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논객의 춤시선-21] ‘그들이 와 줘서’ 고마운 2023년 여름시즌
[낭만논객의 춤시선-21] ‘그들이 와 줘서’ 고마운 2023년 여름시즌
  • 장승헌 공연기획자
  • 승인 2023.08.20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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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을 비롯한 갈라무대들

[더프리뷰=서울] 장승헌 공연기획자 = ”그들이 온다!“ 2001년 당시 이 구호는 꽤나 강력하고 도발적인 카피였다. 그 무렵 우리 무용계에서는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을 중심으로 고정관객 확보를 통해 춤 대중화가 이루어지고 있었고,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실기과(발레전공) 졸업생들과 재학생들을 중심으로 세계 유명 콩쿠르에서 실력을 인정받기 시작하면서 세계 유수의 무용단에 우리 무용수들이 입단하는 등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제20회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 피날레 'Unitxt'/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제20회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 피날레 'Unitxt' (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앞서 2000년 8월, 그동안 각자 유학이나 오디션을 통해 어렵게 해외에 진출, 활동해 온 무용수들이 모인 좌담 자리에서 탄생한 이 특별한 ‘기획 프로젝트’는 다음해인 2001년 7월 정식으로 출범 무대를 가졌다.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이 바로 그것이다(2023년 제20회 기념공연 프로그램에는 과거 20년간의 공연자료가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되어 있다). 초기 몇 차례는 격년제로 운영되다가 관객들의 호의적 반응과 함께 점차 이 무대에 참가하고 싶어하는 해외활동 무용가들이 급증하면서 2007년부터는 매해 여름시즌 대표적인 무용 갈라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그동안 130여 명의 무용가들이 이 무대를 통해 고국 무대에서 존재감을 빛냈다. 미래 꿈나무인 영재 발레리나/발레리노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현재 국내외 발레단에서 주역급 무용수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이 축제 참가자들의 자존감을 한껏 높여 가고 있다. 특히 지난 3년여 팬데믹 기간에는 대한민국발레축제의 협력 프로그램으로 진행되면서 축제 공간을 LG아트센터,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으로 바꿔가며 19회까지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금년 제20회 공연은 발레 전용극장이라 할 수 있는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지난 6월 28일(수)-29일(목) 이틀간 진행되었다.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들이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는데, 특히 제1회 출연자 허용순(재독 안무가)이 예술감독을 맡아 그 의미가 배가했다. 허용순은 유럽을 포함한 세계 각지 발레단으로부터 신작 안무를 의뢰 받는 등 국제적 명성을 쌓고 있는 중이다. 이미 수 년 전부터 국립발레단, 유니버설발레단, 광주시립발레단 등 공공/직업발레단은 물론 발레블랑, 댄스시어터 까두 같은 민간무용단과의 안무작업을 통해 컨템퍼러리 댄스 안무의 영역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2022 대한민국발레축제 기획공연에서는 명작 <로미오와 줄리엣>을 재안무, 수작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금년에도 이색적이고 흥미진진한 커튼 콜 안무(4분)와 함께 스스로 4분짜리 신작을 만들어 직접 무대에서 춤까지 추는 저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제20회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 기자회견/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제20회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 기자회견 (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지난 20여 년 간 이 축제를 이끌어 온 무용평론가 장광열 제작감독은 “해외 한국예술가들은 전천후 민간외교관이며 춤을 통한 국가 이미지 고양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라는 화두를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그만큼 최근 한국문화, K-콘텐츠에서 발레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제20회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 강효정 '오네긴'/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제20회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 강효정 '오네긴' (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금년에 필자의 눈길을 사로잡은 출연자들은 주역 발레리나의 품격을 보여준 강효정(오스트리아 빈발레단)과 신비로운 모습으로 깨끗한 춤사위를 펼친 신예 임수정(스위스 취리히발레단 솔리스트)이다. 또한 미국의 스타 발레리나 출신 줄리 켄트가 직접 러브콜을 보내 국립발레단에서 미국 워싱턴발레단으로 전격 이적한 이은원(워싱턴발레단)은 발목 부상에도 투혼을 불사르는 프로페셔널 무용수의 저력을 확인시켰으며, 정확하고 당당한 테크닉으로 박수갈채를 받은 영 아티스트 박상원(네덜란드 국립발레단 제2컴퍼니 입단 예정) 역시 눈에 띄었다.

제20회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 임수정 'Nocturne'/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제20회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 임수정 'Nocturne' (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제20회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 '이은원 'Ballet ldilio'/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제20회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 이은원 'Ballet Idilio' (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매력적이고 도발적인 솔로(<Pearl>, 안무 조주현)를 선사한 채지영(미국 보스턴발레단)과 ‘댄싱9’ 출신 스타 무용수 최수진(프리랜서 무용가)도 개성 넘치는 컨템포러리 춤(<거의 새로운 춤> 제1장, 안무 전미숙)으로 이색 춤풍경을 연출하는 등 다채로운 갈라 형식의 무대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현역 발레리노로서 줄기차게 무대를 지키고 있는 김용걸(한예종 실기과 교수)이 새롭게 안무한 31명 군무 <볼레로>는 이번 무대의 마지막 분위기를 압도했다.

제20회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 채지영 'Pearl'/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제20회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 채지영 'Pearl' (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이 페스티벌의 제1회 무대를 통해 마츠 에크 안무의 두 작품으로 국내 무대에 특별한 춤을 선사했던 허용순의 올해 작품 <My Wife> 역시 박수갈채를 받기에 충분했다. 길이는 4분 내외로 짧았지만 그녀의 춤과 연기는 강렬한 임팩트로 현역 무용수의 존재감을 남겼다. 이와 함께 허용순은 마지막 전체 출연진의 커튼콜 안무도 진두지휘, 갈라 공연의 대미를 아름답고 인상적으로 연출했다. 그녀는 프로그램 인사말을 통해 자신의 발레 인생에서 지난 20년 동안 이 축제와 함께한 데 대해 ‘참으로 소중하고 의미 있는 무대’라고 밝혔다.

제20회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 예술감독 허용순'The Wife'/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제20회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 예술감독 허용순 'The Wife' (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제20회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 최수진 '저의 춤은'/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제20회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 최수진 '저의 춤은' (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갈라(Gala)'는 이탈리아어로 ’축제‘를 뜻한다. 지난 7월 8일에는 성남아트센터 주관으로 ’2023 발레 스타즈‘ 공연이 있었다. 필자는 최근 영국로열발레단 솔리스트로 승급한 전준혁과 함께 일본 공연을 마치고 한국을 찾은 발레단 동료 프란시스코 세라노의 스타 발레리노 품격을 지켜보기 위해 성남아트센터 대극장을 찾았다. 습하고 무더운 장마 기간임에도 대성황을 이루었다. 같은 날, 강원도 춘천 강원대 백령기념관에서는 ’대한민국발레축제 in 춘천‘이라는 발레 갈라 공연이 마련되기도 했다. 또 7월 22-23일 용인 포은아트홀에서도 발레 갈라 <New Wave>(예술감독 윤별)가 무탈하게 막을 내렸다.

제20회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 김용걸댄스시어터 'Bolero'/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제20회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 김용걸댄스시어터 'Bolero' (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그리고 몇 년 전부터 조심스레 준비해 온 제1회 제주국제무용제가 금년 ’Special Ballet Gala in 제주‘란 특집과 함께 국내외 6개 단체 주역 무용수들과 민간단체들이 참가한 가운데 관광 유동인구와 현지 발레 애호가들에게 ’새로운 형식의 무용축제‘를 표방하며 출범했다. 주최측은 제주의 환경과 민요를 소재로 킬러 콘텐츠 개발 등을 시도하며 다른 지역 춤축제와 차별화를 시도했다. 제주특별자치도 승격 이후 다양한 K-댄스 콘텐츠가 제주시와 서귀포시에 소재한 실내외 공간에서 다채롭게 펼쳐지고 있다. 금년 첫 번째 축제(7월 23-30일)에서는 우선 풍성한 프로그램으로 지역민들의 참여까지 배려하며 순조로운 출범을 알리는 데 성공했다.

여름 휴가시즌 외국에서 돌아온 무용수들에게는 고국의 팬들에게 자신의 성장을 눈으로 확인시킬 기회가 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워크숍 등 각종 부대행사도 돋보였다. 그런데 이 발레 클래스는 제주국제무용제 뿐만 아니라 비슷한 시기 여기저기서 열린 발레행사들에 예외없이 등장해 자칫 ’과유불급’으로 흐르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자아내기도 했다. 발레의 저변확대에 매우 효과적이긴 하지만 자칫 행사들 간의 경쟁이나 발레교육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 혹은 최근의 발레 인기상승에 따른 상업화로 흐를 수 있겠다는 우려도 들었다. ‘득’이 될지 ‘독’이 될지, 아직 조금은 더 응원하며 지켜보기로 하자.

영국로열발레단 솔리스트 전준혁/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영국로열발레단 솔리스트 전준혁 (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대한민국의 춤 대중화는 일단 발레 장르가 일반인들의 관심과 직접참여 의지까지 촉발하는 데 힘입어 예전보다 춤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향후, 이 여름 시즌 부쩍 늘어난 비슷비슷한 형식의 발레 갈라들 사이에 ‘적자생존의 법칙’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어 가는지 조심스레 지켜볼 요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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