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죽음을 다루는 이머시브 공연 '남산골 밤마실-기담야행2’
[공연리뷰] 죽음을 다루는 이머시브 공연 '남산골 밤마실-기담야행2’
  • 유화정 무용이론가
  • 승인 2023.09.03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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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

[더프리뷰=서울] 유화정 무용이론가 = 유한한 인생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있을까? 삶에 파묻혀 죽음을 망각할 수는 있어도 완전히 극복하기란 쉽지 않을 터. 특히나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경험할 때면 애써 잊고 지냈던 죽음의 공포가 허무주의와 짝을 지어 다가온다. 그래서일까, 죽음 직후 치르는 장례식은 세계 어디에서나 길고 복잡하다. 상주 입장에서는 혼이 나갈 지경의 까다로운 절차이지만, 일단 겪고 나면 그 모두가 '산 자'를 위해 설계된 아주 우아한 의식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현대의 장례식이 실리와 편리를 추구하여 간소화되었다지만 그럼에도 기본적인 틀을 갖추고 있는 까닭은 죽음 앞에 사무친 가슴을 위로할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죽음을 기리는 풍습이 세계 전역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전승되어 온 것처럼, 우리 선조도 죽음을 절대 좌시하지 않았다. 죽음으로 이별을 겪은 자를 깊이 위로하는 동시에 생과 사의 경계를 또렷이 그어야 할 의무를 알고 있었다. 이에 장례 절차 외에도 사시제(四時祭), 기일제(忌日祭), 묘제(墓祭), 차례(茶禮) 등 다양한 시점과 공간에 의미를 두어 넋을 기리고 평화를 빌었다. 그 중 망혼일(亡魂日, 백중날)은 음력 7월 중순, 저승의 귀문이 열려 구천을 떠도는 혼령들이 이승으로 쏟아지는 때라 하여 제사를 지내던 날이다. 귀신이 좋아하는 음식, 노래, 춤 등을 성대하게 바치며 산 자와 죽은 자 모두 함께 즐기는 늦여름의 축제날이기도 했다. 인간이 알 수 없는 두려운 존재에게 열과 성의를 보여야 할 때, 춤과 노래는 결코 빠지지 않는다. 그들을 최대한 즐겁게 위로해야만 이승에 머물지 않고 곱게 떠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니 축제를 이끄는 사람이든 그저 구경온 사람이든, 본연의 역할과 상황 생각할 것 없이 모두가 달려들어 최고로 뜨거운 판을 만들어야 했다. 괜히 부정타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일 년에 딱 한 번, 귀문(鬼門) 열리는 날

8월 17일부터 19일까지 서울남산국악당에서 공연된 '2023 남산골 밤마실 <기담야행2: 망혼일 축제>'는 그 옛날의 망혼일 축제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과감히 재해석한 공연이었다. 남산국악당에 들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색깔 리본을 골라 손목에 두르고 사람 모양의 넋전(죽은 자의 넋을 받는 종이인형)을 받아 최근 죽음으로 이별한 지인의 이름을 쓰는 행위였다. 사실 넋전은 무당이 굿을 할 때 사용하는 무구(巫具)이자, 떠도는 망자의 영혼이 잠시 쉬었다 가는 공간이다. 때문에 굿을 경험하기 어려운 현대인의 입장에서는 낯설고 무거운 의미를 지닌 소품인데, 그 모양이 할랑대는 작은 사람의 형상인지라 관객들이 하나씩 들었을 때 거부감 없이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공연은 한낮의 태양으로 뜨겁게 달구어진 마당에서 시작되었다. 세 명의 배우, 두 명의 연희꾼, 그리고 여섯 명의 악사가 좌우를 돌아보며 입장했다. 이 중 세 배우는 자신들을 삼도천 엔터테인먼트 직원이라 소개하며 망혼일 축제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설명한다. 두 연희꾼은 얼굴 반쪽을 흰색으로 분장하여 한 명은 왼쪽으로만 귀신을 보는 좌창, 또 한 명은 오른쪽으로만 귀신을 보는 우창이라 한다. 나머지 악사들은 각기 북, 징, 태평소, 소고 등을 연주하며 분위기를 띄운다. 소개를 마친 이들은 오늘이 바로 일 년에 딱 한 번 귀문이 열린다는 망혼일인데 축제를 제대로 마치지 못할 경우 분노한 조상님들의 해코지가 있을 것임을 귀띔한다. 그리고는 관객 모두 일어나 자신이 속한 그룹의 이끄미를 따라 극장 안으로 들어간다.

망혼일 축제를 소개하는 삼도천 엔터테인먼트 직원들왼쪽부터 황미영(대리 역), 강정임(팀장 역), 주종혁(인턴 역)제공: 서울남산국악당
망혼일 축제를 소개하는 삼도천엔터테인먼트 직원들. 왼쪽부터 황미영(대리 역), 강정임(팀장 역), 주종혁(인턴 역) (사진제공=서울남산국악당)

배우 따라 극장 구석구석을 쏘다니는 경험

극장 안 어두운 계단을 지나 좁은 복도를 걷는데,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안내원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어디선가 스산한 바람 소리가 들린다. 오늘이 바로 귀문 열린 날이라는 설정이 사뭇 실감난다.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크라운 해태홀 앞에 위치한 침상원이다. 이 곳에 들어가 품에 지니고 있던 넋전을 줄에 매달았다. 각자 경험한 죽음,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헤어져야만 했던 누군가를 생각하며 오늘 공연에 임하라는 것일 게다. 고개를 들어 다른 이들이 매달아 놓은 넋전을 보는데 '사랑하는 할머니' '보고 싶은 오빠' '우리 예쁜 강아지' 등 애틋한 마음으로 적은 글귀가 눈에 들어와 먹먹하다. 오늘의 망혼일 축제가 관객이 직접 참여하는 행사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은 누구나 가슴에 묻은 망자가 있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이끄미를 따라 극장 문 앞에 선 관객들제공: 서울남산국악당
이끄미를 따라 극장 문 앞에 선 관객들. (사진제공=서울남산국악당)

침상원을 나가 극장 앞 로비에 섰는데 갑자기 배우들이 뛰어다니며 없어진 소품을 찾고, 누군가는 귀신이 들린 듯 쓰러지고, 준비했던 공연에 부정이 탔다며 소리지른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 공연은 완전히 망했다고 한다. 정성이 부족해서 극장 문도 안 열리는 상태란다. 극적 갈등이 치닫을 즈음, 삼도천 엔터테인먼트의 팀장이 묘수를 떠올린다. 우리의 정성이 부족했다면 여기 있는 관객 모두 다 공연에 참여해 '쪽수'로라도 밀어붙이겠으니 제발 극장 문이라도 열어달라는 것이다. 정신없이 진행되는 분위기 속에서 관객들은 당혹스러우면서 흥미롭고, 걱정스러우면서 기대되는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는 듯하다. 오늘의 공연이 점잖게 앉아 감상하는 공연이 아닐 것임은 예상했지만 직접 공연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게다가 이제 와서 혼자 내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망혼일 축제에 부정이 타서 극장 안에 들어갈 수 없는 상황!제공: 서울남산국악당
망혼일 축제에 부정이 타서 극장 안에 들어갈 수 없는 상황! (사진제공=서울남산국악당)

공연을 보러왔는데 공연을 해야 하는 상황, 살다보면 이럴 때도 있다.

이끄미를 따라 분장실에 들어가니 한 연희꾼이 수업 준비를 마친 채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전체 세 그룹으로 구성된 관객들은 세 개의 공간에 들어가 각기 사자춤, 탈춤, 소고놀이를 배우고 곧바로 무대에 올라가 공연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다. 공연을 업으로 삼는 사람에게 무대란 거창하고 어려운 공간이다. 적어도 몇 달간은 작업에 매진하고, 끝없이 수정되는 안무를 소화하고, 의욕은 앞서는데 몸은 피로하니 팀원끼리 한번씩 싸우고, 몸은 축나고 정신이 혼미해질 때쯤에서야 비로소 공연을 올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토록 험난한 공연의 과정을 단 20분만에 급히 준비해야 한다니 당혹스럽기 그지 없는데, 그런 심리를 눈치채기라도 한 것처럼 연희꾼들은 계속해서 "완성도보다는 정성이 중요하다." "당황스럽겠지만 살다보면 이럴 때도 있다."며 너스레를 떤다. 상황에 따라 전문 예인과 관객의 역할이 완전히 뒤바뀌기도 했던 한국 전통의 공연 형식을 생각하니 엉성하게 공연을 시도하는 이 상황이 무조건 틀리다고 볼 수 없는 것 같기도 하다.

분장실에 모여 망혼일 축제에 올릴 탈춤을 연습하는 관객들제공: 서울남산국악당
분장실과 연습실에 모여 망혼일 축제에 올릴 탈춤을 연습하는 관객들. (사진제공=서울남산국악당)
무대 위에서 공연하는 관객과 연희꾼들제공: 서울남산국악당
무대 위에서 공연하는 관객과 연희꾼들. (사진제공=서울남산국악당)

생각보다 어려웠던 사자춤의 일련 동작을 익히고 줄을 지어 무대 위로 올라가니 객석마다 넋전이 얌전히 앉아 무대를 올려다보고 있는 형국이다. 순서에 따라 자신이 맡은 춤을 성심성의껏 공연하고, 한 켠에 앉아 다른 그룹의 공연을 감상하니 무대 꼭대기에 설치된 삼색방울의 불빛이 환하게 켜졌다. 신들이 우리의 공연을 인정해준 신호라고 한다. 이에 모두 일어나 일렬로 늘어서 길놀이를 하며, 객석에 놓였던 넋전을 챙겨 야외로 나갔다. 그리고 한 차례 풍악을 올리고 하늘을 향해 손을 흔든다. "잘가요! 우리가 정성을 다해 공연했으니 곱게 올라가시고 내년에 내려오세요!"

무대 위에서 공연하는 관객과 연희꾼들제공: 서울남산국악당
무대 위에서 공연하는 관객과 연희꾼들. (사진제공=서울남산국악당)
공연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길놀이제공: 서울남산국악당
공연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길놀이. (사진제공=서울남산국악당)

책임감과 정이 넘치는 한국형 이머시브 공연

남산골 밤마실 <기담야행2: 망혼일 축제>는 관객이 능동적으로 참여하여 공연을 만들어나간다는 의미의 이머시브(immersive) 공연을 표방했다. 이머시브 공연은 연극, 무용, 퍼포먼스 등의 공연예술장르에서 최근 활발히 선보이는 혁신적 공연 유형이다. 주로 관객의 즉흥적이고 자유로운 선택에 따라 입체적으로 변화될 수 있는 연출을 시도하거나, 장소성을 강조하여 관객과 배우가 마주할 수 있도록 하는 전략을 수행한다. 그러나 최근 이머시브라는 용어 자체가 감각적인 신조어로 관심받으며 다소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경우도 더러 있다. 특히 관객이 돌아다니며 자율적으로 감상할 수 있다는 요소를 단순 흥미로만 강조하여, 끝내 관객이 느낄 수 있는 감흥에 책임지지 못하는 결과를 부르는 경우는 참으로 아쉽다.

다행히 <기담야행2>는 관객에게 결코 무책임하지 않았다. 오히려 경계를 넘나드느라 여념없는 관객들이 끝까지 몰입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보조하고 이끌었다. 물론 전략적인 연출과 관객 동선의 안정성에 집중하다 보니 이머시브 공연의 특성인 관객의 선택과 자율성은 놓친 부분도 있다. 그러나 어떤 형태의 공연일지라도 시간과 돈과 관심을 써 발걸음한 관객을 귀하게 모셔야 하는 것은 변치 않는 기본적 의무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담야행2>가 보여준 묵직한 책임감은 넘치는 정으로 따스히 챙겨주는 한국형 이머시브 공연으로서 그 빛을 발했다. 

망혼일 축제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혼령들을 배웅하다.제공: 서울남산국악당
망혼일 축제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혼령들을 배웅하다. (사진제공=서울남산국악당)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비평활성화 사업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유화정 무용이론가
유화정 무용이론가
hjyoo27@gmail.com
이대 무용과 박사. 어릴 적부터 춤춰온 몸의 기억을 머리와 손끝으로 전달해 좋은 글을 쓰고자 한다. 춤추는 사람들의 경계가 해체되는 순간을 포착할 때 짜릿함을 느낀다.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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