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오래된 옛날식 판소리, 박성환 중고제 '적벽가' 완창공연
가장 오래된 옛날식 판소리, 박성환 중고제 '적벽가' 완창공연
  • 이미우 기자
  • 승인 2023.08.28 23: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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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환(사진제공=한국중고제판소리진흥원)
박성환 (사진제공=한국중고제판소리진흥원)

[더프리뷰=서울] 이미우 기자 = 한국중고제판소리진흥원이 주최하는 ‘박성환 중고제 <적벽가> 완창’이 9월 2일 오후 3시 한국문화의집(KOUS) 무대에 오른다.

중고제(中古制)는 동편제나 서편제보다 먼저 경기, 충청 지역에서 생겨나 일제강점기까지 널린 불린 소릿제로, 고제에 가까운 옛날식 판소리다. 1800년대 충남 강경의 김성옥과 충남 예산 또는 경기 여주 출신으로 알려진 염계달이 이전 시기의 옛 소리들을 하나의 유형으로 정립하고 대를 이어 전승하면서 비롯된 명칭이다.

근대 5명창 중 2명, 일제강점기 최고의 스타 이동백(1866-1949)과 김창룡(1871-1935)이 중고제 명창이다. 이 밖에 서산의 고수관 방만춘 방진관 심정순, 공주의 황호통 박상도 김석창, 강경의 김정근 등 충청도 출신의 뛰어난 명창들이 중고제로 일세를 풍미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고 유행이 바뀌면서 지금은 간신히 맥을 이어가는 귀한 소리가 되어버렸다.

현존 판소리 중 가장 오래된 고제(古制)에 가까운 옛 소리인 중고제는 창법, 사설, 음악적 짜임이 동편제, 서편제와 다르다. 담백하고 꿋꿋한 고제적 특징과 함께 은근하고 구수한 충청도 고유의 정서와 어법을 듬뿍 담고 있다.

조선 후기 지식층 양반들이 많이 모여 살던 충청도는 판소리의 내용과 형식에 큰 영향을 주었고, 중고제 소리의 유식한 문장과 점잖게 절제된 창법은 그런 특징을 여실히 보여준다. 말을 하듯 책을 읽듯 담담하게 불러간다든지, 가곡이나 시조 같은 우아하고 씩씩한 곡조가 많다든지, 감성을 자극하고 감정에 호소하려는 태도보다는 꿋꿋한 기상과 체면을 중시한다든지, 뽐내고 과시하지 않으면서 형식의 완결성에 구애받지 않고 호방하게 질러내는 것을 위주로 한다.

화려한 꾸밈이 없다 보니 싱겁고 밋밋하고 뻣뻣하여 단조롭게 느껴지기 쉬운데, 듣다 보면 구수하고 은근한 멋이 있다.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은' - ‘검이불루(儉而不陋) 화이불치(和而不侈)’야말로 중고제 판소리와 미적 맥락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중고제 <적벽가> 완창본

오늘날 중고제 판소리는 고음반으로나 들을 수 있는 귀한 소리가 되어버렸다. 현재 스승에서 제자로 직접 전승된 것은 이동백-정광수-박성환으로 내려온 <적벽가>의 일부, ’삼고초려’부터 ‘박망파전투’까지 40분 분량이 유일하다. 정광수는 동편제인 유성준 바디로 <적벽가>를 배운 상태에서 동편제에는 없던 ‘삼고초려’ 대목을 배우고자 이동백을 찾아갔고, 자신이 배운 것을 박성환에게 전수했다.

박성환은 2000-2003년 정광수에게 이 소리를 배웠다. 이후 직접 전승이 되지 않은 후반부를 이동백 김창룡 등 중고제 명창들이 분창으로 녹음한 유성기반(폴리돌 적벽가)의 이동백 소리를 중심으로 복원하고 다시 짜서 2010년 무렵 2시간 30분 분량의 완창 판소리로 만들었다.

박성환의 중고제 <적벽가>는 중고제 판소리로는 유일한 완창본이자 중고제 고유의 음악어법에 충실하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판소리학자 최혜진(목원대 교수. 판소리학회 회장)은 중고제 판소리의 전형을 이룩했다고 평가한다.

박성환(사진제공=한국중고제판소리진흥원)
박성환 (사진제공=한국중고제판소리진흥원)

일곱 번째 완창

박성환의 중고제 <적벽가> 완창은 2013년 첫 완창 이후 이번이 일곱 번째다. 여느 공연보다 힘든 완창을 꾸준히 계속하는 것은 중고제 판소리가 살아 있음을 알리고, 여느 소릿제와는 다른 중고제의 멋을 알리기 위해서다.

전승이 거의 끊긴 채 잊혀가던 중고제는 1990년대 들어 유성기 음반의 발굴과 복각이 이뤄지면서 재발굴되어 관련 연구가 늘고 있지만, 무대 실연으로 들을 기회는 매우 드물다. 중고제의 쇠퇴는 음악적 다양성의 상실이라는 점에서 판소리 전체의 위축이기도 하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즘 판소리는 갈수록 획일화하고 판에 박힌 ‘사진소리’로 흐르는 경향이 없지 않다. 반면 중고제는 즉흥성이 강하고 자유분방하며 소리 자체의 성음놀음으로 승부를 한다는 점에서 판소리 본래의 특장을 보여준다. 중고제는 오늘날 판소리를 비롯한 한국 전통음악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데 귀중한 자원이 아닐 수 없다.

중고제는 철 지난 옛 소리가 아니라 다시 일으켜야 할 귀중한 음악자원이다. 판소리를 들을 줄 아는 귀명창들은 중고제의 가치를 단박에 알아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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