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허경미무용단 – 무무 '길을 잃다'
[공연리뷰] 허경미무용단 – 무무 '길을 잃다'
  • 최찬열 무용평론가
  • 승인 2023.11.30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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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접힘과 펼쳐짐의 춤적 상징과 은유

[더프리뷰=부산] 최찬열 무용평론가 = 인간은 우연히 세상에 던져지듯 태어난 존재이다. 하지만 미래를 향해 죽을 때까지 고독하게 자기 자신을 창조하며 나아가야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인생은 하나의 여행길에 비유되곤 한다. 칠흑 같은 겨울밤, 한 줄기 빛도 없는 세상에서 길을 찾아 헤매며 세상과 끝없이 갈등하고 투쟁하기를 반복할 수밖에 없는 기나긴 여정이 인생인 셈이다. 허경미무용단-무무의 <길을 잃다>(2023년 11월 5일, 부산문화회관 중극장)는 이런 인생길을 홀로 갈 수밖에 없는 인간 실존의 부유하는 삶을 춤과 음악, 오브제와 조명이 잘 어우러진 감각적인 미장센으로 형상화한 공연이었다.

허경미무용단@박병민
허경미무용단 '길을 잃다' @박병민

투명막이 무대 전면에 내려와 있고, 그 뒤로 어슴푸레하게 무대가 드러나 보인다. 하늘-막과 다리-막이 다 올라간 채 다소 을씨년스럽게 보이는 무대 중앙에 탑 조명을 받으며 한 춤꾼이 우두커니 서 있다. 황량한 벌판에 홀로 선 실존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그녀 주위로는 엉킨 천이 구불구불 놓여있다. 마치 야생의 들판을 가르며 이어지는 들길처럼 보인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리라. 곧이어 무대 오른쪽에서 등장한 다른 춤꾼 한 명이 무대 가장자리를 빙 돌더니 그녀 뒤쪽에서 움직이기 시작하고, 연이어 등장한 다른 춤꾼들과 함께 무대 여기저기 흩어져 춤추지만, 그녀는 이들과 무관하게 마냥 서 있다. 세상사에 무관심해 보이기도 하고, 혹은 반대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상념에 젖는 모습이기도 하다. 그러다 서서히 주변을 살피던 그녀가 허리를 숙인 채 한 발을 살짝 들어 올리며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지만, 여의찮은 듯 머뭇머뭇하다가 골똘히 생각에 잠긴다. 마음 안에 머물러 있지도 않고, 그렇다고 밖을 향해 달려 나가지도 않는 실존의 모습이다. 자신의 자유 앞에서, 가능성 앞에서, 아직 오직 않은 미래 앞에서 느끼는 망설임과 주저함일 것이다.

허경미무용단@박병민
허경미무용단 '길을 잃다' @박병민

곧이어 무대 양옆에서 다시 등장한 군무는 엉킨 천을 집어 들더니 가지런하게 편다. 그리고 투명막이 올라가면서 무대 전체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녀는 흰 천 위에서 뒹굴다가 일어나 앉는다. 어느덧 세상 한가운데로 들어선 것이다. 이른바 타자들과 다방면으로 열린 관계를 맺으며 공존하는 세상이다. 말하자면 무대 바닥을 다 덮은 채 새하얗게 깔린 천은 실존이 살아가야 할 세상이고, 누구든 세상과 세상 사람들을 무시하면서 무관심으로 일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이는 평생을 잉여 존재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문득 누군가 대사를 한다. “함께 갈 수 있지. 내가 가는 길이 길이다. 아니 여기.” 그리고 다 같이 모여 한쪽 발을 든 채 가만히 서 있다가, 든 발을 털고 다른 발에 비비더니 우뚝 서 있는다. 가기는 가야 하는지, 간다면 혼자 가는지 아니면 함께 가는지, 또 어디로 가야 하는지 마음속으로 이리저리 생각만 하고 태도를 정하지 못하는 이들의 심정이 잘 묻어나는 인상적인 제스처이다.

허경미무용단@박병민
허경미무용단 '길을 잃다' @박병민

다음 장면은 접힘과 펼쳐짐의 춤적 상징과 은유가 돋보인다. 그녀가 깔린 천을 걷는다. 그러면 다른 이들이 천을 편다. 그들은 가지런하게 질서 잡힌 세상을 원하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그녀는 다시 천을 헝클어 바닥에 놓아 밟는다. 이어서 다른 이들이 재차 천을 펴면 그녀는 그 위에서 미끄러지듯 오가다가 또다시 천을 엉큰다. 이윽고 무대 오른쪽에 일렬로 앉은 군무가 일제히 두 손을 들었다가 무대 바닥을 두 번 치고 천을 거둬들이는 일사불란한 행동을 반복하면, 천 위에서 걷고 뛰면서 오가던 그녀는 쓰러져 천을 부여잡고 끌려가다가 뒷걸음칠 치고, 시나브로 천이 걷히며 무대 바닥이 다 드러난다. 요컨대 천은 엉클어졌다가 펴지기를 반복한다. 즉 접힘과 펼쳐짐이 맞버티는 긴장 국면이 한동안 이어지는 것이다.

천의 접힘은 내면에 머묾이고, 펼쳐짐은 외면으로 열림이다. 즉 접힘은 오롯이 나에게만 마음 쓰는 것, 주름진 내면 삶에 침잠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지난 현재가 차곡차곡 쟁여져 있고, 지금 현재가 웅크리고 앉아 있으며, 다가올 현재가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대조적으로 펼쳐짐은 열린 관계로 나아감 혹은 타자와 ‘함께 있음’의 관계로 들어감이다. 열림은 곧 타자와 나를 가르는 불연속이 허물어지고 공-현존의 차원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종의 관계 맺기이다. 펼침, 열림, 만남으로 가득 찬 세계가 바로 이 세상이고, 삶은 그 자체가 접힘과 펼쳐짐의 행위예술인 것이다. 천을 펴면 세상은 매끄러운 공간이 되고, 엉켜 놓이면 거기에 홈 파인 길이 생긴다. 그리고 삶이란 끊임없이 머묾과 열림을 반복하는 것이다. 요컨대 접힘과 펼쳐짐을 반복하는 천의 주름 운동에 따라 길이 생겼다가 사라지기를 되풀이하고, 이는 곧 마음의 안팎을 오가며 이랬다저랬다 요동치는 실존의 심리 상태를 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허경미무용단@박병민
허경미무용단 '길을 잃다' @박병민

이어지는 장면들에서는 삶의 여러 풍경이 그려진다. 선구자처럼 호기롭게 길을 개척하며 나아가는 이도 있고, 사람들이 이리저리 걸어가면 그들이 나아갈 방향을 교정해 주는 이도 있다. 천이 천천히 걷히며 펄럭일 때 거기에 어지럽게 새겨진 선이 보이는데, 이는 아마도 여러 갈래로 오간 이들이 지나친 길의 흔적일 것이다. 또 천의 일부분을 뭉쳐 놓고 그 위에 서서 마치 좌표를 찍듯이 꼭꼭 밟는 이도 보이고, 흐트러져 놓인 천 끝자락에서 허리를 숙인 채 두 팔을 벌려 날갯짓하듯이 움직이는 이도 있다. 다른 세상으로 성큼 나아가고픈 욕구의 표현일 것이다. 삶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세속 삶을 등지고 수행 길에 오르기를 결심하는 사람 같다. 그러다 무거운 고난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사람처럼 힘들게 천을 어깨에 메고 가다가, 놓인 천 끝자락에서 물구나무서기도 한다. 뒤집힌 세상을 바로 세울 힘이 없어 자신이 거꾸로 선 채 세상을 똑바로 보기라도 하는 듯하다.

허경미무용단@박병민
허경미무용단 '길을 잃다' @박병민

다시 군무가 등장해 천을 펴면, 울렁거리는 천 위에서 허경미의 솔로 춤이 이어진다. 천은 거친 파도처럼, 사막의 모진 모래바람처럼, 혹은 들판의 거센 바람처럼 거칠게 펄럭이고, 그 사이에서 허경미의 솔로춤이 지속된다. 이윽고 천은 그녀를 덮치고, 그 속에 파묻혀 세상 풍파를 다 맞는 것처럼 허우적거리던 그녀가 높은 파도처럼 솟아오른 천 꼭대기로 들어올려진다. 한 실존이 거센 파도가 오르내리는 망망대해의 광포한 풍랑에 휩쓸린 일엽편주에 갇혀 아슬아슬하게 버티는 형국이다. 피라미드형 위계 구조의 맨 꼭대기에 올라 떨어지지 않기 위해 매달려 발버둥치며, 모순이 가득 찬 세상을 아등바등 견뎌 나가는, 부유하는 실존의 모습이다.

허경미무용단@박병민
허경미무용단 '길을 잃다' @박병민
허경미무용단@박병민
허경미무용단 '길을 잃다' @박병민

천은 거친 파도처럼, 혹은 세찬 바람처럼 펄럭이다가 높이 치솟아 절벽이나 가파른 벼랑, 산이 된다. 요컨대 천의 바람-되기, 절벽-되기, 산-되기 등이 반복되며 천의 의미는 시시때때로 생성 변화한다. 이런 천은 이 공연의 핵심 오브제로서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할 뿐만 아니라 시각적 효과를 배가시키며 이 공연을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든다. 그러다 조용한 일상이 찾아온 듯 다시 천이 펴지고, 그 위에 선 허경미는 조신하게 나아가다가 달리고, 돌고, 또 달린다. 한 명 두 명 다른 춤꾼들도 연이어 등장하여 성큼성큼 걷다가 돌면서 뛰고, 껑충껑충 뛰어서 여기저기로 향한다. 꿋꿋하게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씩씩한 실존의 모습이다. 하지만 그녀가 다시 천을 걷는다. 그리고 뭉쳐서 무대 바닥에 놓고 그 위를 걷는다. 발걸음 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면, 이제 무대에는 뭉쳐진 채 놓인 천 길만 보인다. 이제 그 길을 모두 함께 갈 것인지, 홀로 갈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접힘과 펼쳐짐은 반복될 것이다. 그리고 무심한 한 걸음, 또 시작이다.

허경미무용단@박병민
허경미무용단 '길을 잃다' @박병민

<길을 잃다>에서 춤은 시종일관 조용하고 차분하게 진행된다. 즉 춤 만든 이는 길을 찾기 위해 시끌벅적하고 요란스럽게 나서지 않는다. 그 길이 바깥세상뿐만 아니라 내면의 길, 마음 길로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춤은 역동적이고 격정적이라기보다는 마치 명상하듯 들뜬 마음과 분별하는 마음이 모두 사라진 상태로 고요하고 차분하게 진행된다. 하지만 비록 춤추는 몸에서 발현되는 정동이 그렇게 강하지는 않더라도, 천의 접힘과 펼쳐짐으로 상징되는 두 세계의 갈등과 맞버팀에서 분출하는 긴장감은 관객의 몰입도를 높이기에 충분할 만큼 돋보이는 공연이었다.

                                                    *이 리뷰는 월간 <예술의 초대>와 공유한 글입니다. 

최찬열 무용평론가
최찬열 무용평론가
altai21@hanmail.net
한국춤 전공 후 모스크바대 인류학 석사,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인류학 박사과정 및 미학 박사학위 취득. 지금은 몸의 예술과 인문학에 기반한 통섭적 문화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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