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소문난' 예당 음악잔치, 뜨거웠던 6일간의 하일라이트!
[공연리뷰] '소문난' 예당 음악잔치, 뜨거웠던 6일간의 하일라이트!
  • 김준형 음악칼럼니스트
  • 승인 2023.09.13 11: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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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 예술의전당 여름음악축제
- 8월 22-27일 콘서트홀, IBK챔버홀, 리사이틀홀
summer music opening
여름음악축제 (사진제공=예술의전당)

[더프리뷰=서울] 김준형 음악칼럼니스트 = 올해도 어김없이 폭염이 기승을 부린 한여름에 우리는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기도 하지만, 휴가를 맞아 돌아온 우리 음악인들의 수준 높은 축제가 벌어지기도 한다. 음악제는 '축제'라는 단어가 주는 묘한 흥분과 설레임이 있다.

최근 음악축제가 늘어나고 있고, 예술의전당의 ‘여름음악축제’도 그 역사는 길지 않지만, 유구한 저력을 바탕으로 훌륭한 연주가 이어지고 있다. 전관 개관 30주년을 기념하는 올해는 세계적인 거장은 물론이고 그 진면목이 아직 완전히 파악되지 않은 실력파 연주자의 무대도 다양하게 발표되어 호기심을 더했다. 아울러 엄선된 멤버의 SAC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는 실력파로 인정받고 있는 스페인의 안토니오 멘데스가 포디움에 올라 기대를 모았다.

오프닝 무대는 이들의 말러 <교향곡 제5번>이었다. 감정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남김없이 짜내는 자극적인 연주에 흥분하던 필자에게 멘데스의 절제되고 예리하면서 선명한 접근은 낯설게 다가왔다. 오케스트라의 근간을 이루는 현악 앙상블의 성향 자체가 단단하면서도 근육질적 울림에 가깝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비르투오소들의 집단인 그들의 사운드를 억제하며 만든 사운드라 그간 들어왔던 그것과 거리가 컸다. 제2악장 주제의 전개 그리고 혼란스럽기까지 한 급진적인 흐름의 전환은 새로웠고, 현악기의 연주를 예리하게 뽑아내면서 템포와 리듬을 불안정하게 운용한 제3악장 역시 생경했다. 간결하게 그린 아다지에토를 지나 마지막 악장의 폭발적 피날레 역시 담담했다. 그의 신선한 접근은 작품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기능적으로 나무랄 데 없는 오케스트라의 기량이 놀라웠는데, 다만 주요 금관 주자들의 잦은 실수가 옥에 티였다.

예술의전당 음악축제만의 특징이라면 크고 작은 음악홀과 그 사운드를 적극 활용한 다양한 포맷의 연주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장점을 바탕으로 훌륭한 솔리스트와 앙상블의 출연이 연일 이어졌고, 길지 않은 기간에 풍부하고 다양한 음악을 즐길 수 있었다. 일일이 거명할 수 없지만 그 중 역시 세계적인 피아노 삼중주 단체인 트리오 반더러와 오랜만에 우리 무대에 모습을 드러낸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빅토리아 뮬로바의 리사이틀이 역시 주목을 받았다.

뮬로바는 라트비아 출신의 피아니스트 레이니스 자린스와 함께 브람스의 소나타를 중심으로 연주를 들려주었다. 구조의 미학을 부각시킨 제3번 소나타는 날카로운 보잉으로 예리한 느낌으로 출발했다. 제2악장에서 톤을 누그러뜨리며 감미로운 무드를 조성했다. 유머러스하면서 가벼운 터치로 제3악장을 채색하고 바로 맹렬한 기세로 마지막 악장에 돌입했다. 빠른 패시지에서 바위와 같은 확고한 보잉이 감탄스러웠다. 첫 곡만으로 그녀 예술의 진면목을 만끽할 수 있었다.

뮬로바와 자린스 (사진제공=예술의전당)

뒤 이어 귀한 레퍼토리로 더욱 심도 깊은 예술 세계를 들려주었다. 타케미츠의 <요정의 거리>와 파르트의 <형제들>. 마치 한 작품처럼 연이어 같은 분위기 속에서 이어 나갔다. 전작은 동화적이면서 따스한 색채로 수 놓으며, 입체감이 느껴지는 음악을 만들어 냈다. 하모닉스를 차분하게 소화하면서 고난도의 기술적인 요소를 소화하면서 작품이 담고 있는 뉘앙스를 설득력있게 제시했다. 후자는 반복적인 멜로디를 다이내믹하게 들려주며 그만의 음악 이디엄을 구조적으로 형성했다. 후반부는 브람스의 첫번째 소나타를 들려주었고, 마지막은 슈베르트의 난곡 <화려한 론도>였다. 춤곡의 요소를 살리기 보다 덤덤하고 무심하면서도 번득이는 칼날 같은 기교, 멜로디의 반복적인 재현에서 불쑥 꺼내드는 변화무쌍함 그리고 냉정하면서도 뜨거운 색채감이 훌륭했다. 그녀만의 의외성으로 빛나는 장면이었다.

앙코르로 아들인 미샤 뮬로브-아바도의 <브라질>을 들려주었다. 아들과 듀오 음반에도 담은 트랙으로 분방한 재즈 음악의 흥겨움이 멋졌다. 마지막은 무소르그스키의 <호팍>. 볼륨이 크진 않았지만, 러시안다운 강력한 매력이 넘쳤다.

성공적인 앙상블을 위해 연주자의 역량뿐 아니라 서로의 음악에 귀 기울이며 조화를 이루려는 노력은 결정적이다. 오랜 시간 함께 노력해 온 실내악 단체의 일치된 호흡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짧은 시간이지만 음악적 구심점을 통해 아름다운 음악이 탄생하기도 한다. 푸근한 시선으로 묵묵히 후학의 연주를 서포트한 백건우가 중심을 이룬 쇼숑의 <바이올린, 피아노, 현악4중주를 위한 합주곡>은 떠오르는 신예 주자와 연주력이 절정에 이른 중견 주자 그리고 거장이 이뤄낸 하모니가 아름다웠다. 이날 백건우의 연주는 명징하면서도 품격있는 피아니즘으로 은은하게 빛났다. 프랑스 음악에서 비범한 연주를 들려주었던 그의 장기가 발휘되었다. 컬렉터의 표적이었던 그의 라벨 음반에서 듣던 바로 그 연주였다. 신예 바이올리니스트 최송하의 연주도 뛰어났다. 그녀의 밀도있는 카리스마는 신비스럽기까지 했다. 그녀의 연주는 때로는 바이올린 협주곡처럼, 때로는 바이올린 소나타처럼 들리다가도 완벽한 실내악의 앙상블을 만들어냈다. 제1, 3악장은 솔리스트간 비르투오시티의 대결이었다. 1, 2 바이올린을 연주한 이마리솔과 이소란 역시 콘서트마스터로서 일가견이 있는 명인이다. 이들의 빼어난 연주가 카멜레온과 같은 다면성을 지닌 작품의 진면목을 각인시켜 주었다. 이 작품을 펄만과 줄리어드 사중주단의 음반으로 접하고 그 아름다움에 탄복한 바 있으나, 역시 명곡의 진가는 연주 현장에 있었다.

Spcial Stage & KunWooPaik
백건우 특별무대 (사진제공=예술의전당)

백건우는 이날 젊은 예술가들과 함께 한 ‘스페셜 스테이지’에 이어 페스티벌의 폐막 연주에 다시 한 번 등장했다. 오케스트라와 함께 모차르트의 협주곡 제 26번 <대관식>을 연주했다. 유려하기보다 깊은 호흡이 느껴지는 심오한 모차르트였다. 소박하면서도 따스한 매력이 있었다.

이날의 마지막 프로그램은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제2번이었다. SAC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파워를 만끽할 수 있으면서 올해로 탄생 150주년을 맞이하는 작곡가를 기념하는 의미있는 선곡이다. 멘데스의 리드는 개막연주와 달리 박력이 넘쳤고, 작품의 흐르는 낭만적인 정서를 진하게 재현했다. 오케스트라의 빼어난 연주력은 마지막 무대에서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불과 6일간이라 아쉬움은 남지만, 여느 해보다 풍성하고 알차면서도 신선한 구성의 프로그래밍이 훌륭했다. 올해로 세번째를 맞이하는 여름음악축제가 벌써 이렇게 음악의 구심으로 자리잡은 것은 반가운 일이다. 내년에는 과연 어떤 무대가 펼쳐질 지 흥미진진하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비평활성화 사업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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