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이들이 가는 길이 역사로 남으리라
[공연리뷰] 이들이 가는 길이 역사로 남으리라
  • 김준형 음악칼럼니스트
  • 승인 2023.08.17 14: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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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잉홈 프로젝트 2023
2023 고잉홈 프로젝트 포스터 (사진제공=고잉 홈프로젝트)
2023 고잉홈 프로젝트 포스터 (사진제공=고잉홈 프로젝트)

[더프리뷰=서울] 김준형 음악칼럼니스트 = 8월 1, 2, 3일 롯데콘서트홀. 유서 깊은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비롯해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같은 여름음악축제 관현악단이 음악애호가에게 주는 동경과 매혹은 대단하다. 이들의 연주를 듣고 온 것은 마치 성지순례를 하고 온 신자가 느끼는 감정에 비견할 듯하다. 이런 호사는 누구나 누리지는 못한다. 그렇기에 더욱 특별한 경험으로 다가온다.

언제부터인가 클래식 음악의 본고장에서 활약하고 있는 우수한 한국인 연주자들이 대한민국의 여름 무대를 달구고 있고, 이들의 연주는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한다. 예술의전당(SAC)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발트 앙상블이 대표적인데 2022년 첫 연주를 시작한 ‘고잉홈 프로젝트’는 벌써 그들만의 전통을 확고히 확립한 듯하다.

2023년 8월 1일 고잉 홈프로젝트 (사진제공=고잉 홈프로젝트)
2023년 8월 1일 고잉홈 프로젝트 (사진제공=고잉홈 프로젝트)

첫날은 지휘자 없이 대편성 관현악과 교향곡을 연주하고, 다음날은 오케스트라의 주요 연주자들이 번갈아 솔리스트로서 협연을 하고, 마지막 날은 뛰어난 지휘자를 초대하여 본격적인 교향악과 협주곡 레퍼토리를 들려주는 포맷을 완성했다. 단지 두번의 시도로 이들의 혁신은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지휘자 없이 대편성 관현악을? 반신반의하며 콘서트홀을 찾았지만, 미묘하게 어긋나며 아슬아슬하게 외줄을 타는 듯한 연주의 매력에 이내 빠지고 말았다.

이들만의 매력은 치밀한 전략에 기반한 완벽한 스토리텔링의 프로그래밍이다. 올해 연주를 관통하는 주제 역시 ‘고향’이었다. 번스타인이 끝까지 부여잡고 있었던 귀소 본능이 발현된 걸작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뉴욕에서 아메리칸 음악원 원장으로 일했지만 고국의 고향산천을 그리워했던 드보르작의 망향가, 교향곡 제9번 <신세계로부터>. 눈을 감는 순간까지 고국 러시아를 잊지 못했던 라흐마니노프가 고향을 그리면서 작곡한 최후이자 최고의 걸작 <심포닉 댄스>까지. 분명한 메시지를 일관되게 전달했다.

2023년 8월 2일 고잉 홈프로젝트 (사진제공=고잉 홈프로젝트)
2023년 8월 2일 고잉홈 프로젝트 (사진제공=고잉홈 프로젝트)

첫날은 번스타인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의 주요 대목을 엮은 ‘심포닉 댄스’로 출발했다. 지휘자 없이 이런 리드미컬하면서 화려한 음악이 가능할지, 박력 넘치는 파괴적 음악이 가능할지 의문이었지만, 음악 자체를 그야말로 즐기면서 이들은 해냈다. 청중은 이들이 마음껏 노니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다 이따금 함께 빠져들곤 했다. 새로운 패러다임이었다. 잘 알려진 ‘맘보’에서 흥분은 절정에 달했다. 객석의 흥분이 아니라 무대의 흥분이었다.

뒤이어 이 축제의 대주주격인 대표 연주자, 손열음 협연의 거쉰 <랩소디 인 블루>. 오케스트라 주자로 참여한 그녀가 무대 중앙으로 이동했다. 그녀의 독무대일 줄 알았던 협연 무대는 클라리넷 주자 조인혁의 신들린 연주로 이중주로 이어졌다. 그가 가진 끼가 이 정도였을 줄이야?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수석주자였다가 한양대로 자리를 옮긴 중량급의 진중한 연주자로 알았으나 이날은 완전히 다른 면모였다. 재즈 감성이 충만한 농밀한 글리산도로 출발, 손열음의 피아노와 합류하면서 마음껏 ‘삘’을 발산했다. 손열음의 피아노는 예리하면서도 자유로웠다. 화사한 색채감이 더했더라면 더할 나위없었겠지만, 관현악의 풍성함에 대비되는 효과가 각별했다. 앙코르로 <파리의 미국인>의 한 대목. 두 솔리스트의 호흡이 놀라웠다.

2부는 드보르작 교향곡 제9번 <신세계로부터>. 2악장의 꿈꾸는 듯한 구슬픈 선율이 바로 ‘고잉홈’이다. 이들의 주제가와 같은 작품을 연주하면서 새로운 질서를 형성한다. 저마다 비르투오지티를 뽐내며, 일사불란한 연주가 아닌 미묘하게 어긋나는 연주다. 각 섹션의 리더가 각각 파트의 음악을 만들어간다. 템포, 톤, 해석이 조금씩 다르게 진행된다. 이것이 ‘고잉홈’ 오케스트라만의 매력. 그러면서도 3일간의 일관된 주제인 ‘고향’을 떠올리는 아련함은 잊지 않는다. 3악장의 파괴적 포효와 질주 그리고 4악장에서 금관악기의 우람한 스케일이 인상적이었다.

2023년 8월 3일 고잉 홈프로젝트 (사진제공=고잉 홈프로젝트)
2023년 8월 3일 고잉홈 프로젝트 (사진제공=고잉홈 프로젝트)

둘째날은 ‘갈라’. 문자 그대로 축제였다. 그리그 <심포닉 댄스> 제1, 2번이 서두를 장식했다. 이렇게 멋진 작품을 왜 이제야 접했는지 안타까웠다. 유성권이 연주한 로시니 <바순 협주곡> 2악장은 벨칸토의 능란한 프레이징과 다른 목관악기와의 앙상블이 인상적이었다. 메르카단테 <플루트 협주곡> 3악장은 조성현의 상큼발랄한 음색과 빼어난 기교가 묘기의 한 장면이었다. 누가 뭐래도 사흘간 가장 인상적 연주자는 조인혁이었다. 드뷔시 <첫 번째 랩소디>는 모두를 꿈꾸게 했다. 쇼스타코비치 <첼로 협주곡 1번>의 3, 4악장은 무엇보다 격렬한 관현악의 위용이 눈부셨다.

인터미션 후에도 묘기 대행진은 계속되었다. 바티의 곡예와 같은 아르방 <베니스의 카니발>. 차이콥스키 <호두까기 인형> 중 ‘사탕요정의 춤’은 손열음의 첼레스타 연주가 흥미를 더했다. 갑자기 깜짝 손님의 등장했다. 마지막 연주회를 지휘할 발렌틴 유류핀이 조인혁과 멘델스존 <두 대의 클라리넷을 위한 소협주곡> 2, 3악장을 함께했다. 몬티 <차르다시>는 바이올린, 클라리넷, 플루트, 피콜로, 바순, 트럼펫이 돌아가며 연주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고잉홈’이 아니면 볼 수 없는 명장면이었다. 라벨 <볼레로> 역시 관현악 작품이라기 보다 새로운 개념의 협주곡으로 다가왔다. 기존 콘서트 양식의 파괴적 혁신이 아닐 수 없었다.

2023년 8월 3일 고잉 홈프로젝트 (사진제공=고잉 홈프로젝트)
2023년 8월 3일 고잉홈 프로젝트 (사진제공=고잉홈 프로젝트)

마지막 날은 지휘자의 등장이 솔리스트의 연합체라 할 수 있는 ‘고잉홈’에 어떤 변화를 가져다 줄 지 흥미로웠다. 유류핀이 포디움에 등장하고 러시아 작곡가 두나옙스키의 <그랜트 선장의 아이들> 서곡이 시작되었다. 음향효과로 압도하면서도 감미로운 선율이 귀에 감기는 효과 만점의 선곡이었다. 나이젤 웨스트레이크 <스피릿 오브 더 와일드>는 아름다운 자연의 태즈매니아 섬을 배경으로 한다. 오보에 협주곡으로 함경의 협연이었다. 쉴새없이 화려한 개인기를 보여준 솔리스트의 역량과 신비로운 대자연의 스케일을 만끽할 수 있는 관현악이 조화로운 작품이다.

마지막 작품은 라흐마니노프의 최후이자 최고의 걸작 <심포닉 댄스>. 평생 가슴에 담았던 고국에 대한 애틋함이 담겼다. 휘몰아치듯 대범하게 악단을 이끄는 유류핀의 리드로 음향의 격랑이 넘실댄 첫 악장은 정교한 앙상블이 돋보였다. 우아하고 느릿한 제2악장은 너무 무겁지 않은 춤곡풍의 해석이 신선했고, 이에 대비된 3악장 활극풍의 에너제틱한 접근과 크게 대비되었다. 지휘자 없는 오케스트라의 역설은 지휘자와의 시너지로 더 빛났다.

3일간의 짧은 축제였지만 그 어떤 축제보다 충만했다. 이들의 도전이 계속되길 바란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비평활성화 사업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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