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뮤지컬 ‘일 테노레’ - 식민지 청년예술가들의 오페라의 꿈
[공연리뷰] 뮤지컬 ‘일 테노레’ - 식민지 청년예술가들의 오페라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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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12.27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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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일 테노레' 공연장면(사진제공=오디컴퍼니)
뮤지컬 '일 테노레' 공연 장면 (사진제공=오디컴퍼니)

[더프리뷰=서울] 유희성 공연칼럼니스트 = <일 테노레(Il Tenore)>는 이탈리아어로 '테너'라는 뜻이다. 실존했던 역사적 인물과 사건에서 영감을 받아 사실을 바탕으로 허구를 가미해 창작한 팩션뮤지컬로, 오디뮤지컬컴퍼니(대표 신춘수)가 제작한 신작 창작뮤지컬이다.

1930년대, 일제강점기 고난의 시대, 낯선 서양예술인 오페라를 공연하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고통스럽고 혼란한 시기에 운명처럼 성악을 처음 접하고, 이윽고 식민지 젊은이들의 꿈과 조국의 미래를 은유적으로 드러낼 오페라를 공연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그 꿈을 실현하려는 의지를 바탕으로 시대적 혼란의 틈바구니에서 촌각을 다투며 은밀하게 벌여야 했던 암묵적 투쟁의 시간들을 올곧고 절실하게 뮤지컬이라는 양식으로 녹여 낸다.

질풍노도처럼 혼탁하고 처절한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이 발발하기 전 근현대 한국사에서 정치적, 개인적 고난이 극에 달해 모두가 불행했던 시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자신들의 꿈을 향해 돌파구를 찾아가며 끝내 이겨내려 하는, 자신의 꿈과 조국의 미래를 걱정하며 문학과 예술의 테두리에서 소신껏 엮인 윤이선, 서진연, 이수한이라는 청춘들의 같고 또 다른 꿈과 삶과 사랑. 막다른 골목 같은 비극적 상황에서도 가까스로 일구어 나가는 시간의 정서들을 뜨겁고 격한 감동으로 마주하게 된다.

오늘의 시점으로 그 힘겨운 시기 청춘들의 고단한 꿈을 이해하게 되고, 누군가 살아남아 그 시대의 상황과 사건들을 풀어 내는 개인의 기억들을 따라 그 시절 청춘들의 꿈, 문학과 예술, 삶과 사랑의 시간을 접하게 된다. 가슴 저미는 긴박하고 애틋한 시간적 감성과 더불어 잔잔하고 뭉클하게 전해지는 따스한 위로, 다시 주먹 쥐고 자신의 꿈을 찾아갈 수 있는 용기, 예술적 가치와 영감에 대해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해주는 사랑스러운 창작뮤지컬이 탄생했다.

이 작품은 <어쩌면 해피엔딩>과 <번지점프를 하다>로 잘 알려진 윌과 휴(Will Aronson 작곡, 박천휴 작가)가 참여해서인지 처음부터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2018년 우란문화재단 개관 축제 <피어나다>에서 소개된 낭독공연부터 시작해 팬데믹 기간을 거치고 오디뮤지컬을 만나 몇 차례 텍스트의 수정과 보완을 통해 드디어 2023년 12월 19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개막, 현재 성황리에 공연 중이다.

뮤지컬 '일 테노레' 공연장면(사진제공=오디컴퍼니)
뮤지컬 '일 테노레' 공연 장면 (사진제공=오디컴퍼니)

낭독공연부터 봐왔었지만, 역시나 서정적이고 드라마틱한 넘버에 다시 한번 감기게 되고, 수정 보완된 서사의 디테일도 훨씬 정리되고 개연성이 있어 매끄러워졌으며, 캐릭터들도 더 상징적이거나 섬세해지고 그들의 대사와 연기에도 당위성이 부여되었다.

무대디자인(오필영 디자이너)은 1막은 시대적인 상징성과 더불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열악한 캠퍼스와 공연 연습장소를 감안해 무대를 다소 협소하게 전면부를 주로 활용하고, 서사와 인물들과의 구별과 개연성을 통해 앞으로의 전개를 예측할 수 있는 정서를 구축했다.

2막에서는 오페라를 위한 회전무대와 후면무대까지 열고, 마지막에는 오케스트라의 배치까지 확연히 드러낸 시각선을 통해 작품 서사와의 연결성을 충분히 매칭하며 시원하고 묵직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도록 리드했다.

조명(마선영 디자이너)과 의상(조문수 디자이너)의 합을 보여준 무대 미장센은 작품의 시대성을 살리면서도 동시대적인 미학에 미래적인 이미지까지 세련되게 구축해 냈다.

무엇보다도 오케스트라가 후면에 있어서 결코 쉽지 않았을 음향디자인(권도경)의 깔끔하고 명료한 음향이 작품의 운영과 완성도에 제대로 방점을 찍어 주었다.

코너 갤러거(Connor Gallagher)의 극적인 안무와 프러덕션의 조화를 이끌어 낸 오디뮤지컬 컴퍼니 신춘수 대표와 김동연 연출의 연말연시 축복의 선물같은 뮤지컬이다.

뮤지컬 '일 테노레' 공연장면(사진제공=오디컴퍼니)
뮤지컬 '일 테노레' 공연 장면 (사진제공=오디컴퍼니)

배우들 또한 여느 작품 못지않게 창작 초연임에도 불구하고 어색하거나 흐트러짐없이 각자 제 몫을 철저히 해 내었다.

무엇보다도 윤이선 역의 홍광호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자타가 공인한 한국 대표 월드클래스 뮤지컬 배우로 손색 없는 모습을 여러 공연을 통해 확인했지만, 이번 <일 테노레> 창작 초연으로 구축한 캐릭터와 극성에 딱 어울리는 절묘한 절창을 통한 휘스퍼링, 벨팅과 벨칸토 창법으로 구분해 버무린 감정이입, 마법을 부린 것 같은, 가히 놀라운 경지의 가창력에 그저 신비감과 경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서진연으로 분한 박지연은 연기력과 가창력을 겸비한 에너자이저의 역할로 확연하게 어필했으며, 이수한 역을 맡은 신성민의 젊은 패기와 열정적인 합 뿐 아니라 무대에 선 모든 배우들의 혼신을 다한 열연 덕분에 창작뮤지컬로서의 성공은 물론, 월드투어 가능성도 가일층 높아진 것 같다.

공연은 오는 2024년 2월 25일까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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