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수백년 숙성 사운드의 신비 - 게반트하우스의 '브루크너 9번'
[공연리뷰] 수백년 숙성 사운드의 신비 - 게반트하우스의 '브루크너 9번'
  • 김준형 음악칼럼니스트
  • 승인 2023.12.13 05: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안드리스 넬손스 &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내한 연주회

- 2023년 11월 16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더프리뷰=서울] 김준형 음악칼럼니스트 = 음반의 재생음을 통해서 사운드의 차이를 구별할 정도의 오디오 시스템을 갖추려면 필요한 투자금액이 만만치 않고, 그런 감상 공간을 구비하기도 쉽지 않기에 사실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는 격이 되기 십상이다. 애호가라면 이런 현실적인 장벽을 실감하기 마련이다. 고유의 오케스트라 사운드를 간직하고 있는 단체의 내한 연주마다 티켓 전쟁이 벌어지는 이유다.

30여 년간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의 내한 연주를 접해오면서 고유의 사운드를 유지하기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을 새삼 실감한다.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오케스트라는 빈 필하모닉, 상트 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그리고 오랜만에 내한한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정도가 아닐까 한다. 1993년 쿠르트 마주어와 함께 내한하여 브루크너 심포니를 연주할 때 그 고색창연한 사운드에 감탄한 바 있다. 오랜만에 내한하는 이들이 이번에 다시 브루크너의 제9번을 연주했다.

멘델스존도 역임했던 역대 카펠마이스터의 면면을 보면 다시금 이 오케스트라는 그 자체가 문화재임을 알 수 있다. 니키슈, 푸르트뱅글러, 발터, 콘비츠니, 아벤트로트 등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떨리는 거장들의 행렬이다. 근래 들어 장기집권을 했던 마주어를 비롯하여, 샤이와 블롬슈테트의 연주 역시 과거 그 어느 때에 비교해도 높은 수준이고 이는 발매된 레코딩을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우리 오케스트라의 연주력은 최근 엄청난 발전을 보이고 있으나, 이런 고유한 사운드는 아직이다. 전통이란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넬손스와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사진제공 = 마스트미디어)
넬손스와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사진제공=마스트미디어)

2017/18년 시즌부터 유구한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카펠마이스터 안드리스 넬손스는 악단 고유의 특질과 사운드에 대한 존중이 두드러지는 리드를 하며 연주를 이끌었다.

최근에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전주곡과 ‘사랑의 죽음’을 하나로 연이어 연주하는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넬손스의 손끝에 따라 초약음에서 강렬한 포르테까지 음향의 대서사시가 빚어졌다. 침묵에 가까운 고요한 개시부를 지나 아름다운 목관의 울림이 너무나 선명했고 도리어 클라이맥스의 총주에서 강력함보다는 조화로우면서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비단결같은 사운드가 인상적이었다. 역설과 역설의 미학이었다. 아름다운 주제의 멜로디가 서로 긴밀하게 엮이면서도 분명하게 부각되었다.

브루크너의 <제9번 교향곡>은 완성되지 않은 작품이라 더욱 아름답듯이, 오케스트라를 통제하지 않았기에 더욱 아름다운 연주였다. 은은하면서도 장엄했고, 포근하면서도 정감어린 브루크너라 인상적이었다. 신비롭기까지한 섬세한 감성이 필요하면서도 거대한 스케일로 전개되는 첫 악장은 우람하지만 강력하거나 위압적이지 않았다. 그 무엇보다 음악의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휴지부의 고적함은 긴 여운으로 남았다. 두번째 스케르초 악장은 기본적으로 꽤 강력함이 필요하지만, 변주를 전개하면서 집중력있는 섬세한 연주가 오케스트라의 빼어난 기능적 역량을 보여주었다. 온몸으로 음악을 표현하며 오케스트라 안에서 진두지휘하는 악장 제바스티안 브로잉거의 활약이 두드러지기도 했다. 고아함이 강조된 마지막 악장은 대성당의 신비스러운 울림이 실존으로 다가왔다. 정점을 향해 나아가는 악상에서 점점 서광이 비쳐오는 듯한 지휘자의 연출이 극적이었으나 대부분 오케스트라에 맡겨두는 듯한 뉘앙스의 연주였다.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사진제공 = 마스트미디어)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사진제공=마스트미디어)

한 가지 더. 내한 오케스트라의 연주회 내용을 살펴보면, 기획 단계부터 예술성뿐 아니라 상업적인 부분이 고려된 고민을 엿볼 수 있다. 대중성을 노린 프로그램 구성과 티켓 파워가 보장된 스타 협연자의 연주 순서. 그런 관점에서 이런 하드코어성의 연주회를 결단하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애호가라면 꿈꿀 이상적 연주회를 선물한 주최사에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 싶다.

공연포스터 (사진제공 = 마스트미디어)
공연 포스터 (사진제공=마스트미디어)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