쉽게 외국인에게 개방적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자유와 개방의 이미지와는 달리 의외로 술에 대한 정책이 꽤나 까다로운 점이 아이로니컬하다. 우리 같이 편의점에서 손쉽게 맥주 한 캔을 살 수도 없었고, 길거리에서 마실 수도 없었다. 지정된 허가증이 있는 곳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평화로워 보이는 낮과는 달리 밤이 되면 거리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과 실랑이를 하는 경찰의 모습을 매일 보게 되었다. 예전에 많은 총기사고가 있었고 이후 이를 국가 차원에서 회수해 현재는 총기사고가 거의 없는 것처럼, 술로 인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강하게 관리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은 감정이 사로잡힐 만큼 온 몸으로 감각하고 지각하는 리얼한 무대이다. 호주의 중진 독립 안무가인 리나와의 만남도, 새로운 도시 탐색도 공연만큼 즐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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