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방방곡곡 울려퍼질 진짜배기 벨칸토 오페라!
[공연리뷰] 방방곡곡 울려퍼질 진짜배기 벨칸토 오페라!
  • 김준형 음악칼럼니스트
  • 승인 2023.09.25 22: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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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롯시니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
- 2023년 9월 15일 고양아람누리 아람극장

[더프리뷰=서울] 김준형 음악칼럼니스트 = 친근함에 소중함이 가려지곤 한다. 물과 공기의 소중함을 잊고 지내듯, 친숙해서 진가를 간과하는 경우가 있다. 롯시니의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가 그렇다. 청년 롯시니의 역작이자 대가들의 찬사를 받아왔던 걸작이 그저 재미있는 코미디로 치부되기도 했다. 갈라 무대에 빠지지 않는 ‘나는 이 거리의 팔방미인’ ‘방금 들은 그 목소리’와 같은 아리아의 유명세에 다른 대목들이 묻히기도 했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이번에 고양문화재단(이사장 이동환), 노블아트오페라단(단장 신선섭), 강동문화재단,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이 공동 제작한 프로덕션은 이 명작의 진면목을 온전히 살리면서 ‘벨 칸토 오페라’가 무엇인지 알려주었다. 극의 흐름에 따라 웃고, 감격하고, 바로 화답하는 청중의 열광적인 반응을 보면서 이것이 진정한 ‘예술의 대중화’임을 실감했다.

세비야의 이발사, 고양문화재단 제공, (c)오준성
'세비야의 이발사' 공연 모습. (c)오준성 (제공=고양문화재단)

이 작품은 로지나를 사랑하는 알마비바 백작이 피가로의 도움으로, 로지나의 재산을 노리는 후견인 바르톨로를 골탕먹이고 결혼에 골인하는 희극이다. 프랑스 작가 보마르셰의 3부작 중 제1편이 <세비야의 이발사>이고 2편이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이다. 권력층을 향한 풍자와 해학을 통해 당시 신분 간의 갈등 등 무거운 주제를 희극에 녹인 작품이다. 명가수의 역량뿐 아니라 음악적 앙상블과 드라마의 하모니가 성공의 관건이다.

다양한 캐릭터가 저마다의 메시지를 발산하며 중창이 확대되어 결국 합창으로 이어지는 제1막의 피날레는 청년 롯시니의 천재성이 유감없이 발휘된 명장면이다. 특유의 크레셴도를 교묘하게 연출하면서 솔리스트, 합창단 그리고 오케스트라를 적절하게 통제한 권민석의 솜씨가 놀라웠다. 각자의 아름다운 노래에 담긴 정열적 감성과 마치 실내악과 같은 앙상블이 마침내 심포닉한 폭발의 조화를 이뤄냈다. 롯시니의 시그니처와 같은 제2막의 폭풍우 장면에서도 이런 점층적 미학이 빛을 발했다. 이 작품은 앞서 언급한 블록버스터급 아리아가 아니라도 바질리오의 ‘험담은 미풍처럼’이나 알마비바의 세레나데, 그리고 러시아 민요에서 차용했다는 베르타의 아리아 등 주옥 같은 장면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롯시니 음악의 참맛은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중창에 있다. 로지나의 마음이라는 미션을 띠고 바르톨로의 집에 잠입한 피가로에게 앙큼한 속내를 비치는 이중창 ‘그게 바로 저라니까요’는 김종표와 김순영, 두 베테랑이 쌓아가는 캐릭터도 흥미로웠지만, 셈여림과 템포 그리고 현악군 간의 색채 변화를 통해 소리의 팔레트를 펼쳐 나가는 수법이 좋았다. 이를 통해 음악의 다이내믹스를 만들어 냈다. 쉽게 들어보지 못한 신선한 접근이다.

알마비바 백작과 로지나, (c)경남문화예술회관 제공
알마비바 백작과 로지나. (사진제공=경남문화예술회관)

알마비바 백작으로 출연한 정제윤은 주로 벨 칸토 작품에서 좋은 연주를 보여준 리릭 테너로, 초반부에는 다소 다듬어지지 않은 연주를 했으나 드라마의 진행에 따라 특유의 여리면서 힘이 넘치는 고음으로 롯시니 테너로서의 매력을 십분 발휘했다. 알마비바 백작 연주로 성공의 발판을 삼은 가수가 여럿 있다는 것은 그만큼 좋은 연주를 하기가 까다롭다는 방증이다. 오랜만에 좋은 연주를 들었다.

백작과의 애정 대결에서 참패한 바르톨로의 성승민이 이끌어낸 반응은 이날 출연진 가운데 으뜸이었다. 속사포처럼 쏟아내야 하는 고유의 창법도 완벽하게 소화하면서 부파 전문 가수다운 희극적 연기가 빼어났다. 마치 페르난도 코레나와 엔조 다라의 연주를 보는 듯했다. 극중 비중은 크지 않지만 노래하는 가수의 역량에 놀랄 때가 종종 있다. 이날 베르타로 출연한 황혜재의 연주 또한 놀라웠다. 또렷한 발성과 활달한 연기, 그리고 분명히 전달되는 메시지가 훌륭했다. 바로 로지나로 출연하더라도 모자람이 없는 수준이었다. 로지나 배역을 맡는 가수의 스펙트럼은 무척 다채로워,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에서 저역이 강한 메조 소프라노까지 그 폭이 넓다. 그러다보니 이 모든 성역대를 두루 소화했던 마리아 칼라스의 로지나(EMI)가 이 역할을 가장 탁월하게 소화해냈던 경우로 손꼽힌다. 메조 소프라노 황혜재의 로지나도 각별했으리라 생각한다.

바르톨로와 로지나, (c)경남문화예술회관 제공
바르톨로와 로지나. (사진제공=경남문화예술회관)

오페라 무대에 있어 훌륭한 프로덕션의 지속적인 재상연은 무척 중요하다. 본고장의 유서 깊은 오페라 하우스가 제피렐리나 비스콘티 그리고 콘비츠니의 수십년 전 역사적 프로덕션을 다시 올리는 경우를 흔히 본다. 하지만 우리 실정에서는 여건상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방방곡곡 문화공감' 사업으로 이같은 훌륭한 무대가 여러 극장을 순회하며 오페라의 참된 아름다움을 재현할 때 재상연과 거의 같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시도가 문화예술의 진정한 대중화를 이뤄 내리라 믿는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비평활성화 사업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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