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무용 다시보기-12] 완벽주의자가 선택한 안무 '보살춤'
[신무용 다시보기-12] 완벽주의자가 선택한 안무 '보살춤'
  • 유화정 무용이론가
  • 승인 2023.08.01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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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프리뷰=서울] 유화정 무용이론가 = 두손 모아 합장하고 옅은 미소로 정면을 직시한다. 그림처럼 고정된 자세가 지속되다가 일순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환한다. 턱은 들고 시선은 내리고, 측면으로 살짝 기대어 몸통과 다리를 단단히 꼰다. 숨을 멎은 듯 정지했다가 또 다시 전환되는 자세. <보살춤>의 매력은 진중하고 묵직한 호흡으로 시작되는 듯, 그러나 뜻밖의 경쾌한 리듬으로 진행되는 의외성에 있다. 기본 틀은 정지와 변화인데, 정지된 자세 다음에 진행되는 움직임은 어쩌다 얻게 된 우연의 결과가 아니라 수십 번의 시도를 거쳐 찾아낸 완벽주의자의 해답이다. 자신의 기준에서 가장 흥미롭고 아름다우며 독창적인 방식을 선택하여 일궈낸, 이른바 '전략형' 춤인 것이다.

'보살춤'(출처: Judy Van Zile, 2001, Perspectives on Korean Dance, Wesleyan University Press, p.194)
'보살춤' (출처: Judy Van Zile, 2001, Perspectives on Korean Dance,
Wesleyan University Press, p.194)

<보살춤>(1937년 최승희 초연, <보현보살>)은 불교의 보살 이미지에 역동성을 더해 창안한 춤으로, 신무용가 최승희가 발표한 수많은 무용작품 중 최고의 인기를 끌었다고 일컬어진다. 당시 미국, 유럽, 중남미 순회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최승희의 안목은 더욱 넓고 깊어졌다. 해외의 관객이 자신에게 어떤 춤을 원하는지 선명해졌고, 세계의 무희로서 성공가도를 달릴 수 있는 이정표가 눈앞에 떠올랐다. 그녀는 조선과 일본 팬들로부터 칭송받는 모던한 무용가에서 그치지 않을 생각이었다.

“세계 공연에서 춤으로 호평을 받은 것은 동양적인 것이었다. 비평가들 중엔 서양 춤을 추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동양의 문화, 동양의 색채와 같은 냄새를 띤 동양 춤을 추는 것이 좋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무용가들이 구미공연을 하고 돌아오면 서양 춤을 하고 돌아오는 것이 보통인데 나는 반대로 동양 춤을 수입해 왔다.”(최승희, 1941,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삼천리』, 제13권 1호, p.56)

이후 1942년부터 1943년까지 그녀의 공연 프로그램에 나타난 춤 레퍼토리를 살피면 발레와 모던댄스에 대응할 수 있는 동양무용으로서 <명비곡> <묘정> <패왕별희> <노생> <자금성의 옥불> <칠석의 밤> <아리랑> <석굴암의 벽화> <백제 궁녀의 춤> 등을 발표했음을 알 수 있다. 동방무용 창작의 소재를 찾기 위해 조선, 일본, 중국, 인도의 설화와 사상을 두루 탐색하고 문학, 회화, 조각 등에 묘사된 전통의 예술형식을 무용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보살춤> 역시 조선의 춤도, 중국의 춤도, 인도의 춤도 아닌 새로운 차원의 동양무용으로서 현대적인 무용의 표현기법으로 창안한 순수 예술작품이었다. 동방국가가 공유하고 있는 불교의 이미지를 움직임으로 승화하기 위해 ‘보현보살’ 그림으로부터 영감을 받고, 동양의 예술과 여성의 이미지를 융합하여 춤추는 보살로 재현해낸 것이다. 불교의 교리를 전파하는 종교적 의미로서의 목적보다는 무용의 예술적 표현을 위해 불교의 이미지를 모티프로 차용한 격이다.

보살춤을 추는 최승희의 얼굴, 출처: 정병호, 1995, 춤추는 최승희, 뿌리 깊은 나무, p.143)
'보살춤'을 추는 최승희의 얼굴.
(출처: 정병호, 1995, 춤추는 최승희, 뿌리 깊은 나무, p.143)

‘보살’은 넓은 의미로 '지혜를 가진 사람'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를 뜻하며 구체적으로는 부처의 전생 시절, 수행하던 구도자로서의 부처, 세상에 내려와 중생을 구제하는 성자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즉 열반에 이른 능력을 갖고 있음에도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해 세상에 머물러 있으니, 모든 사람들을 감싸 안을 수 있는 중요하고 성스러운 존재이자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존재이다. 보통 보살의 이미지는 석굴 속 양각 기법으로 제작된 보살상이나 비단에 채색된 그림으로 전해진다. 온화한 눈빛과 은은한 미소, 손가락과 손가락을 만나게 하는 수인(手印)으로 가르침을 전하는 모습은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빠져드는 오묘한 매력을 지녔다. <보살춤>의 무용수 역시 부드럽고 너그러운 표정에 날렵하게 뻗은 손가락으로 보살상의 이미지를 사실 그대로 묘사한다. 보살이 나타내는 수인은 어떤 손가락을 서로 붙이는지에 따라 구체적인 가르침의 메시지를 가지며, 인도의 <카타칼리(Kathakali)> 같은 작품의 경우 퍼포머가 선보이는 모든 움직임이 불교의 교리와 철학을 상징한다. 또 인도에서 전승하는 전통무용의 경우 하스타(hasta)라 불리는 손짓을 사용하여 작품에 내재된 특정 의미를 묘사하는데, 하스타의 상징 해석에 능한 경우 춤을 한 편의 시처럼 읽을 수 있을 정도로 그 어휘가 구체적이다. 그러나 <보살춤>은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선의 아름다움을 위해 손짓을 사용할 뿐 문학적인 어휘로서의 의미는 설계되어 있지 않다. 대신 춤으로서의 본질적인 감각과 미적 자극을 전하는 데 주목하고, 감상자의 주관적인 해석과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여백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최승희가 보살이라는 소재로 춤을 끌어낸 배경을 생각할 때, 오직 한국에서만 여성 불자 모두를 보살이라 부르는 문화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남성 불자는 ‘초야에 묻혀 살고 있는 선비’라는 의미의 ‘거사' ‘처사’로 부르는데 반해 여성 불자는 ‘중생을 구제하는 성자’로서 ‘보살님’이라 부르는 것은 특징적이다. 이에 대해 한 측에서는 조선시대 억불숭유(抑佛崇儒) 정책으로 탄압받던 불교가 으레 관직으로부터 배제되었던 여성들의 지지로 생존할 수 있었음에 여성을 우대하는 호칭이 전해진다고 말한다. 최승희가 창안한 <보살춤> 역시 움직임과 연출 면에서 여성성을 한껏 강조한 작품이며, 관객을 내려다보며 여유롭게 춤을 추는 여성으로서의 보살은 성스러운 존재이자 감히 다가갈 수 없는 경외의 대상으로 비춰진다. 물론 반나체로 상반신과 하반신을 비틀며 추는 춤이 남성 관객의 시선과 요구를 충족시키는 섹슈얼리티로서 소비되기도 하지만 그것은 시대적 한계라고 생각하고 싶다. <보살춤>의 주역인 보살은 여성의 주체적인 활동이 당연시되지 않는 사회에서 세계무대에 당당히 진출하여 자신의 사상을 표현하는 신여성으로서의 최승희 이미지와 맞닿는 지점이다.

안성 청룡사 금동관음보살좌상,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안성 청룡사 금동관음보살좌상.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불가에서 관음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 등 다양한 보살이 존재하는 것처럼 최승희의 <보살춤> 역시 공연하는 문화적 환경과 관객에 따라 변형된 작품으로 발표되었다. 최초 발표된 제목은 <보현보살(普賢菩薩)>(1937)로 순종왕후인 윤비를 위로하는 인정전 공연에서 추어졌으며, 이후 <부처의 기도>(1939), <관음보살>(1941), <보살도>(1941), <보살화신>(1942), <석굴암보살>(1949) 등의 제목으로 추어졌다. 이와 관련하여 1942년 12월 6일의 최승희 독무 공연 팸플릿에 의하면 <보현보살>은 일본 헤이안조 시대의 명화인 <보현보살>에서 얻은 감성을 무용화한 것, <보살화신>은 자비(慈悲) 구세(救世)의 보살이 파계의 지경에 이르러 용으로 변하는 내용의 춤, <가무보살>은 일본 가마구라 시대의 벽화에서 구름 속 보살이 나타나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하고 춤추는 평화로운 모습의 춤, <관음보살>은 불교예술의 극치인 불상의 아름다움을 무용으로 표현한 것이라 전해진다(정병호, 1995, 『춤추는 최승희』, 뿌리깊은 나무, p. 219-220). 현재 전해지는 <보살춤>의 영상과 사진이 제한적이므로 이 모든 작품의 구성과 이미지를 알 수는 없으나 관객의 구미에 맞는 최적의 작품으로 무대에 서는 최승희의 성향과 춤에 대한 태도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보살춤' (출처: 정병호, 1995, 춤추는 최승희, 뿌리 깊은 나무, p.143)
'보살춤' (출처: 정병호, 1995, 춤추는 최승희, 뿌리 깊은 나무, p.143)

한편 최승희는 보살춤의 특징적인 동작을 바탕으로 ‘남방무용기본’을 창안했다. 이는 ‘조선민족무용기본’ ‘중국고전무용기본’ ‘신흥무용기본’을 창안하여 아시아의 모든 무용을 집대성하고 각 무용의 특징에 맞는 훈련체계를 고안하고자 했던 최승희의 야심작 중 하나였다. 이후 한국에서는 이국적인 춤 도입의 일환으로 남방춤이 흥행하였으며, 독무 혹은 이인무로서의 신무용을 대형군무이자 무용극으로 확장시킨 송범의 무용작품들에도 최승희의 <보살춤>과 남방무용기본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불의 희생> 중 ’사사의 춤‘(송범, 1951), <반쟈라>(1953, 송범), <타브라의 리듬>(장추화)의 경우 인도의 집시나 악기를 주 소재로 활용한 작품이며 이후 <별의 전설> <원효대사> <이차돈의 하늘> <신라의 빛> 등 삼국시대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불교 관련 설화를 무용극화한 작품에서 보살이 등장하는데, 최승희가 추었던 <보살춤>의 특징적인 움직임과 이미지가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일본의 미학자인 야나기 무네요시는 조선의 다양한 예술작품에서 드러나는 미적 특징을 ‘비애미’로 설명하는 과정에서 조선예술의 특징은 ‘선(線)’에 있으며 중국 예술의 ‘형(形)’, 일본 예술의 ‘색(色)’과 대응되는 부분이라 말했다. 또 이를 적용하여 최승희의 <보살춤>이 무용수의 신체가 자아내는 선의 아름다움을 극치로 끌어올렸음을 말하는 측도 있다. 그러나 현대의 관점으로 봤을 때 수많은 유형으로 나타나는 예술작품의 특징을 단일한 요소로 취급하는 것이 무리일 수 있고 형, 색, 선은 회화나 조각에서 발견할 수 있는 기본요소이므로 입체공간에서 복합적인 방향, 속도, 무게를 갖게 되는 무용작품을 적절히 묘사할 수 있는 기준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물론 최승희의 <보살춤>에서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매력을 빠르게 추릴 때, 공간상에 섬세하고 날렵하게 그려지는 움직임의 선을 주 특징으로 말할 수는 있겠으나 불교, 보살, 여성의 이미지를 춤으로 녹여내 국내 및 해외의 수많은 관객을 매료시킨 요인은 ‘선’ ‘형’ ‘색’ 모두를 아우르는 리드미컬한 역동성에 있다. 또 상하좌우로 너른 무대 위에서 단 한 명의 무용수가 번쩍이는 의상을 입고 제대로 보이지 않을 만큼 느리고 정교한 움직임을 선보이니 관객의 오감은 한 곳에 집중된다. 그러다 느닷없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관절을 꺾어 완벽한 비율의 포즈를 만들어내면 긴장했던 관객의 감각은 변화의 충격으로 일그러져 탄성이 터진다. 이는 흐르는 물처럼, 불어오는 바람처럼 자연에 순응하며 춤추기를 강조했던 한국 전통의 춤과 대응하는 지점이다. 동시에 포즈와 포즈를 유연하게 연결하는 과정에서 자유로운 여백의 매력을 자아내니 서구의 발레나 모던댄스, 일본의 노, 중국의 경극과는 또 다른 방식의 부드러움과 온화함을 갖춘 한국춤으로서의 매력 역시 지녔다. 즉 어떤 범주의 춤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 최승희의 <보살춤>은 오로지 무용수와 관객 간의 밀고 당기는 감각을 철저히 계산함으로써, 매 순간 꼭 맞는 움직임만을 퍼즐 조각처럼 맞춰 넣은 작품이다. 성공할 수밖에 없는 최상의 조건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유화정 무용이론가
유화정 무용이론가
hjyoo27@gmail.com
이대 무용과 박사. 어릴 적부터 춤춰온 몸의 기억을 머리와 손끝으로 전달해 좋은 글을 쓰고자 한다. 춤추는 사람들의 경계가 해체되는 순간을 포착할 때 짜릿함을 느낀다.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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