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평화의 메신저 옥사나 리니우, 한 편의 오페라 같은 격정의 지휘
[공연리뷰] 평화의 메신저 옥사나 리니우, 한 편의 오페라 같은 격정의 지휘
  • 김준형 음악칼럼니스트
  • 승인 2023.09.26 16: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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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 심포니오케스트라,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
- 2023년 9월 1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더프리뷰=서울] 김준형 음악칼럼니스트 = 국립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최근 콘서트 무대에 초대한 정상급 유럽 지휘자와 함께 놀라운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지난 정기 연주회는 토마시 네토필과 함께 나무랄데 없는 드보르자크 교향곡을 연주했고, 이번에는 화제의 중심, 옥사나 리니우다.

유리천장을 깼고, 전쟁의 참상을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 출신의 여성 지휘자라 혹시 음악 외적인 요소가 지나치게 부각되지 않을까 했다. 2021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최초의 여성 지휘자로 화제를 모았으나 이는 단순히 화제에 그치지 않았고, 그녀의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연주에 전 세계가 경탄했다.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바그너 음악의 총본산 무대에 올랐다는 자체가 성별을 떠나 예술적 완성도를 입증한 셈이다. 이후 2022년, 유서깊은 볼로냐 극장 최초로 여성 음악감독으로 취임했고, 최고의 오케스트라를 활발하게 지휘하고 있다.

전쟁의 참상을 알리고 평화의 중요성을 호소해 온 리니우는 이번 연주회의 첫곡으로 지난 3월 베를린에서 우크라이나 청소년교향악단과 세계 초연한 예브게니 오르킨의 <밤의 기도>를 들려주었다. 전쟁 희생자들을 기리는 곡이다. 탄식으로 시작해 애도와 추념이 담겼다. 경건한 제례와 같았던 첫곡은 세상을 향한 지휘자의 메시지였다.

이번 연주회는 지휘자의 유명세도 유명세지만, 여러 요소가 두루 고려된 프로그래밍과 협연자 또한 포인트였다. 아르메니아 출신으로 소련 음악계의 거장으로 우뚝 선 아람 하차투리안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세르게이 하차트리안의 연주로 들을 수 있었다. 시벨리우스 콩쿠르와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까지 두루 거머쥔 테크니션이다.

세르게이 하차트리안(c)SihoonKim(사진제공=국립심포니)
세르게이 하차트리안. (c)SihoonKim (제공=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협주곡은 거장 오이스트라흐에게 헌정된 작품으로, 민속적인 선율과 리듬 그리고 현란한 기교의 향연이다. 또 한 명의 거장, 장-피에르 랑팔이 원작자의 승인 아래 플루트로 편곡한 작품도 유명하다.

오이스트라흐의 연주에 비해 조금도 손색 없는 명연을 들려준 세르게이 하차투리안은 보다 현대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연주를 선사했다. 도입부의 민속적 춤곡 리듬과 아르메니아의 민요풍 멜로디가 두드러진 첫 악장을 감미로우면서도 강력하게 치고 나갔고, 제2주제는 그 누구보다 촉촉한 감성으로 흐느끼듯 연주했다. 비브라토를 적절하게 구사하면서 보잉은 강력하게 구사하며, 미끄러지듯 글리산도 주법이 리드미컬했다. 하차투리안 음악의 특징 중 하나인 맑게 울리는 종소리를 묘사하는 고음의 현란함도 눈길을 끌었다. 카덴차에선 저음역에서 강조된 서정성이 좋았다. 단선율로 이루어졌으나 다양한 변주적 요소가 두드러진 제2악장에서는 볼륨을 줄이고 더욱 애잔하게 호소하는 듯한 주법이 효과적이었다. 무엇보다 마지막 악장은 특징적인 당김음과 삼연음부가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긴박한 무드를 조성하는데, 세르게이는 신명나는 리듬의 향연을 주도하는 리니우의 리드와 함께 폭발적인 에너지와 다채로운 변주로 화려하게 연주했다. 유머러스한 피날레는 그의 재치를 엿볼 수 있어 더욱 흥미로웠다. 갈채를 받으며 다시 무대에 오른 그는 아르메니아의 민요 <살구나무>를 구슬프면서도 그윽하게 들려주었다.

이날의 메인 프로그램은 올해 탄생 150주년을 맞는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2번>. 올해 어느 작품보다 많이 연주되고 있다. 유난히 저역을 강조하여 음향적 차별화를 노린 리니우는 유장하면서도 급작스런 템포의 변화로 변주를 꾀했다. 금관의 포효를 연출하며 강력한 퍼커션의 타격음을 주문, 거칠면서도 강렬하게 첫 악장을 연출했다. 긴장을 늦추지 않고 바로 두번째 악장으로 첫 악장의 거친 분위기를 이어 나갔다. 그 어느 작품보다 서정적이고 감미로운 제3악장은 오케스트라의 호흡이 고르지 못하였으나 뭉클한 극적 감동은 잘 살려냈다. 포효하듯 마지막 악장까지 강렬하게 마무리하며 대장정이 끝이 났다.

옥사나 리니우,(c)SihoonKim(사진제공=국립심포니)
옥사나 리니우. (c)SihoonKim (제공=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다비드 라일란트 취임 이후 국립심포니의 라인업과 프로그래밍이 알차졌다는 평가다. 다음 연주회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명인 알브레히트 마이어를 초청, 대망의 R. 슈트라우스 <오보에 협주곡>을 연주한다. 명곡의 진수를 맛 볼 수 있는 드문 기회가 아닐 수 없다.

국립심포니 공연 포스터(사진제공 = 국립심포니)
국립심포니 공연 포스터. (사진제공=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비평활성화 사업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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