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리뷰] "부산이 출렁거렸다" - 부산국제공연예술마켓(BPAM)의 성공적인 출범
[축제리뷰] "부산이 출렁거렸다" - 부산국제공연예술마켓(BPAM)의 성공적인 출범
  • 이만주 시인/춤비평가
  • 승인 2023.11.17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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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토크의 'Koreality' 공연 (사진제공=BPAM)

[더프리뷰=부산] 이만주 시인/춤비평가 = 부산이 출렁거렸다. ‘공연예술의 새로운 물결’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올해 2023년 10월 부산국제공연예술마켓(Busan International Performing Arts Market, BPAM)이 야심적으로 출범했다. 궁극적으로 ‘아시아 최대 공연예술 도시’ ’진정한 공연예술의 국제시장’을 지향하며 부산시가 해양국가의 항구도시다운 진취성과 팀워크를 내외에 과시했다.

부산은 바다를 낀 항구다. 부산의 ‘산’이 의미하듯 산도 많다. 사람들 인심도 좋다. 부산의 남자도 여자도 화끈하기로 유명하다. 또 맛의 고장이기도 하다. 부산은 공연예술축제하기에 안성맞춤인 최적의 장소이다. 그 부산의 가을이 축제로 부산했다.

7월은 프랑스의 아비뇽 축제(Avignon Festival), 8월은 영국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 페스티벌(Edinburgh International Festival)로 한여름 떠들썩했다가 9월 한 달 숨을 고른 다음, 10월은 부산. BPAM의 시기 선정이 좋았다. 높푸른 하늘, 쾌적한 기온, 한국의 10월은 얼마나 아름다운 때인가?

10월 4-13일 열린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가 끝남과 맞물려 마치 배턴 터치라도 하는 양 10월 13-16일 BPAM이 부산시민회관을 비롯해 근처 극장들인 가온아트홀, 일터소극장, 그리고 KT&G 상상마당 부산에서 펼쳐졌다. 같은 기간 이미 14회째가 되는 부산국제춤마켓(BIDAM, 10월 13-15일)이 금정문화회관에서 열렸다. 또 부산거리예술축제(BUSSA, 10월 13-15일)도 부산시민회관 일대에서 벌어졌고, 작지만 강한 ‘작강연극제’를 비롯해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 세계여성공연예술축제의 대표적인 작품들도 이 기간 함께 무대에 올려졌다.

'축제형 마켓' 형식으로 이루어진 BPAM에는 22편의 공식초청작품(Choice)과 70편의 협력·연계형작품(Wave), 모두 92편이 무대에 올랐다. 10월 13일 소극장에서의 연극 공연들을 필두로 개막식은 14일 오후 4시부터 부산시민회관 대극장에서 있었다. 부산 그루잠 프로덕션의 작품 <SNAP>과 자연스럽게 연계되어 일종의 옴니버스 식으로 진행된 개막공연은 마술 같은 느낌이 들어 색다르고 참신한 느낌을 주었다.

부산거리예술축제 공연 (사진제공=BPAM)

개막공연부터 관객을 사로잡은 에너지

이스라엘 출신의 샤하르 비냐미니(Shahar Binyamini)가 안무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학생 48명이 춘 현대춤 작품 <볼레로>는 한국 젊은 춤꾼들의 출중한 기량과 폭발하는 젊음의 열기로 무대와 객석을 사로잡았다. 개막공연의 하이라이트였다. 나흘 동안 크고 작은 공연이 숨 가쁘게 이어진 끝에 마지막을 장식한 폐막작품은 전미숙무용단의 <BOW>였다. 주최측은 비록 현대춤이지만 ‘인사’ ‘절’을 의미하는 작품을 선택하여 동양적인 세계를 보여주려고 의도한 것 같다. 제1회, BPAM의 론칭(Launching)임을 감안할 때, 개막식부터 폐막공연까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특히 첫 회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예상보다 많은, 80여 명의 해외 공연예술축제, 마켓의 관계자들, 최고책임자들, 대표들, 예술감독들이 참여했다. 에든버러 프린지(Edinburgh Festival Fringe), 오프 아비뇽(Festival Off Avignon)은 얼마나 전 세계 공연예술가들이 참가하고 싶어하는 축제인가? 컨템퍼러리 댄스의 메카가 된 런던의 더 플레이스(The Place) 극장은 얼마나 전 세계 무용가들이 서고 싶어 하는 무대인가? 그런 축제와 극장들의 최고책임자들이 BPAM에 왔다는 것은 영화로 치면 칸, 베를린, 베네치아 영화제의 집행위원장이 왔다는 것과 같은 격이다. 또한 축제와 마켓을 모범적으로 잘 연계 진행하고 있는 루마니아 시비우 축제(Sibiu International Theatre Festival)의 프로그래머, 캐나다 퀘벡의 공연예술 그룹 12개팀(이중 2팀은 ‘Quebec on Stage’라는 이름으로 쇼케이스를 하기도 했다), 미국, 인도네시아, 홍콩, 싱가포르의 관계자들, 홍콩에 거주하지만 사실상 중국통인 프로그래머 등등 실로 세계 공연예술계의 막강한 인사들이 왔다는 것은 참가자 면에서도 성공적이라 할 수 있었다. 그것은 한국이 여러 부문에서 그만큼 국제적으로 중요한 나라가 되었다는 증거이고 이번 주최 측의 역량 덕택이라 생각한다.

캐나다 퀘벡 무용단 쇼케이스 (사진제공=BPAM)

세계사 발전 3단계? 이제는 C의 시대

주지하다시피 세계사는 ABC의 단계로 발전해 왔다. A(Army) 단계에서는 군사력이 제일 중요했고 무력으로 남의 나라나 땅을 빼앗는 것이 국력을, 경제력을 늘리는 길이었다(일부 정치 지도자들은 아직도 이 착각에 빠져 있음). 다음 B(Business)의 단계에서는 군사력보다는 더 발전된 기술로 좋고 편리한 물품을 만들어 다른 나라에 팔아, 즉 부(富)를 빼앗아 경제력을 신장시켰다. 하지만 이제는 C(Culture)의 시대가 되었다. 선진국들의 경제적 삶의 질은 더 이상 추구할 필요가 없을 만큼 향상되었다. 더 본질적인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선진국들 사이에서는 문화의 향유가 관건이 되었다. 따라서 Culture가 부(富)를 생성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일반 상거래에서도 “좋은 상품의 생산보다 더 중요한 것이 유통, 즉 판매”라고 한다. 아무리 좋은 상품이라도 팔지 못하고 쌓여 있다면 의미가 없다. 공연예술도 마찬가지다. 많이 알려지고 초청되어, 즉 많이 팔려 여러 곳에서 공연이 될 때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유럽 나라들은 공연예술마켓의 필요성을 알게 된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하에서는 공연예술도 마케팅이 중요함을 진즉에 깨달은 것이다. 물론 공연예술은 일방적인 흐름이 아니라 세계 각국의 각기 다른 예술들의 교류가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국의 공연예술 수준은 결코 낮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후발주자이고 영어라는 언어장벽 때문에 공연예술 수준이 높아도 아직 변방이다. 근래 K-Pop이 한류의 첨병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만큼 오늘날은 고급예술과 대중예술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고급예술 못지않게 대중예술도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한 나라가 진정 선진국으로 인정받으려면 그 나라에 세계인이 인정하는 국제적 수준의 고급문화 예술축제가 있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부산의 이번 BPAM 출범 결단은 높이 사줄만하다.

프랑스 남부의 아비뇽은 인구 20만의 소도시이다. 외곽 인구까지 합쳐야 48만이다. 영국 스코틀랜드의 수도인 에든버러는 인구 55만이다. 330만 인구의 부산에 비하면 상대가 안 되는 작은 도시들이다. 하지만 그 작은 도시들이 축제 기간에 수 천 개의 공연을 소화해 낸다. 그 둘은 가히 축제의 도시이다.

해외 델리게이트들을 위한 리셉션 (사진=이만주)

세계의 축제 메카가 된 두 소도시, 에든버러와 아비뇽

올해 2023년 에든버러 시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4월에는 과학축제(Edinburgh Science Festival), 5월에는 국제어린이축제(Edinburgh International Children's Festival), 7월에는 재즈/블루스축제(Edinburgh Jazz & Blues Festival)가 열렸다. 그리고는 8월 3주 동안 지금 이 글에서 다루려는 에든버러 페스티벌(Edinburgh International Festival)과 동시에 에든버러 프린지(Edinburgh Festival Fringe)가 개최되었다. 그밖에도 같은 시기에 군악축제(The Royal Edinburgh Military Tattoo)와 서적축제(Edinburgh International Book Festival)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렸다.

1947년 시작되어 거의 80년이 다가오는 에든버러 페스티벌은 처음 정통 클래식 음악, 오페라, 연극, 춤 등으로 시작되어 오늘날도 그 전통을 유지한다. 올해는 50개국에서 2,500명의 음악가와 공연예술가가 참가해 295개의 공연과 연주를 했다. 대학생과 장애인들, 예술산업 근로자들, 26세 아래의 청년들에게는 특별할인의 혜택을 주는 것과 특히 클래식 음악 연주회의 경우, 18세 이하에게는 신청을 받아 무료 관람의 기회를 주는 것이 특징이다.

공연예술에 있어서 프린지(Fringe)는 오프 아비뇽(Festival Off Avignon)의 off*와 거의 같은 개념으로, ‘중심이나 주류에서 벗어난 가장자리나 비주류’를 뜻한다. 에든버러 프린지(Edinburgh Festival Fringe)는 축제에 정식 초청 받지 못한 8개 연극단체가 축제의 변두리에서 자체적으로 공연 판을 벌인 데서 시작되었다. 그런 일이 계속되자 프린지도 관리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1958년 집행기구인 프린지협회(Fringe Society)가 생겼다. 그런데 프린지의 경우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관리만 할 뿐, “심사하거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한다. 오늘날 에든버러 프린지는 정규 페스티벌보다 훨씬 큰 판이 되었다. 연극, 오페라, 뮤지컬, 코미디, 춤, 신체 쇼, 서커스, 카바레,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공연, 만담 등, 세상의 온갖 재주 있는 사람들이 다 모여드는 세계의 축제가 된 것이다. 프린지협회 측도 “누구에게나 무대를 제공하고 모든 사람에게 좌석을 허용한다(To give anyone a stage and everyone a seat)”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게 되었다. 이제 ‘프린지’는 ‘오프’와 마찬가지로 ‘실험’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부산국제공연예술마켓 연극공연 (사진제공=BPAM)

올해는 3주 동안 67개국의 공연예술가들이 참여하여 288개 장소에서 크고 작은 3,553개의 공연(Show)을 했다. 500개의 거리공연, 버스킹 공연이 이루어졌다. 17차례의 나라별 쇼케이스가 있었다. 49개국 1,400여 명의 이름 있는 제작자, 프로그래머, 예약자, 에이전시가 몰려들었다. 또 각국에서 840명의 언론, 방송 관계자들이 방문했다. 총 170여 개 나라에서 예술가, 예술산업 관계자, 언론, 방송인, 관객이 참여해 총 2,445,609장의 관람권이 발행되었다.

에든버러 축제와 에든버러 프린지는 1947년 시작되었고, 아비뇽 축제 역시 같은 해에 시작되어 2023년 올해로 78회째였다. 오프 아비뇽의 경우, 공식 출범을 1966년으로 쳐 올해가 제57회였다. BPAM은 이제 시작이다. 이번 첫 회에 초청 받아 참관한 국내 인사로서 BPAM의 발전을 위해 몇 가지를 생각해 본다.

숨 고르며 다잡아야 할 일 몇 가지

첫째, 이제 막 시작한 BPAM이 세계적인 축제와 마켓이 되려면 우선 그에 걸맞은 한국어와 영어로 된 훌륭한 홈페이지, 웹사이트를 필요로 한다. 현재 bpam.kr에 들어가 보면 전체적인 골격 제목 이외에는 텅 비어 있다. 올해가 첫 회였고 이제 끝난 지 얼마 안 되었으니 준비 중이란 것을 이해한다. 홈페이지에는 지난 마켓과 축제들의 가능한 모든 자료가 글, 통계수치, 영상으로 수록되어 있어야 한다. 에든버러의 모든 페스티벌이 통합되어 각 페스티벌로 들어갈 수 있는 에든버러 축제들의 홈페이지 edinburghfestivalcity.com과 아비뇽 축제, 오프 아비뇽의 festival-avignon.com과 festivaloffavignon.com을 본보기로 참고할 필요가 있다. 아카이브에는 과거에 공연한 것들이 연도별로 저장되어 있다. 오프 아비뇽의 경우는 벌써 내년 날짜가 확정되어 떠 있다. 구글 번역기의 덕이지만 아비뇽 축제와 오프 아비뇽의 경우는 홈페이지 자체에서 곧바로 133개 언어로 볼 수 있는 점도 놀랍다.

둘째, ‘화양연화(花樣年華, 인생의 가장 행복한 시절)’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열리는 홍콩아트페스티벌(Hong Kong Arts Festival, 香港藝術節)을 일정 부분 벤치마킹하는 것도 좋다. 1973년 시작되어 내년 2024년이면 52회째를 맞는 HKAF는 모든 공연을 망라하는 고급스런 공연예술축제이다. 매년 2월 초부터 3월 초까지 열리는데 역시 홈페이지(hk.artsfestival.org)도 훌륭하며, 완벽하고 세련되어 보이는 팸플릿은 물론 모든 것이 준비를 끝낸 상태이다. 수 개월 전부터 입장권을 예약할 수 있으며, 여러 개를 관람할 때의 할인제도가 잘 구비되어 있다. 멤버십 카드가 있고 카드 소지자에게는 제휴 음식점, 아트숍에서 할인 혜택을 준다. 금융과 상업의 도시답게 홍콩경마회, 중국공상은행을 비롯하여 여러 은행, 캐세이퍼시픽 항공사, 하이야트 호텔 등을 스폰서로 두고 있다. 지난 축제의 리포트도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셋째, 부스 운영, 매칭 프로그램, 세미나, 네트워킹 파티, 쉼터 운영 등을 내년부터는 구색을 갖추는 차원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효과를 볼 수 있도록 연구할 필요가 있다.

부산국제공연예술마켓 공연 장면 (사진제공=BPAM)

넷째, 부산을 대표하는 킬러 콘텐츠를 연구해야 하고 더 구체적으로는 부산을 방문하면 꼭 보아야 할 2-3개의 킬러 콘텐츠 개발을 고민해 보아야 한다. 뉴욕이나 런던에 가면 언제나 대표적인 뮤지컬을 볼 수 있다. 한때 수십 년 동안 런던에 가면 추리작가 아가사 크리스티 원작의 <쥐덫>을 보아야 하는 것이 관광의 필수 코스였다. 베트남 하노이의 수중 인형극도 좋은 예이다.

다섯째, 부산은 맛, 미식의 고장이다. 다른 외국 축제들과 차별화하여 무언가 맛과 연계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생각해 볼 일이다. 외국인 참가 등록자들에게 <부산 맛집> 책자의 영어판, 중국어판, 일어판을 나누어 주고, 행사 기간에 한두 번 부산의 맛 소개 프로그램을 제공했으면 한다. 몇 번 파티가 있었지만 부산 음식이 전혀 놓여 있지 않았던 점이 아쉬웠다. 부산의 만두 종류라든가 어묵, 수육, 부산 특유의 디저트(서양 것이라도 부산에서 개발했으면 부산의 맛임) 등이 놓여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여섯째, 공연예술가, 행정가들의 전반적인 영어 수준 향상을 꾀하여야 한다. 이번 BPAM을 보면서 공연예술마켓에서도 영어가 경쟁력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예술에 있어 국력을 따질 일은 아니지만 국력이 우리보다 훨씬 뒤지는 나라도 그 나라의 대표가 영어에 능통하니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요즘은 유튜브와 챗GPT(ChatGPT)로 자투리 시간에 혼자서도 영어 공부를 할 수 있는 편리한 세상이 되었다. 공연예술가와 행정가들도 자기의 생각과 철학을 영어로 표현할 수 있도록 영어는 잘 할수록 좋다.

결단과 노력, 노하우가 빚어낸 성과 – 이제는 미래로

이번 BPAM이 첫 번째임에도 불구하고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국제공연예술마켓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과감히 결단을 내린 부산시, 부산문화재단의 이미연 대표, 공연예술 전반에 대한 이해와 함께 행사 전반에 순발력 있는 대처능력을 보여준 김두진 예술진흥본부장과 실무진, 그리고 30년에 가까운 긴 세월 동안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시댄스)를 이끌어온 축제 경험과 함께 한국 공연계 인사로서는 가장 큰 국제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이종호 예술감독, 그리고 그 자신 무용가이자 부산국제무용제 운영위원장이면서 14년째 부산국제춤마켓(BIDAM)을 이끌어온 신은주 감독 등 장르별 프로그래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공이 지대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축제 중, 꽤 잘나가던 축제가 몰락한 경우들이 있다. 그렇게 된 까닭은 문화예술정책 당국의 안목과 철학 부재에도 기인하고, 축제 기획책임자의 역량이나 도덕성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정권이나 지자체장이 바뀌면 기존의 책임자들을 바꾸어 그 전문성과 지속성을 차단한 데에도 기인한다. 예술에는 정치나 정권의 선호나 논리가 개입되어서는 아니 된다.

BPAM 개막공연 (사진=이만주)

필자는 개인적으로 놀라운 경험을 했다. BPAM 마지막 날인 16일 부산시민회관 2층에서 밤 파티가 끝난 뒤 일행 몇 명과 지하철을 타고 호텔로 돌아오는데 비로소 알게 된 더 플레이스(The Place) 극장의 예술감독과 홍콩, 싱가포르에서 온 여성 대표들이 “어디 가서 간단히 한 잔 더 하자”고 했다. 한국인은 나 혼자이니 내가 앞장설 수밖에 없었다. 초량천변 술집들을 뒤지니 월요일 밤인데도 더 이상 자리가 없을 정도로 만원들이었다. 초조한 끝에 찾아낸 술집이 초량시장 입구의 서민들이 드나드는 소박한 ‘촌놈 통닭’ 치맥집이었다. 촌놈식 프라이드 치킨과 생맥주 500을 시켰다. 그런데 이게 웬일!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의 최고책임자(Chief Executive Officer), 시비우축제 프로그래머, 아르메니아 하이축제(High Festival) 예술감독이 찾아 들어왔다. 그러더니 조금 후 오프 아비뇽의 대표도 들어오는 것 아닌가?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런던, 에든버러, 아비뇽으로 이리저리 가봤자 개인적으로 만나기도 힘든 현대공연예술의 유럽 ‘권력자들’을 초량시장의 허름한 통닭집으로 집합시킨 격이 되었다. 그들과 우연히 만나 네트워킹이 되어 나 자신 놀랐고, 밤 12시 반까지 즐겁게 웃고 떠들다 기분 좋게 헤어졌다.

BPAM은 이제 시작이다, 갈 길이 멀다. 하지만 고구려 무용총 벽화에서 보듯 한국은 이미 1,600여 년 전 그 옛날에 연출과 안무가 있는 집단춤 공연을 하던 나라이다. 유럽 댄스하우스 네트워크(EDN)를 창설한 독일의 베르트람 뮐러는 “한국은 멕시코와 함께 세계에서 춤의 자산이 가장 풍부한 나라”라고 했다. 우리는 조선시대에 줄타기, 땅재주(B-Boying)를 하면서도 연극놀이를 하던 공연예술의 강국이다. 남들이 수백 년에 걸쳐 이룬 산업화, 민주화를 50년 만에 이루고 지금은 세계의 첨단을 달리는 것도 많다. 공연예술도 따라잡을 수 있다.

BPAM의 성공적인 론칭은 부산국제영화제 출범에 못지않은 일이다. 부산이 공연예술, 영화, 맛의 세계적인 메카가 되는 날은 올 것이다.

모두들 치맥 파티 (사진제공=이만주)

*공연예술 판에서 ‘오프(off)’라는 용어는 뉴욕에서 비롯되었다. 그야말로 큰길가인 브로드웨이(Broadway)의 큰 극장에서는 정통연극이나 대형 뮤지컬들이 공연되다 보니 실험적인 연극이나 작은 규모의 작품은 안으로 한 칸 들어가 떨어진(off) 작은 골목길(Off Broadway)에서 하게 되었다. 그래서 오프-브로드웨이(Off-Broadway)라는 말이 생겼다. 실험적인 공연들은 더욱 늘어났고 한 칸 더 들어간 오프-오프-브로드웨이(Off-Off Broadway)가 생겨났다. 그러다 보니 ‘오프 오프 브로드웨이’는 ‘오프 브로드웨이’보다 더 전위적인 연극을 지칭하게 되었다. 요즘은 뉴욕도 재개발사업이 활발히 진행되어 골목길 오프 브로드웨이들이 많이 사라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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