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까지 단 며칠, 그래도 막은 오른다"
"멸망까지 단 며칠, 그래도 막은 오른다"
  • 이미우 기자
  • 승인 2023.09.15 10: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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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극단 '당신에게 닿는 길' 2023 오늘의 극작가상 수상 한민규의 신작
당신에게닿는길(사진제공=국립극단)
'당신에게 닿는 길' 이미지 컷 (제공=국립극단)

[더프리뷰=서울] 이미우 기자 = 종말을 외치는 지구의 신음 속에서 공생의 목소리를 담은 무대가 온다. 10월 5일부터 29일까지 홍익대 대학로아트센터 소극장 무대에 오르는 국립극단의 <당신에게 닿는 길>.

<당신에게 닿는 길>은 2023 오늘의 극작가상, 2022 제40회 대한민국연극제 희곡상 등을 수상한 한민규가 극작/연출한 작품이다. 한민규는 지난해 국립극단 [창작공감: 연출]로 선정되어 ‘기후위기와 예술’이라는 주제로 1년 여에 걸쳐 이 작품을 개발했다. 한민규는 현실과 과거를 넘나들며 시대적 사건과 인물을 종횡하는 작품들로 연극의 표현적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왔다. <당신에게 닿는 길> 역시 연극의 장르적 매력을 극대화한 작품으로, ‘연극을 서사하는 연극’을 소재로 기후위기가 빚어낸 인류 종말을 맞이하는 한 연극작가의 이야기를 담았다.

등장인물 ‘작가’는 작품 집필을 계기로 기후위기로 터전을 잃은 ‘이안’과 통신한다. 20년간 단속적으로 이어지는 통신과 작가의 회상 속에서 기후위기로 비롯된 인류의 끝이 다가온다. 2043년 현재 인류의 종말 앞에서 작가는 극장을 운영하고 연극을 공연하면서 소멸을 맞이한다. 작가가 세상의 끝에서 바라본 연극과 극장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한민규 연출은 “멸종위기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살아있는 것들의 공생이라고 생각한다.”라며 “종말에 닿을 때를 떠올리면 모순적으로 태초의 순간이 생각난다. 원시의 인류가 몸짓이나 벽화 같은 순수예술로써 함께 맞닥뜨린 위기상황을 넘어왔듯이, 기후위기로 인한 종말의 순간에 연극은 예술표현물의 범위를 넘어 생존을 위한 인류 최후의 소통수단 그 자체가 될 수 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극이 보여주는 지구 최후의 시나리오는 결코 허황되지 않다. 올여름 길게 이어진 장마와 폭우, 태풍이 한반도를 강타했을 때 유럽과 미국을 비롯한 지구 반대편의 기온은 연일 40도를 넘어서면서 폭염과 산불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았다. <당신에게 닿는 길>은 실로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어쩌면 머지않아 마주할 법한 광경 속에서 인간으로서 존재가치를 증명하는 작품이다.

<당신에게 닿는 길>은 관객이 기후위기로 인한 생태계의 파괴와 인류 최후의 광경을 체감할 수 있도록 공감각적 무대구성에 집중했다. 종말까지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과 인물의 심리상태를 긴 일자형 무대로 표현했다. 연기로 채워진 무대는 1막에서 서로 이어지는 인물들의 감정과 호흡을 담고 종말을 배경으로 하는 2막에서는 고립감을 준다. 무대 양쪽 끝에 멸망의 현상을 보여주는 영상을 투사하고, 배우들은 비치는 영상 위로 인류의 마지막을 앞둔 공허하고 무력하며 처절한 움직임을 보여줄 예정이다. 재난의 파열음, 날카로운 사이렌의 고성, 섬광의 발소리, 폭풍우와 빗소리, 대지의 진동음 등 무대를 하나의 지구와 인류의 서식처로 구현하기 위해 소리질감 분석 등 음향효과에도 공을 들였다.

한편 국립극단은 <당신에게 닿는 길>을 마지막으로 지난해 [창작공감: 작가‧연출] 사업에 선정된 네 예술가의 작품을 마무리한다. [창작공감: 작가‧연출]은 동시대 창작극 개발을 목표로 유수한 창작자와의 협업을 통해 과정 중심의 작품을 개발하는 국립극단의 대표 사업이다. 1년여의 작품개발 과정을 거쳐 올해는 이소연(작가), 윤미희(작가), 임성현(연출), 한민규(연출)와 함께 <몬순> <보존과학자> <스고파라갈> <당신에게 닿는 길>까지 총 4편의 신작 공연을 완성했다.

특히 <당신에게 닿는 길>을 포함, [창작공감: 연출]로 탄생한 두 편은 기존 연극의 서사와 형식에서 벗어나 실험적 작품 구성과 함께 동시대적 화두인 ‘기후위기’를 새롭게 바라보는 시각으로 담아냈다. 2021년부터 이어져 온 [창작공감: 연출]은 ‘장애와 예술’(2021), ‘기후위기와 예술’(2022)을 거쳐 올해는 ‘과학기술과 예술’(2023)을 연간 주제로 설정하고 창작자들과 함께 또 다른 연극적 실험을 이어갈 계획이다.

10월 20-22일 사흘간의 공연은 한글자막, 음성해설, 이동지원 등을 제공하는 접근성 회차로 운영한다. 처음으로 ‘스마트글라스(자막제공용 안경)’를 도입, 극이 진행되는 동안 관객이 이를 착용하면 안경 렌즈 위로 동시 한글자막을 볼 수 있다.

또 10월 15일에는 공연 종료 후 연출 한민규, 배우 우범진 이상은 이다혜가 참석하는 ‘예술가와의 대화’를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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