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필름리뷰] 포스트휴먼을 조망하는 국립현대무용단 '댄스 온 에어'
[댄스필름리뷰] 포스트휴먼을 조망하는 국립현대무용단 '댄스 온 에어'
  • 김혜라 무용평론가
  • 승인 2023.12.12 06: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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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의 주체자로 등장한 로봇과의 퍼포먼스

'댄스 온 에어' 포스터 (사진제공=국립현대무용단)

[더프리뷰=서울] 김혜라 춤비평가 = 극장까지 가기가 쉽지 않은 한겨울 12월이다. 추운 날씨와 게으름을 핑계로 그간 미뤄 둔 댄스필름 사이트를 검색해 본다. 클릭 한 번으로 나만의 공간에서 무료로 공연을 즐기기엔 댄스필름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시기에 비해 댄스필름의 수요와 열기는 줄어든 인상이나, 기록과 홍보 이상의 효용성으로 영상미학과 장소성을 결합하여 순식간에 성취를 이뤄낸 장르이기도 하다. 국립현대무용단(이하 국현) ‘댄스 온 에어’가 가장 접근하기 용이하고 추천할 만한 댄스필름 사이트이다. 국현은 그간 축적된 기술로 현장공연을 댄스필름으로도 동시 제작하며 현장공연과 주제는 같으나 접근방식의 차별화로 수준 있는 필름을 선보였다(<몸쓰다> <비보호> <파도> <메커니즘> <12월 70일> 등).

‘댄스 온 에어’는 현대무용의 창작영역 확대와 (관객들에게) 온라인으로 작품 관람 기회를 제공하는 목적으로 만들었고, 홈페이지 상단에 손쉽게 볼 수 있게 배치되어 있다(https://kncdc-theater.kr/). 최근 개관한 댄스하우스에서도 ‘댄스필름 나잇’을 진행하며 그간 제작했던 댄스필름을 순차적으로 상영하고 있다. 가장 적극적이고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를 하고 있는 국현 ‘댄스 온 에어’에서 현재 상영중인 필름은 이 시대 핫 이슈인 포스트휴머니즘이란 시대적 관심과 결부된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조희경의 <풍경>, 예효승의 <재생:능력>, 권병준의 <입 닥치고 춤이나 춰>, 이민경의 <삼물기>가 그것으로, 로봇과 공존하는 인간의 삶에서 발생될 여러 질문들이 담겨있다.

조희경 '풍경' (사진제공=국립현대무용단)

조희경의 <풍경>은 로봇의 관점으로 인간을 관찰하는 시점이 초반에 그려진다. 퍼포머 이정민은 로봇과 함께 차를 마시기도 하고 일상을 공유하는 풍광이다. 그럼에도 퍼포머는 내면 깊숙한 곳 어떤 갈증을 내뱉는다. 그 공허한 틈새를 음악(김은정)으로 채우며 한 공간에 존재하나 다른 정서를 대변하는 형상이다. 다가올 미래, 다시 말해 로봇과 공존해야 하는 세상에 아직 준비되지 못한 인간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 작업에서는 로봇 휴먼이 주체적인 퍼포머로 설정된 점이 유의미하게 보인다. 춤공연에서도 인공지능을 장착한 로봇이 무대에 등장한 사례가 간간히 있어 왔으나 이 작품에서는 로봇들이 인간 이정민과 적극적으로 교감하려 하는 시각이 흥미롭다. 오히려 인간이 이에 대해 곁은 주지 않고 탈출하고 마는 설정이다. 감정이 없는 로봇 인간과 심리적 영향 아래 살아가는 인간과의 서사적 갈등이 참 아이로니컬하다. 크고 작게 인공지능이 일상에 침투하여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시대에 로봇과 인간과의 관계, 둘만의 거리, 교감을 어떻게 봐야 할 지 생각해 보게 하는 작품이다. 인간의 감각과 충동, 심지어 무의식의 영역까지 꿰뚫어 보는 디지털 자본주의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살고 있는 현시점에서 조희경 안무가는 인간과 로봇과의 전복된 관계를 상상하며, 휴머니즘의 주체인 인간육체의 주도성이 전이된 포스트휴머니즘의 관점으로 작품을 구현하였다.

예효승 '재생:능력' (사진제공=국립현대무용단)

예효승의 <재생: 능력>에서는 인간 몸과 기계(로봇)의 결합으로 재조직된 신체의 형상이 구현된다. 연약한 생명체인 화초가 박살나는 장면과 대조되는 무한 재생능력을 상징하는 기계신체가 이상적인 신체로 부활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포스트휴먼 이론가이자 미디어 철학자인 프리드리히 키틀러가 “미디어 시대는 무엇이 인간이고 무엇이 기계인지 구별을 불가하게 만든다”라고 하였듯, 작품에는 기계와 인간신체의 경계를 구분 짓지 않는 포스트휴머니즘적 태도가 반영되어 있다. 예효승은 소멸되어 가는 인간의 몸과 재생가능한 능력을 갖춘 로봇과의 본질적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공존을 상상하며 작업을 수행했다. 나아가 죽음을 초월하고자 한 욕망이 투영된 로봇인간이 인류 최후의 생존자가 될 것도 전망한다. 인간의 신체적 한계에 유용한 대안으로 혹은 연장선으로 로봇의 존재가 우리 삶에 긍정적일지 아닐지 여러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이다.

권병준 '입 닥치고 춤이나 춰' (사진제공=국립현대무용단)

권병준의 <입 닥치고 춤이나 춰>는 1998년 출간된 동명의 책에서 가져온 타이틀이다. 1990년대 젊은이들이 클럽에서 즐겼던 테크노 댄스 문화를 로봇들이 재현한다. 젊은이들의 열정이 집약된 클럽에 로봇들이 대체되어 주도한 세상이라니 격세지감을 느끼지만 신나는 바이브에 내 몸도 따라간다. 로봇 디제이가 정교하게 공간을 주도하고 분절된 동작으로 화답하며 짜여진 구성을 춤이라 말할 수 있을지 생각하게 한다. 안무가의 의도를 무용수가 표현하듯 표현자가 기계로 대체되어 기표로 작동하고 의미의 주체로 관객과 상호관계성을 갖는다면 이 또한 안무의 영역으로 수용 가능하지 싶다. 기계적인 신체로 정교하게 리듬을 타며 조작된(구성된) 동작이 드라마틱한 음악과 함께 낯선 미감까지 조성한다. 감정이 없는 로봇임을 알지만 묘하게 감각하는 집단 같은 환영을 만들어낸다. 심지어 SF 공상영화 속 공간으로 들어온 느낌까지 받는다. 군무로 인지되는 수 십대의 로봇들이 새로운 공연자로 우리에게 한 걸음 가까워질 수 있지 싶다.

이민경 '삼물기(三物記)' (사진제공=국립현대무용단)

이민경의 <삼물기(三物記)>는 서로 다른 신체를 가진 세 존재(三物)의 여행을 소재로 한다. 오픈 주방처럼 백색 무대에는 로봇을 조정하고 지시하는 사람, 무용수와 로봇 모두가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지시자와 동작을 구현하는 로봇, 이를 따라하는 무용수가 한 공간에서 동행하며 기괴한 털옷을 입은 대상과 마주한다. 삼물기 존재들의 기행이 시작되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다 로봇이 설정된 무대에서 이탈한다. 암흑과 연기가 자욱한 낯선 공간으로 여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마치 오즈의 마법사같이 동화적인 내용으로 작품은 전개되며 이색적인 다른 종(種)과 관계 맺기가 핵심이다. 이 작업에서 로봇은 감정과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인식되며 꽤나 낭만적인 서사가 펼쳐진다. 인간중심주의적 태도를 전제로 하나 여전히 타자에 대한 차별적인 휴머니즘을 비판하는 시각도 작품 기저에 있지 싶다. 규격화된 무대를 이탈하며 다양성이 존중되는 존재들과 일탈을 꿈꾸는 이상을 구현한 작품이다.

백남준 '로봇 K-456'
(사진=백남준아트센터 홈페이지)

로봇을 활용한 퍼포먼스로 1964년 뉴욕 아방가르드 페스티벌에서 발표한 백남준의 <로봇 K-456>이 회자되곤 한다. 2000년대 이후 로봇 테크놀로지의 발전으로 인간과 로봇 사이의 적극적인 상호작용을 시도한 다양한 퍼포먼스로 발전했고 오히려 비인간(로봇)이 인간의 한계를 비판하는 존재로 부상하고 있다. 주체와 체계가 전도되는 이러한 기술적 진보에 기초한 무대공학적 실현(창의적인 생산물)이 인공지능의 시대에 또 다른 표현자로 낯설지만 흥미롭다. 네 작품에 등장한 로봇 신체는 인간과의 대립구도나 인간에 의해 조절되는 존재가 아닌, 보다 동등한 개체로서 기계와 인간의 관계가 설정되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인간만의 고유한 영역이라 여겼던 예술창작에 로봇 퍼포머의 활약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인간다움’에 대한 사유를 재촉한다. 다시 말해 기술적 타자에 의해 인간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시대적 요청으로 로봇 퍼포먼스를 바라보게 한다. 퍼포먼스에서 공연자로서 로봇이 구현하는 미학이 무엇인지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인간 이후의 인간에 관한 사유를 촉발시키는 테크놀로지를 활용한 네 편의 댄스필름을 통해 공연예술에서 달라질 소통방식도 생각하게 되었다. 손쉽게 관람 가능한 ‘댄스 온 에어’ 댄스필름을 추천한다. 아마도 한겨울 움츠러진 몸과 마음이 말랑말랑해지는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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