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리뷰] 지속 가능한 연결과 교류의 춤 플랫폼 - 제14회 부산국제춤마켓(BIDAM)
[축제리뷰] 지속 가능한 연결과 교류의 춤 플랫폼 - 제14회 부산국제춤마켓(BIDAM)
  • 노영재 무용평론가
  • 승인 2023.11.28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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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프리뷰=부산] 노영재 무용평론가 = 10월은 축제의 계절이다. 장르별 예술축제부터 소규모 지역축제까지 한 달 내내 축제가 끊이지 않는 이 기간, 부산에는 풍성한 춤을 만날 수 있는 부산국제춤마켓(BIDAM)이 열렸다. 올해로 14회를 맞이한 BIDAM(10월 13-15일, 금정문화회관 금빛누리홀, 은빛샘홀)은 춤을 기반으로 하는 지역 중심 플랫폼으로 춤의 국내외 유통과 국제적인 상호교류를 추구하는 축제형 마켓이다. 장기적 관점에서 춤 교류의 지속성과 작업의 선순환을 목표로 하며 이어온 BIDAM은 한국의 춤을 소개하고 국내외 안무가들의 쇼케이스를 공유하며 관계를 확장해나간다는 점에서 연례적인 축제행사와는 차별성이 있다. 또한, 예술춤 작업의 교류가 전문가들 간의 폐쇄적 행사가 아닌, 축제라는 대중성을 띤 형식을 통해 공개되고 시민과 함께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된 점도 의미가 있다.

올해는 국내외 무용가, 기획자, 프로그래머 등 1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한국을 포함한 5개국(한국, 프랑스, 리투아니아, 슬로베니아, 캐나다)에서 14개 작품을 선보였다. 공식 프로그램으로 13일(금)에는 어린이를 위한 ‘BIDAM 유스'(PTL 류블라냐 댄스시어터), 청년 안무가 경연인 ‘대한민국청춤챌린지'(김지은, 문가령, 신혜수, 김민지, 차세미, 김지윤 안무), 개막공연(LDP, 아우라 댄스시어터, SAL)이 진행되었고, 공연 후엔 예술가, 관계자, 관객 등 현장 참석자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는 ‘BIDAM 네트워킹’이 이어졌다. 14일(토)은 국내외 예술가, 델리게이트를 대상으로 BIDAM을 포함한 부산지역 춤축제(부산국제무용제 안무가 캠프, 거리예술축제 등) 플랫폼을 소개하는 피칭(pitching) 행사와 캐나다, 프랑스, 한국 무용가의 쇼케이스로 이루어진 ‘BIDAM 포커스'(쉬르소 댄스컴퍼니, 페드로 파웰스, 윤슬)가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날인 15일(일)은 ‘BIDAM 유스’ 공연 및 예술가와 일반인이 함께 두 작품을 무대에 올린 ‘BIDAM 커뮤니티'(페드로 파웰스, PTL 류블라냐 댄스시어터)'’로 채워졌다. 그 중 인상적이었던 공연 몇 가지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PTL 류블라냐 댄스시어터 '와글와글 나야, 나!' (사진제공=부산국제춤마켓)
PTL 류블라냐 댄스시어터 '와글와글 나야, 나!' (사진제공=부산국제춤마켓)
PTL 류블라냐 댄스시어터 '와글와글 나야, 나!' (사진제공=부산국제춤마켓)
PTL 류블라냐 댄스시어터 '와글와글 나야, 나!' (사진제공=부산국제춤마켓)

소통과 교류라는 행사 본연의 취지에서 볼 때 가장 주목할만한 프로그램은 ‘BIDAM 유스’와 ‘청춤챌린지’였다. 10년 넘게 이어온 BIDAM이 성인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에 중점을 두어왔다면 올해는 어린이를 위한 시도가 아주 인상적인 첫걸음을 내디뎠다. ‘BIDAM 유스’의 작품으로 어린이를 위한 무용극 <와글와글 나야, 나!>를 선보인 PTL 류블라냐 댄스 시어터는 1984년 설립된 슬로베니아 최초의 전문 현대무용단체이다. 전문 무용수 및 안무가를 양성하고 다양한 예술교육 프로그램과 페스티벌을 통해 공적 역할도 활발히 수행하는 슬로베니아 대표 춤 단체로, 현재 슬로베니아에서 활동하는 대부분 안무가와 무용수가 이 단체와 함께 성장하고 극장 프로젝트에 참여한 경험이 있을 정도로 그 자부심이 대단하다.

첫날 선보인 <와글와글 나야, 나!>는 PTL 어린이 예술교육 프로그램에서 제작된 작품으로 어린이가 그린 자신의 몸을 시각화한 무용극이다. 무대는 원, 선, 사각형 등 다양한 크기와 질감의 원색적인 오브제로 어린이의 그림을 입체적으로 형상화하고, 두 무용수가 이를 도구 혹은 세트로 이용, 신체부위와 감각을 창의적으로 연계한다. 무엇보다 오브제로 생성되는 몸짓이 유희적으로 머물지 않고 동적인 춤 경험으로 확장됨으로써 자기 몸의 이해와 자존감을 증진시키고자 한 작품의 의도가 분명히 읽혔다. 또한, 어린이에게 몸으로 오브제를 경험케 하고, 객석에서 점, 선, 면을 움직임으로 확장하여 함께 춤을 만들어 본 후, 집으로 돌아가 오늘의 경험을 상기할 수 있는 자료까지 제공함으로써 하나의 공연 그 이상을 추구하는 단체의 체계적 예술 교육 프로그램을 목격할 수 있었다.

이어진 대한민국청춤챌린지는 국내 청년 안무가들의 경연무대로 BIDAM의 초창기부터 함께 해온 대표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사전 공모를 통해 선정된 젊은 춤꾼들의 작품이 본선 경연에서 전문가 평가를 통해 최우수작(올해의 챌린저)으로 선정되는 프로그램 형식 자체가 독창적인 시도는 아니다. 하지만 이 청춤챌린지 경연은 공연 그 자체보다 작품의 완성을 위해 의견과 과정을 공유한다는 점이 흥미로웠고 이는 행사의 취지에 부합했다고 본다. 그 형식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본선 작품은 10분 분량의 초연작 일부이며, 해외 델리게이트들과 관객 평가를 통해 가장 우수한 작품이 선정되는 방식이다. 그리하여 최우수 작품에는 제작지원금과 함께 다음 해 BIDAM 포커스 프로그램에 참가해 더욱 완성된 작품을 선보이는 기회가 제공된다. 객석에 자리한 해외 델리게이트들은 심사위원이기도 하지만 멘토의 역할이 더 드러나며, 참가자는 각자의 공연이 끝난 직후 무대 위에서 객석의 멘토들과 대화의 시간을 갖는다.

김지은 '보여지지 않는 ( )' (사진제공=부산국제춤마켓)
김지은 '보여지지 않는 ( )' (사진제공=부산국제춤마켓)

신예 안무가들이 펼친 6편의 작품 중 최우수작으로 선정된 김지은의 <보여지지 않는 ( )>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안정감을 느꼈던 개인의 경험을 독특한 신체 행위로 드러내며 단연 눈길을 끌었다. 시작부터 발가락으로 긴 머리카락을 부여잡는, 지극히 불편하고 부자연스러운 기행(奇行)으로 닫힌 시야를 고수하며 이어지는 춤은 심적 폐쇄성을 시각화하려는 시도로 읽혔다. 기괴하고 가학적인 존재감이 뚜렷했다. 마치 자신의 몸으로 자신의 존재를 감추고 지우려는 듯 행위는 잔뜩 웅크리고 꼬인 상태로 진행되는 한편, 중반부에 등장하는 영상은 몸을 여러 각도에서 파편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웅크림 속에 있는 불안의 다층적인 면을 확장하여 보여주는 듯했다.

김지윤 'Shuttle Run' (사진제공=부산국제춤마켓)
김지윤 'Shuttle Run' (사진제공=부산국제춤마켓)

문가령의 <때문에, 사랑으로>는 한국 춤사위를 기반으로 한 몸의 에너지와 동선을 잘 활용하여 ‘사랑’이란 주제를 청춘의 시각으로 군더더기 없이 그려내려는 모습이 보였다. 그 외에도 경쟁의 본질을 입체적인 속도감으로 표현한 김지윤의 <Shuttle Run>, 스트릿 댄스와 현대춤을 결합한 군무의 에너지로 수동적 삶의 탈피를 그린 신혜수의 <내팽개치다>도 나름의 개성과 참신함이 엿보였다. 그러나 청춤챌린지에서 몇몇 작품이 드러낸 문제점은 춤과 주제 간 연결이 약하다는 것이다. 개개인의 춤에는 적지 않은 실력과 경험이 읽혔으나 안무의 문제, 즉 제시한 주제의 표현이 모호하거나 주제를 이끄는 일관성의 취약함이 아쉬움으로 느껴졌다. 물론 완성작이 아니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 수긍이 가지만, 작품 시연 후 안무자와의 대화 속에서 이러한 부분을 멘토들 역시 예리하게 때론 혹독하게 짚어냈다. 그러나 이 시간이 의미 있게 다가온 이유는 일방적인 질의나 평가가 아닌 멘토와 안무자 간의 진지한 소통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날카로운 질문이나 조언에 대해서도 무조건적 수용보다는 젊은 안무자는 자신의 의견과 의도를 충실히 설득력 있게 전달함으로써 생산적인 대화로 이끌었다. 완성작으로 가기 위한 고민과 사유가 깊어지는 시간이었다.

LDP '고인물' (사진제공=부산국제춤마켓)
LDP '고인물' (사진제공=부산국제춤마켓)
아우라 댄스시어터 '실오라기' (사진제공=부산국제춤마켓)
아우라 댄스시어터 '실오라기' (사진제공=부산국제춤마켓)
SAL 'GALA' (사진제공=부산국제춤마켓)
SAL 'GALA' (사진제공=부산국제춤마켓)

저녁 개막공연으로 오른 세 작품은 차별화된 주제로 단체의 개성이 뚜렷이 드러났다. LDP의 <고인물>은 빗물에 반응하는 몸성에 대한 섬세한 탐구가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물의 무게를 삶의 무게에 빗댄 이 작품은 성장해나가려는 자아의 목적성 있는 여행을 신체감각의 증폭으로 추상화하여 시각적으로 보여줬다. 물의 정체, 흐름, 파장, 진동 등을 연상시키는 몸짓은 집약적이면서도 때론 무심한 듯 관조적인 탐색으로 집중력을 높였다. 하지만 작품 중반에 초점이 맞춰지는 남녀 듀엣의 모습은 막연히 어떤 서사를 기대하게 만들면서 작품의 흐름을 늘어지게 한 점이 의문으로 남았다.

이어진 작품 <실오라기>는 리투아니아 아우라댄스시어터 소속 한국인 무용수 이흥원과 마린 페르낭데즈의 호소력 있는 듀엣이다. 연인이자 동료로 함께 해온 두 무용수는 팬데믹 기간 고립의 경험을 바탕으로 ‘관계와 연결’을 탐색했다. 즉흥적이거나 우발적이 아닌, 서로에 대한 깊은 숙고와 이해를 바탕으로 한 접촉과 연결 동작들이 또 다른 감각적 작용을 불러일으키며 깊이를 더했고, 이는 작품을 한층 차분히 응시하게 해줬다.

SAL의 <Gala>는 이른바 공연의 하이라이트가 아닌 축제의 전복, 혹은 화려한 축제의 이면을 보는 듯했다. 무대 위 화려한 공연자 대신 매일을 살아가는 공연자의 화려한 삶과 그 이면에 억압된 음습함을 매우 직설적이고 과도하리만큼 폭발적인 에너지로 표출했다. 혼돈과 충격, 그리고 발작적이고 적나라한 표현으로 엔딩까지 이어지는 춤은 지극히 불편함을 유발했지만, 이내 ‘전복된 해부학적 풍경’이라는 단체명의 의미가 명징해지는 순간이 찾아왔다.

페드로 파웰스 '커뮤니티 댄스' (사진제공=부산국제춤마켓)
페드로 파웰스 '커뮤니티 댄스' (사진제공=부산국제춤마켓)

축제의 마지막 날은 커뮤니티 댄스 두 작품이 무대에 올랐다. 프랑스 안무가 페드로 파웰스는 레지던시를 통해 부산에 머물며 사전 모집한 시민을 대상으로 일주일간 진행한 워크숍의 결과물인 <커뮤니티 댄스>를 선보였다. 앙리 마티스의 아름다운 그림 <Dance>(1910)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된 이 작품은 손을 맞잡고 원을 그리는 원작의 역동성을 과정과 협업이라는 가치를 엿볼 수 있게 하는 춤으로 표현했다. 분명 연결되어 있지만 어딘가 엉키고 뭉쳐있는 형상에서 느리게 서로의 감각을 탐색하고, 서서히 풀려나가며 몸성으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어서 첫날 어린이 공연을 선보였던 PTL 류블라냐 댄스시어터는 이번엔 모두를 대상으로 <함께/홀로>라는 커뮤니티 댄스를 무대에 올렸다. ‘혼자와 함께’라는 관계를 탐색하는 이 작업은 무대 위 한 무용수가 자신의 오랜 파트너 베로니카의 부재에 관한 에피소드를 들려준 후, 관객들에게 가상의 베로니카 역할을 요구하는 유쾌한 설정으로 시작되었다. 관객은 즉석에서 공연자로 무대에 올라 무용수와 함께 몸을 움직여보지만 ‘멋진’ 베로니카를 대체할 인물은 계속해서 탐색되고 그 과정에서 어느새 무용수와 관객의 위치가 치환되는 장면을 만들어낸다. 부재가 새로운 존재의 시작점을 알리면서 모두 함께 마무리되는 이 작품은 전문 무용수의 유도로 융화하고 경험하는 커뮤니티 댄스의 본질을 상기시켜주었다.

PTL 류블라냐 댄스시어터 '함께/홀로' (사진제공=부산국제춤마켓)
PTL 류블라냐 댄스시어터 '함께/홀로' (사진제공=부산국제춤마켓)

국제교류를 촉진하는 플랫폼이자 민간예술축제로 이어온 BIDAM의 공연작들은 올해에도 루마니아, 리투아니아, 헝가리, 인도네시아 등의 축제와 연수에 초청을 받았다. 이는 젊은 무용가들의 작품에 집중되어 그들이 경험을 확장하고 해외로 도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주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또한, 올해는 새롭게 선보인 부산국제공연예술마켓(BPAM)과 협력하여 예술춤 교류의 현장을 더 많은 대중과 공유했다. 내년이면 15회를 맞이하는 BIDAM은 해마다 어떤 파격적인 행보를 드러내기보단 지역을 중심으로 뻗어 나가는 ‘지속 가능한 연결과 교류’라는 본래의 취지가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음이 감지된다. 공연 및 리서치, 레지던시 프로그램, 공동제작 등을 통해 꾸준히 맺어온 해외 예술가들과의 교류가 화려한 인맥 잔치가 아닌 무대 위 작품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춤이 살아있는 현장은 설렐 수밖에 없다. 지역성에 갇히지 않고 춤의 다양성과 무궁무진한 확장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을 땐 더 그렇다. 내년 BIDAM은 청년 무용가 국제 멘토링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한국 전통춤의 시장성과 어린이 및 커뮤니티 댄스 교류를 더욱 활성화하는 계획을 구상하고 있다고 한다. 시도와 과정의 진화를 이어주는 춤 축제, 어린이부터 일반인까지 춤 현장에서 함께 소통하는 행사로 다시 만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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