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문화예술포럼 제16회 정기공연, 장 주네의 '하녀들'
아산문화예술포럼 제16회 정기공연, 장 주네의 '하녀들'
  • 강민수 기자
  • 승인 2023.09.08 00: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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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녀들_포스터(사진제공=CS뮤지컬컴퍼니)
'하녀들' 포스터 (사진제공=아산문화예술포럼)

[더프리뷰=서울] 강민수 기자 = 매년 예술성 높은 연극을 선보여온 충청남도 아산문화예술포럼이 제16회 정기공연으로 장 주네 작, 오세곤 연출 <하녀들>을 9월 8일부터 10일까지(금 오후 7시 30분, 토 오후 2시/6시, 일 오후 3시) 삼동소극장 무대에 올린다.

"매일 밤 주인 마담을 흉내 내는 놀이를 벌이던 두 하녀 자매가 마담을 독살하기로 했다가 실패하고는 스스로 연극놀이에 빠져 마담 역의 동생은 죽고 하녀 역의 언니는 살인자가 된다"는 내용의 이 작품은 1930년대 프랑스 사회를 발칵 뒤집히게 했고 우리나라에서는 영화 <기생충>의 모티브로 거론되기도 했던 파팽 자매 살인사건을 소재로 한다.

장 주네의 <하녀들>은 강자와 약자, 또는 지배자와 피지배자라는 심각한 문제를 강렬한 놀이와 제의의 성격으로 포장하고 있는 작품으로,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대 이후 지금까지 해마다 많은 단체들이 다양한 형태로 공연하고 있다.

연출 오세곤은 장 주네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90년대 초 희곡 <하녀들>을 번역 출판했고 2020년부터는 직접 연출로 나서고 있다. 오방색과 전통 타악 등 무속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특유의 형상화로 주목받고 있다.

두 하녀와 마담, 이렇게 단 세 명의 배우가 100분이 넘는 시간을 엄청난 양의 대사와 동작으로 채워야 하는 이 작품은 웬만한 연기 역량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워 여배우들에게는 일종의 버킷리스트로 인식되고 있다.

하녀들(사진제공=CS뮤지컬컴퍼니)
'하녀들' (사진제공=아산문화예술포럼)

기본전제: 무엇이 부조리인가?

- 계급의 부조리

마담과 하녀, 지배자와 피지배자는 계급이다. 인간의 불평등이야말로 원초적 부조리이다.

- 언어의 부조리

언어는 형식일 뿐 실체가 아니다. 이 형식과 실체는 어느 것 하나도 완벽하게 정확한 일치를 이루지 못한다. 아니, 정확은커녕 자주 심한 불일치와 역설을 드러낸다. 결국 소통은 불가능하다. 역시 언어도 기본적으로 부조리하다.

- 노력의 무위성

노력하면 결과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부조리는 계속 부조리일 뿐이다. 역시 세상은 근본적으로 부조리하다. 까뮈는 <시지포스의 신화>를 통해 무위(無爲)하지만 끝없이 노력하는 부조리의 영웅을 제안했다. 마찬가지로 사르트르는 <더러운 손>에서 적극적인 자유의지로 부조리한 세상에 맞서는 용감한 인간형을 제시했다. 그러나 주네의 <하녀들>에 등장하는 하녀들은 용감한 영웅이어서가 아니라 그냥 부조리한 삶을 벗어나고 싶어 몸부림을 칠뿐이다. 현실에서는 결코 불가능한 것이기에 오로지 꿈 속에서, 오로지 연극 속에서 탈출을 시도하는 그들의 몸부림은 강렬할수록 더욱 처절하고 슬플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게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나의 모습, 우리의 모습이기에.

하녀들(사진제공=CS뮤지컬컴퍼니)
'하녀들' (사진제공=아산문화예술포럼)

주제

밤마다 반란을 꿈꾸는 하녀들의 놀이

꿈속의 꿈속의 꿈속의 꿈: 하녀들의 반란

극중의 극중의 극중의 극: 하녀들의 놀이

피지배자인 하녀들은 지배자인 마담을 증오한다. 그래서 반란을 도모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하녀들은 마담을 동경한다. ’증오와 동경의 이중성’은 그들의 반란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결정적 원인이다.

하녀들은 매일 밤 마담과 하녀의 역을 번갈아 맡아가며 마담을 죽이는 연극놀이를 하지만 연극 속에서마저도 마담 살해는 매번 실패한다. 특히 마담 역을 맡은 하녀가 너무 심취한 나머지 시간을 끌기 때문이다. 그만큼 그들에게 마담은 동경의 대상인 것이다.

현실에서 하녀들은 마담의 정부인 무슈를 밀고하는 모반을 꾀했다. 그러나 근거가 희박한 거짓을 근거로 한 그 시도는 실패하고 무슈는 석방된다. 음모가 발각될 위기에 처한 하녀들은 마담을 살해하고자 독약이 든 차를 권한다. 하지만 마담은 마시지 않고 무슈를 만나러 외출하고 만다.

이제 하녀들의 마지막 선택은 다시 연극 속에서 마담을 살해하는 것이다. 마담 역의 클레르는 스스로 독약이 든 차를 마심으로써 마담을 살해한다. 그러나 실제로 죽은 것은 클레르이고 현실의 마담은 석방된 무슈를 만나 환희의 축배를 들고 있을 것이다.

결국 하녀들의 반란은 실패하고 말았다. 그 이유는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증오의 대상을 동경했고, 둘째 현실적 지주가 없는 거짓에 근거했으며, 셋째 현실이 아닌 허구를 통한 모반이었기 때문이다.

하녀들(사진제공=CS뮤지컬컴퍼니)
'하녀들' (사진제공=아산문화예술포럼)

콘셉트

- 놀이

주네는 이렇게 말했다. "보마르셰의 <피가로의 결혼> 때문에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난 게 아니고, 브레히트의 <코카서스의 백묵원>이 공산주의 혁명을 일으킨 게 아니다. 연극으로 혁명을 이룰 수 없다. 태양은 너무 밝고 우리 눈꺼풀은 너무 얇으니 연극은 그런 태양을 잠시 피하게 해주는 그늘의 역할을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게 잠시 현실을 피해 밤마다 놀이를 벌이는 하녀들의 연극을 보며 관객들 또한 잠시나마 현실을 잊고 휴식을 취하기 바란다.

- 제의

매일 밤 하녀들이 벌이는 마담 죽이기 놀이는 일종의 희생 제의이다. 물론 마담을 대신해 제단에 오르는 희생물은 바로 하녀 자신이니 무척이나 슬프고 처절한 제의이다. 무대를 채울 오색(흑, 백, 적, 청, 황)의 대단히 비현실적인 당집 분위기는 이 슬픔에 찬란한 아름다움을 부여할 것이다.

- 시

주네는 또 이렇게 말했다. "쇠로 만든 칼보다는 나무로 만든 칼이, 나무보다는 종이로 만든 칼이 더 위험하고 강하다."

연극은 시적이어야 하는데 실체와의 차이가 클수록 시적인 힘이 강해진다는 말이다. 그래서 속박을 나타내는 사슬이 무대를 가득 채우는 것과 같이, 가능한 한 상징화되고 양식화된 소품과 의상, 동작을 채택할 것이다.

주렁주렁 걸린 사슬들은 어찌 보면 어린이 축제 때 교실에 주렁주렁 매달린 종이매듭 장식처럼 보일 수도 있다. 조악하게 종이를 이겨 만든 수화기나 자명종, 찻잔들은 온 힘을 다해 이것이 연극임을 외쳐대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엉터리처럼 보이는 소품들이 때가 되면 엄청남 힘으로 하녀들을 압박하고 굴복시킨다. 예를 들어 잠시 귀가했던 마담이 석방된 무슈를 만나고자 환희에 차 대문을 나설 때 “쾅” 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무너져 내리는 소품들은 하녀들의 처절한 붕괴를 가시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역시 차이가 만들어내는 시적인 힘이라 할 것이다.

이에 더해 이런 차이를 한층 강조하기 위하여 상징적이고 양식적인 소품과 함께, 예를 들어 강한 향기를 풍기는 꽃과 같이, 사실 그 자체인 소품이 등장할 것이다. 물론 이런 병치는 주네의 이원적 세계관(기독교식 일원적 세계관에 반하는)의 반영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 노래

이 작품에 노래다운 노래나 음악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배우의 대사는 아무리 일상의 어법을 따른다 해도 그 자체로 완벽한 음악성을 지녀야 한다. 즉 어법에 맞게, 그러나 관객들이 최고의 음악성을 느끼도록 음표를 찍은 대사가 돼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가사의 내용이 분명하게 전달되도록 음절 하나하나 모두 정확하면서도 가락과 박자와 속도감까지 완벽한 노래와 같은 대사를 추구한다고 하면 될 것이다.

중요한 순간 등장하는 소리(자명종 소리, 전화벨 소리, 초인종 소리, 문 열리는 소리, 문 닫히는 소리 등) 역시 노래처럼 정확한 시점에 정확한 세기로 작품에 기여해야 한다. 작품에 음악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러한 소리가 발휘할 음악적인 힘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다.

- 몰입과 이완

배우의 연기는 단 한순간도 관객들의 주의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관객들이 몰입을 멈추는 것은 배우가 놓아줄 때뿐일 것이다.

그를 위해 대사와 동작이 정확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특히 하녀들의 연기는 관객들이 숨을 멈출 정도로 높은 밀도를 계속 유지해야 할 것이다.

반면에 마담의 연기는 특히 이완을 담당해야 한다. 마담의 친절은 마치 “닭이 불쌍해서 닭고기를 살살 씹어 먹는다”라는 식이 될 것이다. 그녀의 분방함은 하녀들을 같은 인간이기보다는 집안의 가구나 마찬가지로 생명 없는 부속품 정도로 생각하는 데서 발생한다. 마담 앞에서 하녀들은 그런 물건과도 같은 취급이 당연하다는 듯 행동할 것이다. 그러한 기괴한 친절에 감읍할 것이다. “마담은 친절해요. 마담은 아름다워요.”를 반복하는 것은 그 상징적 표출이다. 그러한 장면을 보면서 관객들은 일단 웃겠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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