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주재만과 함께 컨템퍼러리 발레 'Divine'을 되짚어보다
[인터뷰] 주재만과 함께 컨템퍼러리 발레 'Divine'을 되짚어보다
  • 김혜라 무용평론가
  • 승인 2023.10.20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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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립발레단 'DIVINE' 공연 모습 (사진제공=광주시립발레단)

[더프리뷰=서울] 김혜라 무용평론가 = 클래식 발레가 대중화된 속도에 비해 컨템퍼러리 발레의 정착은 쉽지 않다. 여러 요인이 있으나 무엇보다 동시대 패러다임에 민감한 안무가가 많지 않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척박한 창작발레 현실이나, 그럼에도 제일 먼저 떠오르는 컨템퍼러리 발레 안무가는 주재만이다.

주재만은 한국 발레계의 미래를 견인할 실력을 갖춘 예술가로 미국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현재 뉴욕 컴플렉션즈 컨템퍼러리 발레단의 부예술감독이며 펜실베이니아 피츠버그에 있는 포인트파크대학 발레교수이다. 무용수에서 안무가로, 발레마스터에서 부감독과 교수라는 성취를 타국에서 이뤄내기까지 그만의 부단한 노력이 있었을 것이다. 주재만은 광주에서 발레를 시작했고 단국대학교에서 현대무용을 전공했다. 졸업 후 1996년 프랑스 바뇰레 안무경연대회에서 최고무용수상을 받은 것을 계기로 뉴욕으로 진출했다. 컴플렉션즈와 히스파니코 무용단에서 주로 활동을 하면서도 여러 단체(셴 웨이 댄스아츠, 지비댄스)에서 다양한 컨템퍼러리 스타일을 섭렵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안무 능력도 인정을 받기 시작, 2009년 <Surface>라는 작품으로 뉴욕 조이 극장에서 발표를 했고, 프린세스 그레이스 재단에서 수여하는 안무가상도 받았다. 한국에서는 와이즈발레단의 초정으로 안무한 <Intermezzo>와 <Vita>가 대중과 평단의 호평을 받아 대한민국발레축제에서 공연되었다. 특히 <Vita>는 시대를 관통하는 보편적인 감성과 우주적인 예술관을 갖춰 한국춤비평가협회 베스트 6(2021)와 이데일리 문화대상(2022)을 수상하기도 했다.

기다리던 그의 작품이 드디어 광주시립발레단 초청으로 광주예술의전당(7월 14-15일)에서 선보였다. 신작 <DIVINE>으로 컨템퍼러리 발레답게 선명한 주제의식과 무대 미장센이 돋보인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무엇보다 5.18 광주민주화항쟁을 다루고 있고, 광주 출신인 안무가의 기억과 경험이 스며든 사건이기에 더욱 특별하다. 안무가의 일정상 이메일 인터뷰로 작품 내용만이 아니라 광주시립발레단과 함께한 작업과정과 춤철학까지 들어보았다.

광주시립발레단 'DIVINE' 공연 (사진제공=광주시립발레단)

<DIVINE>은 5.18 광주민주화항쟁을 겪은 세대에게는 애도로, 젊은 세대에게는 역사의 비극을 기억하게 한 작업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주재만 안무가는 광주에서 발레를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 어린 시절이나 고향에서 겪은 광주민주화항쟁을 주제로 한 작품이라 남다른 의미가 있겠다. 작품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광주시립발레단에서 처음 작품 의뢰를 받았을 때 걱정이 많았다. 역사적인 비극을 다루기엔 주제가 크고 중요해서였다. 그럼에도 제가 어렸을 때 광주에서 느꼈던 희미한 장면들과 느낌들을 상기하면서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따라서 작품을 통해 폭력과 불의에 맞서 싸우면서 목숨을 바친 애국시민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억하며 민주주의의 토대를 놓은 사람들과 가족들을 발레로 추모하고자 시작했다.

5.18 항쟁을 작품으로 다룬 예는 많고, 광주시립발레단은 2020년 광주항쟁 40주년 기념작으로 <오월바람>을 공연했다. <오월바람>이 서사 중심의 작품이라면 <DIVINE>은 정신의 위대함을 시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고귀한 영혼들의 정신이 발레라는 우아한 몸짓 언어로 탈각되어 역사를 보다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어떤 점에 주력해서 안무를 했는가?

이 작품은 영화나 연극처럼 역할이 있고 스토리가 있거나 대본을 통해서 정해진 연기자들이 이끌어 나가는 스타일이 아니다. 제가 광주항쟁 속에서 느꼈던, 그리고 비디오 자료에서 보았던 그 사람들의 표정과 모습에서 느껴지는 감정에 집중했다. 평범한 사람들의 인간적이고 솔직한 모습인 애달픔, 설움, 돌진하는 겁 없는 용기 같은 감정을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전작 <Vita>가 팬데믹 시기에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희망하는 작업으로 호평을 받았다. 작품 구성도 생명, 파괴, 회복, 환희의 이미지로 장면전환이 명확해서 이해하기 쉬웠다. 이번 <DVINE>도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자유를 짓밟힌 사람들의 절규, 기도 그리고 추모로 말이다.

처음부터 세 부분으로 구성하려고 의도하기 보단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첫 장은 개개인의 심정을 생각했다.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마음, 가족을 잃은 가족의 슬픔, 어린 나이에 목숨을 바친 소녀를 생각하며 만들었다. 2장은 모든 사람들이 힘을 모아 항쟁을 했던 장면과 감옥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두 남자, 그리고 목숨을 바친 모든 사람들이 강물 빛처럼 아름답게 강에서 평화로움을 느끼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3장은 그들의 영혼을 추모하는 장면이다.

인상적인 장면 중에 무대 바닥에 검정 재가 가득 깔려 있는 부분이 있다. 이름 없이 희생되어 재만 남기고 사라진 영혼들을 상징하지 싶었다. 특별한 의도가 있었는가?

무용 작품을 보면 어떤 예술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보는 사람마다 생각하는 게 다르고 그래서 더 좋은 것 같다. 재는 젊은 학생들이 뿌렸던 전단지가 불에 타 버린 것을 생각했고, 하늘과 땅과 도시에서 짓밟혀 타버린 모습도 상징하고 있다. 또 난장판이 된 잔인한 시내에서 항쟁한 사람들의 모습도 투영되어 있다.

주재만 (사진제공=광주시립발레단)

잘 알다시피 발레에서는 음악이 중요하다. 평소 음악 사용에 대한 생각과 이번 작품에서 사용된 곡들의 선택 배경도 궁금하다.

그렇다. 음악은 너무도 중요한 요소이다. 이 작품을 만들면서 솔직히 말해 고생이 많았다. 먼저는 제가 상상을 잘 할 수 있어야 되고 관객도 음악을 들으며 영감(Inspiration)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각 장면 마다 제 머리 속에서 상상을 하면서 그림을 그린다. 항쟁 당시 사람들을 생각하며 실제 어떤 모습이었는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를 음악과 함께 그리려 했다.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야 기본 작품이 만들어진다.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은 거의 비슷한 것 같다. 슬픔과 괴로움, 아픔 같은 한국인들의 정서까지 중요하게 생각하며 음악을 선택했다.

10개의 장면이 독립된 갈라(Gala)로 봐도 무방할 정도로 각 장면마다 캐릭터가 달랐고 무용수들도 다양하게 기용되었다. 보통 발레단의 경우는 단체의 위계에 맞게 배역이 정해지나, 이런 부분(수석, 차석, 상임단원, 비상임단원)에 얽매이지 않고 10개의 장면에 적합한 무용수를 선정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많은 클래식 발레단은 수석, 차석 같은 위치가 매우 중요하다. 그렇지만 저는 그런 생각보다는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동작이나 성격을 개성 있고 진솔하게 할 수 있는 무용수를 우선 선택한다. 직위에 상관없이 역할을 맡긴다.

광주시립발레단이 이번 작품으로 좋은 경험과 레퍼토리를 보유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작품을 만든 기간은 어느 정도였고, 어떻게 연습을 했는가? 참, 조안무의 역할도 궁금하다.

두 달 반 만에 작업을 완성했다. 처음에는 컨템퍼러리 작업이라 무용수들이 힘들어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저의 스타일을 이해하며 잘 따라와 주었다. 저랑 미국에서 함께 온 조안무 질리안도 저를 잘 도와줬고 무용수들에게 큰 힘이 된 것 같다. 질리안의 시범을 보며 시립발레단원들이 이해하기 쉬워졌다. 시간이 많지 않았는데 두 무용실을 나눠 연습할 수 있어 좋았다.

주재만 (사진제공=광주시립발레단)

이번 작품은 무엇보다 프로시니엄 극장의 원리를 최대치로 활용했다고 생각한다. 고리타분한 스펙터클이 아닌 추상과 환상을 가로지르며 세련된 미감으로 구현된 절제된 화사함이랄까? 여기에 동시대적인 시선도 놓치지 않아 의미 해석의 재미도 있었다. 안무자가 추구하는 컨템퍼러리 발레에서 중요한 점은 무엇인가? 무대장치 연출도 궁금하다.

요즘 많은 사람들은 보기가 좋아서, 아니면 쿨(cool)해서 세트와 조명을 많이 사용하는데 이러한 장치에도 분명한 의미가 있어야 한다. 무대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춤이다. 사람들의 이야기가 우선 중요한 바탕이 되어야 하고 그 다음에 작품이 구성된다. 저는 그렇게 한다. 그렇게 계속 상상을 하고 움직임을 만들면 자연스럽게 무대세트와 교류지점을 찾게 된다. 컨템퍼러리 발레는 클래식 작품보다 동작들이 더욱 창작적이고 구체적이며 복잡한 다이내믹의 연결성과 상상력의 구성이 중요하다. 그리고 뉘앙스도 고려한다. 그럼에도 아름다운 전통적 발레 테크닉과 라인들이 아주 중요한 바탕이 된다. 그렇지 않고는 발레라 할 수 없다. 더불어 관객이 공감할 수 있게 무용수들이 춤을 추면서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표현할 수 있게 하려고 한다.

제가 컨템퍼러리 발레 안무자이나, 안무자마다 하고 싶은 것이 다양할 것이다. 이를 존중한다. 많은 안무자가 움직임만 중시하기도 하나 그것도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주제나 내용이 없어도 아름다운 무용수의 적정한 움직임에 집중한 작품도 좋다. 안무자만의 자기철학이 있을 것이다. 제 경우에는 작품을 할 때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감성’이다. 제가 살아온 경험 속에서 배우고 느낀 것들과 제가 마음을 나눴던 시간들과 사람들을 소재로 많이 표현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 자체의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에 집중한다.

한국 발레에 결여된 점 하나가 ‘발레를 위한 발레’ 창작이 주를 이룬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시대적인 감수성과 비판적인 시선으로 사회와 소통하며 현실을 인식하는 작품이 부족하다. 뉴욕의 발레계 상황은 어떤가.

비슷하다. 한국 발레단에 안무자로 와서 짧은 연습 기간 살펴봐도 컨템퍼러리 발레가 습관화 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무용수 몸에 배어 있지 않아 상상력과 자기 춤을 발견하는 창조력이 약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한국에서 작업을 할 때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러나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는 거의 레퍼토리의 절반이 컨템퍼러리 발레여서 한국보다 앞서 있다.

뉴욕 컴플렉션즈 발레단에서 무용수와 안무가로 활동을 오래 했다. 최근에 미국 포인트파크 대학 발레 교수가 되었다는 소식도 들었다. 축하한다. 우리나라 대학과 다른 교육과정이나 안무자 수업, 교과과정이 있는가?

크게 다른 점은 없다. 학생들은 발레 테크닉을 배우고 안무 수업하고 유명한 안무자와 함께 작품을 만드는 등 한국과 거의 비슷한 것 같다.

한국에서 주재만 안무가의 작품을 기다리는 팬들이 많다. 작품 계획이 있는가? 해외에서의 계획도 듣고 싶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한국에 가서 작품을 만들고 무용수들과 작품을 올리는 일이 너무 행복한 시간이다. <DIVINE>이 다시 올려지길 바라고 그럴 수 있다면 한국에 가고 싶다. 지금 피츠버그 발레단에서 저의 신작 연습에 들어갔다.

꼭 한국에서 좋은 작품으로 다시 만나길 기약하며 인터뷰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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