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첼로 연주의 새로운 패러다임 – 심준호 첼로 독주회
[공연리뷰] 첼로 연주의 새로운 패러다임 – 심준호 첼로 독주회
  • 최태경
  • 승인 2023.11.02 01: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2023년 9월 16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더프리뷰=서울] 최태경 음악칼럼니스트 = 20세기 클래식 음악사에는 유례없는 '인기의 광풍'이 불어왔다. 이에 가장 크게 일조한 것은 명백하게도 오이스트라흐, 로스트로포비치, 메뉴힌, 굴드와 같은 시대의 슈퍼스타, 이른 바 거장들이었다. 거장들은 본인의 학파를 배경으로 하여 스스로의 확고한 스타일과 독창적인 음색을 만들었고 많은 대중이 이에 열광하였다.

하지만 21세기에는 거장의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트렌드가 움텄는데, 그것은 ‘나를 표현하기 보다 작곡가와 그의 의도를 표현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모차르트 곡을 연주할 때, 옛 거장들은 모차르트의 유쾌발랄한 캐릭터나 시대적 연주 스타일보다 솔리스틱한 연주 기법, 드라마틱한 해석 그리고 본인의 정체성을 더 중시하였다. 그러나 새로운 트렌드에 발맞춘 현대의 연주자들은 나보다 모차르트와 시대적 연주법에 근거한 연주를 우선시한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 트렌드에 근접한 연주자는 연주를 통해 본인의 정체성을 드러내기가 어려워 관객들에게 자신의 매력을 어필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에 현재 많은 연주자들이 이 부분에 대하여 고심하며 방향을 모색하는 중이다.

비가 내려 분위기가 짙게 내려앉은 가을밤, 첼리스트 심준호의 독주회 '슈만 Schumann'에 다녀왔다. 앞서 21세기 클래식 음악 트렌드의 어려움을 언급하였는데, 이런 관점에서 가장 난해한 작곡가 중 하나가 바로 슈만이다. 슈만은 통곡이 아닌 가슴 속 눈물과도 같은 내향적 아름다움을 지닌 작곡가이다. 이러한 작곡가의 성향과 달리, 기존의 많은 거장들은 짙은 농도의 굉장히 로맨틱한 슬픔으로 슈만을 표현하는 것이 대부분이었고 이 방식의 해석은 관객들에게 감정을 전달하는데 꽤나 효과가 좋았다. 그러나 새로운 트렌드에 발맞춘 연주자들은 슈만의 본질에 다가가려 하니, 이는 실질적으로 내향적 성향의 완급이 적당히 조절되지 못하면 관객들에게 감정 전달이 잘 되지 않는 어려움이 있다. 또한 슈만의 작품들은 독보적인 감성적 아름다움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정신질환으로 인한 복잡하고 빠른 감정 변화와 이성적 체계의 부재가 많기 때문에, 슈만의 본질을 온전히 표현하는 것은 연주자에게 아주 어려운 과제이다. 그러나 최근 한국의 젊은 첼리스트로서 관객들의 많은 호응과 관심을 받는 심준호이기에 이번 독주회가 더욱 기대가 되었다.

심준호는 <로망스>로 독주회의 문을 열었다. 허망함이 가득한 그의 유려한 선율은 길을 잃은 듯하다가도, 이내 심장이 멎을 정도의 절박한 사랑의 아픔이라는 목적지에 도착하였는데 이러한 흐름에 수많은 관객들은 그에게 순응하듯이 옆 사람의 숨소리도 들릴 만큼 고요히 탄식하였다. 첫 곡을 듣자마자 알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슈만의 사랑은 '아픔'이라는 것이었다.

<시인의 사랑>은 슈만의 대표 작품 중 하나이지만 연가곡이기에 첼로로는 많이 연주되지 않는다. 성악곡을 현악기로 연주하는 경우, 너무 많은 음절로 인하여 곡의 흐름이 쉽게 끊어지기에 매끄러운 표현이 힘들다. 하지만 심준호의 자연스러운 표현이 섬세한 균형과 조화를 이룬 소리로 이어졌고 이질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프레이징을 지닌 연주였다. 특히나 제7곡, ‘나는 원망하지 않으리’는 연인으로 인한 고뇌를 표현한 곡인데 심준호의 연주에서는 혹시 모를 작은 희망의 불씨를 지니고 있는 것 같은 감정선이 정말 탁월하였고, 이로 인한 슬픔이 애처롭게도 그리고 행복하게도 느껴졌다. 더불어, 피아니스트 박종해와의 호흡 또한 아주 특별하였다. 박종해는 단순히 피아노에서 나는 소리만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공간의 울림을 이용하며 연주장을 화성적 울림으로 풍성하게 채웠고 그 울림을 타고 흐름을 이어 나갔다. 심준호가 만들어내는 첼로의 어둡고 쓸쓸한 저음과 달콤한 속삭임 같은 고음의 이야기가 박종해가 만들어 낸 배경과 함께하여 더욱 빛나며 아련하게 들렸다.

심준호와 박종해(이미지 제공 = 마스트미디어)
심준호와 박종해 (사진제공=마스트미디어)

클렘(Richard Klemm)이 편곡한 <4대의 첼로를 위한 슈만 첼로 협주곡>은 심준호와 젊은 남자 첼리스트 3명이 동행하였다. 편곡에서 다소 아쉬운 부분이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어조, 냉철한 카리스마, 짙은 음색 그리고 큰 볼륨과 같은 콘서트 첼리스트로서의 심준호의 뛰어난 자질을 볼 수 있었다.

심준호는 옛 거장들과 같이 본인의 방식으로만 슈만을 연주하지도 않았고 트렌드라는 명목하에 슈만의 방식으로만 표현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는 오롯이 슈만이 되었고 그의 곡들을 통해 사랑과 행복을 노래하고 속삭였으며 슬픔과 고통을 통해 이 모든 것들을 부수었고 묻어 버렸다. 그러한 창조와 파괴의 연속을 통해 관객들 역시도 슈만을 이해하려 노력할 필요가 없었고 슈만의 육성을 들으며 그 자체만을 느끼면 되었다. 심준호의 연주에서 슈만의 ‘사랑’이 더욱 애달프게 들린 이유는 그 스스로가 슈만의 영원치 않은 행복을 보았기 때문이었고, ‘슬픔’이 더욱 아름답게 보인 것은 슈만의 고통을 영원치 않게 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심준호와 세 명의 첼리스트(이미지 제공 = 마스트미디어)
심준호와 세 명의 첼리스트 (사진제공=마스트미디어)

이날 심준호의 연주를 통해 클래식 음악 연주의 본질에 대하여 한번 깨달음을 얻었다. 그건 바로 작곡가, 연주가 이전에 음악 자체라는 것이다. 필자는 심준호의 연주가 많은 동시대 음악가들과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에게 좋은 귀감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공연 포스터 (사진 제공 = 마스트미디어)
공연 포스터 (사진제공=마스트미디어)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