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리뷰] 지역의 문화유산과 상생하며 예술적 발판 마련하기
[축제리뷰] 지역의 문화유산과 상생하며 예술적 발판 마련하기
  • 김혜라 무용평론가
  • 승인 2023.10.24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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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 군산국제무용축제(International Dance Festival in Gunsan, IDFG 2023)
스튜디오 몸 (사진제공=군산국제무용축제)
군산의 스튜디오 몸 (사진=김혜라)

[더프리뷰=군산] 김혜라 무용평론가 = 유네스코 국제무용협회(CID-UNESCO) 한국본부 군산지부(지부장 최재희)가 주최하는 제3회 군산국제무용축제가 9월 20일부터 23일까지 나흘 동안 열렸다. 전라북도에서는 보기 드문 순수춤 축제로, 군산 출신인 최재희 지부장이 다른 지역에 비해 열악한 군산에서 춤으로 예술의 사회적 가능성을 열고자 시작한 축제이다. 전북을 중심으로 성장한 예술가들에게 춤 출 기회와 공간을, 시민들에게 순수 창작물을 볼 기회를 제공하며 국내외 국제교류의 플랫폼이 되려는 목표를 갖고 있다. “한 명의 예술가가 지역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신념으로 출발한 축제는 코로나 19 시기를 거쳐 3회째를 맞이했다.

군산은 1899년 개항한 근대 항구의 모습과 일제 강점기의 일본식 문화가 잔존해 있는 대표적인 근대문화유산 도시이다. 한반도 침략의 발판이었던 군산항에서 ‘현재의 길을 묻다’라는 주제로 1회 군산국제무용축제(2021)가 개최되었고, 대표적인 군산 근대사의 세월이 깃든 옛 군산세관 창고 ‘정담’에서 2회 축제(2022)가 전통춤의 숨결로 과거의 사적 의미를 환기시켰다. 올해는 과거를 거슬러 현재를 살아가는 춤추는 몸(사람)들이 자연에서 어우러지며 시민들과 만나는 데 방점을 두었다. 근대의 역사적 아픔과 함께 지역의 가치를 장소에서 사람으로 옮겨 조명하고, 미래로 도약하는 상생 비전을 염두한 행보이다.

‘춤은 곧 자연이다’라는 명제로, 올 축제는 네 가지 방향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프로시니엄 극장 형식에 적절한 작품과 콘서트 형식의 기획공연, 어린이들과 야외에서 진행된 커뮤니티 작업과 즉흥잼, 그리고 열린 광장에서 시민들과 교감하려는 프로그램으로 다채롭게 구성되었다. 총 5개국 16개 단체가 참가한 축제는 지역 문화인사들의 관심과 축제의 활성을 위해 자발적으로 십시일반 지원하는 지역민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군산예술의전당 소공연장에서 열린 개막공연(20일)은 장대비가 쏟아지는 가을 밤 로비에서 즉흥 퍼포먼스 <자연_몸_춤추다>로 관객을 맞이했다. 개막공연의 첫 무대를 연 전북도립국악원 무용단 이혜경 단장의 <나비바라>는 6명의 독립적이고 강인한 군무로 전통적인 바라춤을 박진감 있는 속도와 극장의 미감에 어울리게 현대적으로 해석한 춤이다. 이어 대표적인 중견 독립단체로 예술성과 대중성을 갖춘 리케이댄스는 특유의 파워와 형형색색의 조명 오브제로 감수성 있는 작품 <ABC>를 선보였고, 두아코댄스 컴퍼니와 C2댄스컴퍼니는 시의성 있는 문제를 다룬 작업을 보여주었다. 기후변화에 대한 반성적 인식을 기계적인 움직임으로 역설한 두아코댄스의 <1℃>에 이어, 완벽함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의 고뇌를 은유한 C2댄스컴퍼니의 <눈물의 무게>는 인간의 내밀한 내적 갈등을 표현했다. 마지막으로 송형준의 자전적 이야기인 <너머>는 치매에 걸린 노모의 젊은 시절을 기억해 내는 아들의 침통한 심정을 구현, 관객들과 공감할 수 있었다. 극적 서사와 연기력이 겸비된 춤으로, 예스러운 작품이었다.

21일 공연된 프로젝트그룹 서로 (홍형준) (사진제공=군산국제무용축제)
21일 프로젝트그룹 서로 공연의 송형준. (사진제공=군산국제무용축제)

둘째 날(21일)은 지역의 예술가들로 구성된 프로젝트그룹 서로의 <가을밤의 아트 콘서트>가 스튜디오 몸 앞마당에서 펼쳐졌다. 감미로운 건반(조그린)과 가요에 맞춘 릴레이 공연으로 무용수들(김혜진 송형준 김슬기 정민아 이유림 임지애 탁지혜)이 대중친화적인 몸짓으로 관객과 편안하게 소통하는 콘서트였다. 이 곳은 일제 강점기에는 영화관이었고, 1960년대 즈음에는 여관으로 사용된 일본식 2층 양옥 건물이다. 폐가처럼 버려져 있던 곳이 현재는 군산국제무용축제 조직위원회 사무국이 상주하는 공간으로 변모했고, 평상시에는 공유공간으로 활용된다. 달마다 지역민과 함께 식사나 이벤트를 열고 전시공간 같은 문화사랑방의 역할을 한다. 국제교류가 잦아지면 레지던시 공간으로 사용할 계획도 있다니 운치 있는 예술공간이 될 것 같다. 최 지부장은 1960년대 미국의 저드슨처치에서 시작된 포스트모던댄스의 물결처럼 이 곳에서 새로운 춤의 기운이 생동하길 바라고 있다.

사실 군산은 소화권번에 입적하여 도금선으로 이어받은 도살풀이 명인 장금도 선생의 고향이자 육정림 선생이 춤의 뿌리를 내린 곳이다. 따라서 육정림과 장금도 두 예인을 중심으로 다룬 ‘군산무용 변천사' 포럼(2022년 9월 20일)도 이 곳에서 열렸다. 축제를 단단하게 지탱하는 기초작업으로 꾸준히 군산을 재조명하는 리서치를 이어갈 것이라며, 올해는 옥구들노래보존회와 협업, 나포철새현장 같은 곳을 발굴할 계획이다. 스튜디오 주변에는 역사문화 작가들과 연극단체 연습실이 입성하여 함께 개복동 예술거리의 부활도 꿈꾸고 있다. 춤바람으로 새로운 기운을 모을 수 있는 군산 예술의 집성지로 이 공간의 향방이 주목된다.

23일 공연된 한상률 공연 모습 (사진제공=군산
23일 한상률 공연 모습 (사진제공=군산국제무용축제)

쌀 창고를 개조한 팔마예술극장에서 외국 안무가들과 셋째 날(22일)을 이어갔다. 공간은 유럽의 한적한 마을 같은 매력적인 장소로, 공연을 비롯하여 미술관과 문화센터 역할을 하는 곳이다. 특히 공간 뒤쪽은 실제로 일제시대 쌀을 수송했던 철로와 일반 철로가 나란히 마주하고 있다. 극장 안팎의 환경과 역사적 상흔이 서린 장소에서 추는 춤은 공간이 품고 있는 아우라로 일반 극장과는 다른 센티멘털(sentimental) 감성을 일으킨다. 박준형의 춤 <바림하는 몸>은 내적 심상이 여러 톤으로 표출되는데, 때론 격정적으로 때론 무심하게 시종일관 진지하게 자신과 투쟁하듯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미국의 카일 에이브러햄과 미아 모라우(Kyle James Abraham & Mia Moraru)의 듀엣 <Exodus, internal and external>과 대만 쿠오유첸(郭宥辰, Kuo Yu Chen)은 추상적인 춤으로, 송형준의 <꽃구경>은 장사익의 곡과 판소리로 서정적인 춤을 보여주었다. 개성 있는 단체인 온앤오프무용단의 <우리의 기원>은 상당히 흥미로웠다. 한창호와 도유의 몸이 겹쳐서 일궈내는 움직임의 변이는 유기물 내지는 어떤 생명체를 표상하며 여러 해석적 가능성을 내보였다. 섬세하고 부드럽게 일렁이는 둘의 몸은 이질적인 느낌과 상상력을 촉발하며 ‘우리의 기원’을 역으로 탐색하려 한 내공 있는 작품이다.

23일 공연된 박수로&강세림 공연모습 (사진제공=군산국제무용축제)
23일 박수로와 강세림 공연 (사진제공=군산국제무용축제)

마지막 날(23일)은 구 시청 광장에서 ‘꿈의 댄스팀’ 어린이들의 즉흥 잼, 오후에는 폐막 공연이 이어졌다. 주하영의 <달로코스터>에선 현실이란 삶의 무게가 함축된 버둥거리는 신체와 천진한 아기의 놀이가 자연에서 창발적으로 직조된다. 주하영(엄마)은 비비고 매달리는 아기를 안고 있으나 실제 무용수의 의식은 비현실적인 곳으로 침잠하는 대비되는 모습에서 여러 감정이 들었다. 매 순간 진동하며 살아내야 하는 작디작은 나라는 몸뚱이의 독백 같은 춤에 열렬히 공감할 수 있었다. 구로타키 야스시(Kurotaki Yasushi, 일본)의 <Double poem>은 한 개인(피아니스트)의 환상과 고뇌를 과장된 몸짓과 표정으로 개성 있게 표현했다. 한상률의 <마디는 흐른다#2>는 우리 몸의 뼈와 뼈 사이의 관계와 틈을 탐색한 춤이다. 한 명은 평면적인 몸 사용을 하고 다른 무용수는 원형적인 몸 씀을 하면서 둘의 조합은 접점이 없는 낯선 객체로 보였다. 감춰진 몸의 일부와 조직을 상상하며 만든 작품은 내부기관을 안무 소재로 다루며 춤적 사유를 확장한 작업이다. 익명의 관객은 “몸이 화학적인 반응을 하는 것 같다”고 말해 순수 현대춤도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게 하였다. 중국의 장혜영(Jiang Hui Ying)은 사회의 규범에서 벗어난 의미로 가장 솔직한 벗은 몸으로 자연에 귀화하려는 의지의 춤 <Let me fall>을 추었고, 박수로와 강세림의 작품 <노바디>는 돈에 지배 당하는 사회를 풍자하며 자본주의와 무관한 자신들의 현존이 소중함을 시사하는 젊은이다운 작품이었다.

코로나19 시기 어렵게 출범한 축제는 3회를 맞아 소수의 인력과 부족한 지원금에도 불구하고 프로그램 구성이나 방향성이 견고해지고 있는 인상을 받았다. 내년에는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광장축제로 확장, 더 많은 시민들과 만나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축제는 지역의 신진 예술가를 서울과 해외로 진출시키고, 전북을 아우르는 콘텐츠로 기반을 다지려는 모습이다. 기존의 엇비슷한, 이름만 ‘국제’를 내세운 대도시 축제와는 달리 군산에 맞는 장소성과 유산을 발굴하려 하니 관심을 갖고 지켜볼 일이다. 모쪼록 축제기간만이 아니라 꾸준히 지역의 문화를 연구하고 개발하여 ‘로컬리티(Locality)’가 뚜렷한 차별성 있는 축제로 약진하길 기대한다.

23일 폐막공연을 마친 후 (사진제공=군산국제무용축제)
23일 폐막공연을 마친 후 (사진제공=군산국제무용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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