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3인3색, 말러 3매경
[공연리뷰] 3인3색, 말러 3매경
  • 김준형 음악칼럼니스트
  • 승인 2023.08.26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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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말러, 부활’ - 7월 28일 부천아트센터 콘서트홀
말러리안 시리즈 6 ‘말러 교향곡 제 3번’ - 7월 30일 롯데콘서트홀
한경arte필의 '말러 교향곡 제4번' - 8월 13일 롯데콘서트홀

[더프리뷰=서울] 김준형 음악칼럼니스트 = 말러 교향곡 연주가 예고된 콘서트는 애호가들의 각별한 관심을 받곤 하지만, 예전처럼 듣기 어렵지는 않다. 이는 물론 선구자적 거장들에 의한 실험적 시도가 밑거름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본격적인 말러 교향곡 연주는 1999년 시작된 임헌정과 부천필하모닉의 치클루스가 그 효시이다. 이제는 많은 오케스트라가 나름의 말러 교향곡 연주 전통을 세워가고 있다.

필자는 최근 말러 교향곡 제 2, 3, 4번을 연달아 들을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국내 최초로 말러 치클루스에 도전하여 말러에 관한 한 최고의 전통을 쌓아온 부천필하모닉의 제2번 ‘부활’, 음악감독 진솔의 도전적인 시도로 항상 신선하고 새로운 연주로 주목 받아온 말러리안의 제3번, 지난 5월 한국 말러 연주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임헌정과 함께 성공적으로 제2번 교향곡을 연주한 바 있는 한경arte필하모닉의 제4번. 모두 무척 훌륭했다.

부천필하모닉의 말러 '부활' (사진제공=부천시립예술단)

부천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제306회 정기연주회였던 ‘부활’ 교향곡 연주는 우선 이런 대작을 시도한다는 자체가 반가웠다. 상임지휘자 장윤성은 악곡에 담긴 풍부한 감정의 발산에 무척 솔직한 접근을 하면서 동시에 오케스트라의 기능적 우수성이 돋보이는 분방한 연주를 시도하였다. 상반된 이질적 요소의 대비도 효과적이었다. 제2악장의 기저를 이루는 스트링 섹션 연주가 무척 강건했기에 목관의 노래가 더욱 아름답게 들렸다. 제3악장은 누구보다 박진감 넘치는 리드가 훌륭했다. 김정미가 노래한 제4악장 ‘원광’은 고요하고 절제된 해석이라 대하 드라마와 같은 제5악장과 선명한 음악적 대비를 이루었다. 마지막 악장의 감격은 앞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어떤 잘 짜여진 각본에 의한 연출이 아니라, 환희가 그대로 뿜어나왔다. 색다른 음악적 경험이다.

한 가지 더 놀라운 점은 부천필하모닉의 홈그라운드인 부천아트센터의 하드웨어였다. 말러의 '부활' 교향곡을 들을 때는 영혼이 고양되는 숭고한 감정과 감격적인 정서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특히 클라이맥스를 향해 가면서 오르간이 연주되는 장면은 실로 가슴이 벅차 오르는 음악적 경험이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제대로 된 오르간 사운드를 접할 수 있는 연주회장은 많지 않다. 바로 이 지점에서 부천아트센터의 기능은 빛난다. 홀 사이즈에 비해 대형 오케스트라에 합창단까지 가세하여 '음향의 과포화'가 우려되었으나 총주에서도 악기 하나하나가 또렷하게 객석으로 전달되는 환상적 경험이 가능했다. 부천아트센터의 음향에 다시 한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울러 지난 한경arte필의 ‘부활’ 연주에서도 훌륭한 연주를 했던 오르가니스트 김혜향이 다시 출연하여 이번 연주에 큰 기여를 했다.

말러리안은 상설 오케스트라는 아니지만 연주 때마다 뜻있는 예술가들의 의지를 모아 높은 완성도의 연주를 들려주었다. 필자도 이들의 제9번 연주에 크게 감격한 바 있었고, 특히 이번 제3번은 엄청난 대작이라 더욱 기대를 갖고 찾았다.

말러리안의 말러 '교향곡 제3번' (사진제공=아르티제)

레퍼토리를 결정한 후 공개 오디션을 거쳐 단원을 선발하고 밀도있는 리허설을 거쳤기에 젊고 의욕 넘치는 단원들의 열기가 느껴졌다. 기능적으로 완전무결하다는 인상을 주지는 못했으나 각자 눈빛이 의욕으로 가득했다. 작품의 스케일에 걸맞은 호방하고 여유있는 템포로 나아간 진솔의 리드였으나 전반적인 오케스트라의 파워는 다소 부족했다. 첫 악장에선 비장함이 더해졌으면 했고, 제2악장은 좀더 우아한 표현이 아쉬웠다. 하지만 극적이고 선명한 드라마를 만들어낸 스토리텔링이 좋았다. 풋풋하고 청신한 제3악장은 곡예와 같은 포스트호른의 서정 만점의 연주로 더욱 빛났다. 활기와 생기로 가득한 제5악장을 지나 마지막 악장은 ‘사랑이 내게 말하는 것’이라는 표제가 진정으로 구현되었다. 마에스트라는 혼신의 힘을 다해 단원 모두의 공감을 이끌어내며 용광로와 같이 총주를 하나로 녹여냈고, 자애로운 신의 실존을 웅변하듯 우주를 품은 듯한 스케일의 감격적 연주로 마무리했다. 지휘자의 소통과 공감이 없었다면 이런 감동적인 연주가 과연 가능했을지? 단시간에 이런 결과물을 내 놓은 그녀의 역량이 놀라울 따름이다.

한경arte필하모닉은 말러의 작품을 자주 연주하지는 않지만, 5월 ‘부활’의 성공으로 그 잠재력을 널리 알렸고, 이번엔 상임지휘자였던 홍석원과 제4번이었다. 그의 활달한 리드로 생기 넘치는 스트링 섹션에 윤기를 더했고, 아름다워야 할 목관 섹션은 저마다의 노래를 유창하게 들려 주었으며, 호른과 트럼펫을 중심으로 한 금관 섹션의 강력한 연주가 훌륭했다. 홍석원은 작품에 내재된 천국과 지옥의 양면성 부각에도 주목했지만, 악곡의 기저에 흐르는 가요성의 재현에 효과적이었다. 해석의 방향과 무관하게 필자는 이번 연주에서 오케스트라의 기능적 우수함에 감탄했다. 이들의 연주는 음악 자체의 아름다움에 집중하게 하였다. 해석상 평온하고 우수에 젖은 듯한 따스함이 스며들어야 할 제3악장에서 한번 더 음미할 수 있는 여유가 아쉽긴 했다. 연주 내내 맹활약한 호른과 트럼펫 주자의 탁월한 연주가 전반의 완성도를 몇 단계 올려 놓았다. 이들은 앞서 언급한 말러리안의 제9번 연주에서도 필자를 놀라게 했던 바로 그 연주자였다. 밝고 천진하면서도 철학적 페이소스를 진하게 불러일으킨 황수미의 연주는 마지막 악장의 ‘천상의 삶’을 실감케 하였다. 슈바르츠코프와 델라 카자의 장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연주였다. 한 가지 더. 이날 전반부에서 황수미는 레너드 번스타인의 뮤지컬 넘버 <드림 위드 미> <썸웨어> <아이 필 프리티>를 불렀다. 완전히 다른 색깔로 연기력까지 덧붙이며 그녀의 또 다른 매력을 십분 발산하였다.

한경arte필하모닉의 말러 '교향곡 제4번' (사진제공=롯데콘서트홀)

이렇게 말러의 작품을 연달아, 그것도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들을 수 있는 호사를 누렸다. 이제 말러의 교향곡은 더 이상 우리 무대에서 낯선 레퍼토리가 아니다. 이들의 이런 의욕적인 행보가 계속되길 기원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비평활성화 사업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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