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리뷰] 전혀 새로운 새로움을 찾는 여정 - 제5회 HOTPOT
[축제리뷰] 전혀 새로운 새로움을 찾는 여정 - 제5회 HOTPOT
  • 김미영 무용평론가
  • 승인 2023.12.14 05: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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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시아 현대무용 플랫폼
개막작 'Stream of Dust' (c) Carmen SO (사진제공=CCDC)

[더프리뷰=서울] 김미영 무용평론가 = 지난 11월 17-19일 열린 동아시아무용플랫폼(East Asia Dance Platform) '핫팟(HOTPOT)'을 보기 위해 홍콩을 방문했다. 빽빽한 빌딩 숲과 분주한 사람들, 도시의 활기가 가득한 홍콩은 7년 전 방문했을 때랑 거의 같은 모습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특별한 변화를 감지할 수 없었지만 그 사이 무용분야에서는 괄목할만한 성과를 쌓고 있었다. 2019년 서구룡에 있는 홍콩의 새로운 현대공연센터 WKCD(West Kowloon Cultural District, 西九龍文娛藝術區, 西九文化區)의 '프리 스페이스(Free Space)'가 무용/연극 전용극장으로 개관하였고, 2021년에는 경극 전용극장인 시추센터(Xiqu Centre, 戱曲中心)까지 문을 열어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어디 그 뿐인가. 프리 스페이스가 자리한 서구룡 문화지구에는 3개의 극장과 홍콩 국립댄스하우스가 들어설 홍콩 공연예술단지의 공사가 한창이었다. 무용예술 분야에 아낌없는 지원을 하고 있는 홍콩 당국의 예술가치에 대한 존중과 기대는 은근한 시기심을 불러일으키기까지 했다.

핫팟은 한국, 중국, 일본 세 나라의 현대무용 작품을 소개하고 유통시키는 플랫폼이다. 각국 무용가들의 역량 강화와 국제무대 진출 기회 제공을 통해 지속적인 능력 향상을 돕는다. 홍콩 시티 컨템포러리 댄스 컴퍼니 & 페스티벌(City Contemporary Dance Company & Festival, CCDC & CCDF), 일본 요코하마 댄스 컬렉션(Yokohama Dance Collection), 그리고 유네스코 국제무용협회(CID-UNESCO) 한국본부의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의 공동주최로, 세 나라가 매년 돌아가며 자국의 축제 기간에 핫팟을 진행한다. 지난해에는 우리나라에서 열렸고 내년은 일본에서 행해질 예정이다.

개막식 (c)Carmen SO (사진제공=CCDC)

올해 CCDF(City Contemporary Dance Festival)는 11월 11일부터 19일까지 이어졌으며 그중 17일부터 사흘간 핫팟이 진행되어 개막공연 〈Stream of Dust〉를 시작으로 홍콩 포커스 4편, 중국 6편, 한국 5편 , 일본 2편의 작품이 WKCD, HKCC(Hong Kong Cultural Centre, 香港文化中心), 퀸즈로드 센트럴에 있는 셩완시민문화회관(SWCC, Sheung Wan Civic Centre, 上環文娛中心) 등 세 공연장에서 펼쳐졌다. 이번 행사를 주관한 CCDC(香港城市當代舞蹈團)는 홍콩 최초의 현대무용 전문단체로, 37년 전 윌리 차오(Willy Tsao, 曺誠淵)가 창단했으며 창작작업과 더불어 중국 현대무용 네트워크의 허브 역할을 담당해왔다. 몇 해 전 겪어야 했던 윌리 차오와의 결별, 그리고 최근 급변하고 있는 홍콩의 정치적, 문화적 상황에서도 양질의 작품으로 관객과 소통하려는 CCDC의 노력은 여전히 정력적이다.

WKCD의 프리 스페이스에서 열린 개막공연 〈Stream of Dust〉는 홍콩에서 극진히 사랑받는 안무가 상지자(Sang JiJia, 桑吉加)의 작품이다. 티베트족인 상지자는 간쑤성(甘肅省) 출생으로 베이징 중앙민족대학(中央民族大學, Central University for Nationalities)에서 수학했다. 이후 광둥현대무용단(GMDC) 무용수를 거쳐 CCDC의 무용수였던 그는 2002년 윌리엄 포사이드를 만나 프랑크푸르트발레단과 포사이드 무용단에서 조안무 겸 무용수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2006년 중국으로 돌아온 그는 이후 CCDC, 베이징의 LDTX, GMDC 등에서 안무작업을 이어오고 있으며 현재 CCDC의 상주 안무가이다.

〈Stream of Dust>는 블랙박스 극장으로 들어가기 전 로비에서부터 작품이 시작된다. 지구로 형상화된 둥근 원형 안에 들어가 있는 한 사람이 로비로 들어서는 관객들을 향해 회색 공(탁구공과 같은)을 던지고 극장 입구에서는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숫자로 보여 준다. 블랙박스형 극장에 들어서니 굵은 밧줄로 큰 타원형을 만들어 그 안에 회색 공이 담겨 있고 천장에 매달린 원형구조물과 그 원형을 막은 망 위로 회색 공이 하나씩 떨어진다. 관객들은 그 밧줄의 테두리에 자유롭게 앉거나 서서, 때로는 이동하며 관람할 수 있었다.

개막작 'Stream of Dust' (c)Carmen SO (사진제공=CCDC)

먼지를 상징하는 수많은 회색 공들이 바닥에 가득하다. 그 위를 가르고 이끌고 미끄러지는 홍콩공연예술아카데미(Hong Kong Academy for Performing Arts, 香港演藝學院) 졸업생과 재학생이 대다수인 40여 명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시간의 흐름에 의한 인류의 변화, 공동의 감각, 흐름에 따른 다양한 정서를 보여 준다. 연기 속에서 펼쳐지는 묵직한 군무가 마음을 감동시켰다. 작품 설명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작품은 환경오염에서 오는 인류의 위기를 떠올린다. 작품의 후반부에 밧줄을 끌어 옮기자 회색 공들이 이리저리 휩쓸리는 장면, 무용수들이 회색 공을 발로 밟아 깨뜨리고 코에 끼우고 숨막혀 하는 장면, 마지막에 천장에 하나씩 떨어져 모여진 공들이 무대 바닥에 쏟아지는 장면 등은 영락없이 우리가 매일매일 맞닥뜨리는 생태계의 파괴를 보여준다. 이후 서정적인 음악과 쏟아지는 빛, 발레동작을 기본으로 하는 움직임들을 통해 인류가 가진 희망, 회복의 메시지로 마무리된다. 상지자는 대규모 군무를 집중력있게 끌고 가는 힘과 지루하지 않도록 주는 다양한 변화 속에서도 작품의 흐름이 흩어지지 않도록 하는 안무적 능력을 보여주었다. 또한 그는 군무진 안에 숨겨진 개개인의 개성들이 군무라는 이름으로 덮이지 않고 드러나도록 하였으며 작품을 통해 그들만의 리서치 시간들이 얼마나 치열했을지를 보여주었다.

개막작에 앞서 첫째날 낮에 선보인 홍콩 포커스는 침사추이 페리 부두 옆, 홍콩의 발전을 상징하는 시계탑 앞에 위치한 HKCC의 스튜디오 시어터에서 진행되었다. 검정과 흰색, 붉은 색의 대비를 통해 부조리한 시대 속에서 살아갈 방법을 탐구한 Duncan TUNG의 <01 Waiting>, 몸과 그림자를 활용하여 움직임을 탐구한 Tanki WONG의 <It’S NOT MY BODY chapter 3.5>, 자신의 존재를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을 유쾌하게 풀어낸 KT YAU의 <noBODY>, 일부러 계획하지 않아도 바람을 타고 여행하는 민들레를 모티브로 자유롭지 못하고 짜여진 삶을 사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깨우치는 Rosalie NG Hei-wai의 <Through THE LENZ> 등 네 작품을 볼 수 있었다.

'Boiling Bo' (c)FUNG Wai-sun (사진제공=CCDC)

둘째날에 진행된 중화권1에서는 평소 사회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알베르트 가르시아(Albert GARCIA)의 <Let’s Leave This Place RooFless>, 억압에 대응하는 반응으로서 몸의 형태를 바꾸고자 풍선을 이용한 Bobo LAI의 <Boiling BO>, 개인의 경험이 어떻게 창의적인 요소로 작품이 되는지를 탐구한 LIU Qingyu의 <This is a Process>가 펼쳐졌고 셋째날 낮에 진행된 중화권2에서는 검은 먹물이 번지는 듯한 영상과 바닥에 수많은 이름들이 등장하여 움직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Cici CHEN <Little One>을 통해 억압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가는 소시민의 정체성을 드러냈다. 하이난 민족의 신화를 모티브로 한 ZHANG Mie의 <Why does the moon come out at night?>는 원주민 언어를 사용하는 등의 방법으로 원시적 정서를 드러냈다. 마지막으로 TAI Chi-lun의 <Degenerate Evolution>은 원시인을 상징하는 털옷을 입고 나와 문명화되어 가는 과정을 그리며 인간의 진화와 퇴화를 표현하였다.

한국편은 SWCC(셩완시민문화회관) 극장에서 둘째날 저녁에 열렸다. 첫 작품은 정다슬의 <인용무-움직임들의 움직임>이었다. 정다슬의 작품은 창작자의 주체에 관한 물음을 던진다. 창작자와 시연자, 누구의 창작이라고 할 수 없는 기교를 선보이는 세 사람을 통해 저작권법의 결함을 고발하였다. 언어의 비중이 상당히 높은 작품인데 모든 대사를 영어로 준비한 무용수들의 노고가 인상적이었다.

'별양' (c)Carmen SO (사진제공=CCDC)

최소영의 <별양>은 팬데믹 이후 일상의 모든 것이 역행되어 버린 것을 몸의 감각으로 표현하였다. 순리대로 움직여지는 몸의 움직임과 가장 대조적인 움직임을 찾아내 보여주었다. 해금과 장구의 연주로 진행된 조인호의 <오직 나의 이름으로>는 몸과 춤에 대한 인식을 재고한다. 겉옷을 벗어 개어놓고 그 위로 자신들의 예술활동을 의미하는 악기, 춤의 소품으로 사용한 부채 등을 올려둠으로써 예술가로서의 자신과 실존하는 자신에 대한 깊은 숙고가 이루어진다. 세번째 작품은 김보라의 <유령들>이다. 초연작보다 컴팩트해지면서 집중력은 높아지고 무용수들의 춤은 한층 깊어지며 몰입감과 감동을 선사했다. 벗어진 옷들이 바닥에 나뒹굴고 나체가 된 무용수들이 무대 위에서 쉬지 않고 춤을 추며 극한으로 몰고간다. 안무가의 요구에서 자유로운, 자기의 의식을 넘어서는, 그 어떤 우연성이나 환경에 지배되지 않은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 존재하는 춤들이 환영처럼 무대 위에 번져갔다. 마지막 작품은 신창호의 <노코멘트>이다. 가슴을 치는 군무는 <노코멘트>의 시그니처이다. 남성들의 파워풀한 에너지와 리듬감, 각을 살린 군무는 객석의 열기를 더했다.

DA Dad Dada (c)Carmen SO (사진제공=CCDC)
ZOU made from fume (c)Carmen SO (사진제공=CCDC)

일본 하라 사오리(Saori HARA)의 <DA Dad Dada>와 쿠로수 이쿠미(Ikumi KUROSU)의 <ZOU made from fume>이 WKCD 프리 스페이스 더 박스에서 핫팟의 마지막 무대를 장식했다. 하라의 <DA Dad Dada>는 자전적 내용으로, 무용수였던 자신의 아버지를 소개한다. 아버지가 젊은 날 출연했던 당시의 뮤지컬 영상을 활용하는가 하면 아버지가 추던 춤을 무대에 재연하는 등 다큐멘터리적인 요소가 두드러졌다. 쿠로수의 <ZOU made from fume>은 연기와 방독면을 사용하여 미래에 대한 불안감 혹은 검증되지 않은 보도를 표현한다. 커다란 큐브가 등장하고 그 공간을 지키기 위해 누군가를 몰아내거나 큐브를 이동시키는 등의 모습, 방독면을 차지하려 겨루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IT'S NOT MY BODY' chapter 3.5 (c)Carmen SO (사진제공=CCDC)

미국, 유럽을 중심으로 활발했던 현대무용의 새로움이 다소 주춤거린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한두 해의 일이 아니다. 움직임에 집중하던 시기를 넘어 무언가 더 새로운 표현을 위해 컨셉추얼에 집중하는가 싶더니 춤은 다시 움직임을 찾는 여정으로 돌아섰다. 코로나 팬데믹까지 더하며 인류는 새로운 표현에 집중하기보다는 본질로의 회귀를 꾀하고 표현에 있어서도 원형을 찾아 나서는 모양새이다. 그러다 보니 외연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내면에 깊이 몰입하며 영적 존재로서 자연과의 합일을 추구하는 아시아의 문화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이미 오래 전부터 서양의 배우들이 동양의 종교에 심취하거나 요가 등 정신수양에 열중하는 모습들을 보아왔다.

그런 의미에서 핫팟은 시대의 필요를 채울 수 있는 방편이 되어주며 전혀 새로운 새로움을 찾을 수 있는 창구가 된다. 다만 표현의 질적 향상이나 작품의 예술성은 나라별, 안무가별, 작품별로 그 편차가 매우 컸다. 내가 보기엔 한국 작품들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큰 것 같았다. 다섯 작품이 각각의 개성을 보여주었으며 다양성을 가지고 풍요로운 무대를 선사했다. 각국의 델리게이트들이 한국의 공연이 하나하나 끝날 때마다 스마트폰을 열어 안무가를 검색하고 서로 놀라워하며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며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No Comment' (c)Carmen SO (사진제공=CCDC)

홍콩과 중국이 카테고리를 나누어 공연된만큼 개인적으로는 그 차이에 대한 관심이 높았지만 개막작을 제외한 모든 공연에서 크게 두드러지는 차이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움직임의 사용이나 의미 전달이 다소 직접적이어서 때때로 구태의연해지는 아쉬움이 느껴졌다. 서정적인 음악, 빛 등의 사용을 통해 희망의 미래를 향한 메시지를 담아내며 마무리하는 것도 여러 작품에서 볼 수 있었던 특징이다.

다만 주제 면에서 중국은 홍콩, 한국, 일본에 비해 사회적, 정치적 이슈를 많이 다루고 있었다. 권위주의와 전체주의가 결합된 중앙집권체제 안에서 다소 억압된 개인들의 정서가 예술가들에 의해 표현되는 것은 아닌지 추측해보았다. 일본은 두 작품 뿐이어서 이렇다할 특징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들만의 문화적 정서는 느껴볼 수 있었다. 간섭, 평가, 갈등을 피한다는 특유의 기질 때문에 모호하며, 눈앞의 현실보다는 가능성 위주로 생각을 표현한다고 한다. 따라서 사회 안에서는 집단주의적 면모를 보이는 반면 개인적으로는 폐쇄적인 모습을 보여 오타쿠 문화가 발달하게 된 것이라고. 그런 연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본의 두 작품을 보면서 안무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가 보편적인 범주 안에서 나에게 이해되기 보다는 그들의 독특한 표현법에 다소 이질감이 느껴졌다.

戱曲中心(경극센터) 입구에서 기념촬영하는 참가자들 (c)West Kowloon Cultural District Authority (사진제공=CCDC)

이번 핫팟에 동행할 기회를 마련해준 국제무용협회(CID-UNESCO) 한국본부의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시댄스)에 감사를 표한다. 매번 한국에서만 공연을 관람하던 시각에서 벗어나 직접 외국의 문화현장을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예술가들을 만난 기억은 분명 한국에서는 경험할 수 없던 것들이었다. 또한 해외 무대에서 자신들의 평소 기량 그 이상을 보여준 한국의 무용가들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어디 그 뿐인가. CID-UNESCO 한국본부 이종호 회장의 국제교류 현장에서의 품격와 네트워크, 인지도를 실감하면서 우리나라 무용의 국제교류 발전과정을 다시금 반추해 볼 수 있었다.

내년 핫팟은 일본 요코하마 댄스 컬렉션의 주관으로 12월 둘째 주에 열릴 예정이란다. 일본으로 떠날 계획을 미리부터 세워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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