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압축된 무대로 펼쳐낸 서사와 감동
[공연리뷰] 압축된 무대로 펼쳐낸 서사와 감동
  • 한혜원 음악칼럼니스트
  • 승인 2023.08.19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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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페라 하이라이트 페스타 <오텔로>
오텔로 공연모습 (사진제공=공연예술창작소 예술은감자다)
'오텔로' 공연 모습 (사진제공=공연예술창작소 예술은감자다)

[더프리뷰=서울] 한혜원 음악칼럼니스트 = 오페라는 종종 심각하게 고상하고 지루한 장르라는 오해를 받아왔다. 비싼 입장권 가격도 한몫했다. 이 오해를 말끔히 사라지게 했던 공연이 지난 6월 영등포아트홀에서 열렸다.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주최하고 공연예술창작소 예술은감자다와 영등포문화재단이 주관한 오페라 하이라이트 페스타가 그것이다.

오페라 하이라이트 페스타는 화성문화재단과 충북오페라단이 함께한 지역공동제작 페스티벌이었다. 오페라 연출가 정선영이 이끄는 예술은감자다가 ‘음악으로 읽는 세계문학 시리즈’라는 이름으로 제작해온 레퍼토리 중 3편, 이건용의 <봄봄>, 베르디의 <오텔로>와 비제의 <카르멘>을 선보이는 이 페스티벌은 6월 영등포에 이어 11월에 경기도 화성, 12월은 충북 청주에서 열릴 예정이다. 문학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오페라 한 편을 약 70분의 무대로 압축해서 올리며 입장권 값도 파격적으로 낮추었다. 익히 알려진 문학작품의 감동을 음악으로 느끼도록 유도해 초보 관객에게도 문턱이 높지 않게 여겨진 자리였다.

'오델로' 공연 모습(사진제공=공연예술창작소 예술은 감자다)
'오델로' 공연 모습(사진제공=공연예술창작소 예술은 감자다)

베르디의 <오텔로>는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원작으로, 당대의 명대본가 아리고 보이토가 대본을 맡았다. 베르디가 <맥베스>를 작곡한 지 30년 만에 또다시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만난 것. 3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무어인 노예에서 베네치아의 장군이 된 무인 오텔로와 그 아픔을 어루만져주는 데스데모나와의 사랑, 오텔로의 파멸을 꾀하는 이아고의 계략과 커져가는 의심 앞에 무너지는 영웅을 장대한 스케일로 담고 있다.

70분 버전의 <오텔로>는 정선영 연출가의 해설, 조정현 음악감독의 피아노, 그리고 실감나는 영상이 더해졌다. 키프로스 섬의 해안에서 베네치아 함대의 승전을 기도하고 만세를 외치는 군중, 오텔로와 데스데모나가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이아고가 앙심을 품는 대사 등은 연출자의 해설로 들을 수 있었다. 해설자는 작품의 일부가 되어 관객을 몰입시켰다. 조정현 음악감독 역시 피아노 한 대로 오케스트라의 웅장함을 표현하는 데 모자람이 없었다.

오텔로를 연기한 윤병길은 빼어난 드라마틱 테너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넘실거리는 검은 파도의 끝에서 등장하며 부른 ‘기뻐하라!’에서 무인의 포효를, 데스데모나와의 이중창 ‘밤의 정적 속으로 소란은 사라지고’에서는 두 사람의 깊은 서사를 노래에 담아냈다. 데스데모나 역의 소프라노 김현진도 신예답지 않은 강단을 보여주며 윤병길과 호흡을 맞추었다. 두 사람의 꽉 찬 소리가 청중에게 충족감을 주었음은 물론이다.

'카르멘' 공연 모습 (사진제공=공연예술창작소 예술은감자다)

바리톤 김경천이 이아고를 맡았다. 이아고는 셰익스피어가 만들어낸 악역 중에서도 밑바닥까지 사악한 인물이다. 그의 독백 ‘나는 잔인한 신을 믿는다’에서 그는 숨기고 있던 악마성을 관객 앞에서 드러낸다. 결코 얕지 않은, 그 무게를 가늠할 수 없는 악마성을, 베르디는 이아고에게서 꺼내고자 했다. 주로 피가로나 파파게노 같은 코믹한 역할을 맡아온 김경천에게 이아고는 도전이었을 터이다. 원작에서의 바닥을 치는 비열함을 김경천에게서 찾기는 어려웠지만, 높은 장군의 신임을 받는 기수의 품위라는 가면을 쓰고 있을 듯해서 오히려 그 캐릭터를 이해할 수 있었다.

공연이 끝난 후에는 관객과의 대화 시간이 이어졌다. 많은 관객들이 서사를 압축하는 과정이나 출연자들의 해석에 대해 질문을 던졌고, 명작의 감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공연의 전 과정을 관객과 함께 하는 좋은 마무리였다고 생각했다.

공연예술창작소 예술은감자다는 좋은 성악가 발굴에도 힘쓰고 있다. 오페라 액팅 랩 프로그램을 운영해 오페라 연기를 훈련시키고, 이 과정을 통해 검증한 젊은 성악가들을 무대에 세우는 시도를 하고 있다. 데스데모나 역의 김현진과 몬타노 역의 임하린 뿐 아니라 다른 날 공연된 <카르멘>의 돈 호세 안민우가 그들이다. 오페라 액팅 랩은 교육과정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성악가를 발굴하는 통로이기도 한 것이다.

'오델로' 공연 모습(사진제공=공연예술창작소 예술은 감자다)
'오델로' 공연 모습(사진제공=공연예술창작소 예술은 감자다)

예술을 한다는 것, 자기만의 색깔을 찾아가며 성장한다는 것, 관객과 감동을 나누며 소통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가까이 갈 수 있는 무대를 위한 꾸준한 예술단체의 노력, 그리고 지역의 문화재단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 만들어낸 오페라 하이라이트 페스타. 소극장 무대도 얼마든지 성대한 감동의 축제가 열릴 수 있음을 확인한 시간이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비평활성화 사업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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