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논객의 춤시선-24] 2024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원사업 선정결과 유감
[낭만논객의 춤시선-24] 2024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원사업 선정결과 유감
  • 장승헌 공연기획자
  • 승인 2024.01.16 13: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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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프리뷰=서울] 장승헌 공연기획자 = 신년 벽두부터 지인 무용가들로부터 새해 안부 인사를 겸해 ‘2024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원사업’ 결과에 불만을 토로하는 전화가 빗발쳤다. 컴퓨터를 켜고 변화된 지원제도에 대해 촘촘히 읽어보았다. 그리고 선정된 지원 단체와 그들에게 지급될 예산 규모를 훑어보았다. 너무나 충격적인 결과라서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했던가. 오래전 서울을 떠나 전라남도 나주에 자리 잡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그들의 지원정책에 대한 신뢰감이 한 순간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2024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예술위) 지원사업’의 무용부문 선정 결과를 보면서 내 눈을 의심했다. 해마다 반복되는 이 상황은 대체 언제쯤이면 제 자리를 찾고 순기능을 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 ‘그 끝이 안 보인다’라고 하면 지나친 표현일까? 며칠을 고민하다가 욕먹을 각오를 단단히 하고, 독수리 타법으로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이 글은 지난 40여년 무용계와 공연현장에 굳건히 발 딛고 있는 한 기획자의 솔직한 시선이자 진심 어린 호소임을 말해둔다.

먼저 지난 37년 간이나 무용계 봄 시즌을 대표하던 <한국 현대춤작가 12인전>은 1차 서류심사에서부터 탈락했다.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작가성을 인정받는 이 시대의 무용가 12명을 선정해 솔로 또는 듀엣 작품을 직접 안무하고 직접 무대에서 춤을 추게 하는 <한국 현대춤작가 12인전>은 무용계의 꾸준한 관심과 신뢰를 받아 온 행사이다. 그런데 뜻밖의 지원금 선정 탈락으로, 엄격한 심사를 거쳐 통과한 아르코예술극장 대관을 취소하며 올해 행사를 아예 포기했다고 한다. 이 소식을 전하는 주최 측의 잠긴 목소리에 가슴이 먹먹해 왔다.

이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연이어 중견, 중진 단체들의 탈락 소식이 줄줄이 이어졌다. 모두가 1차 심사에서 탈락했다는 자조와 한탄 섞인 전화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지원금 심사에서 탈락한 웹진 <댄스포스트코리아>는 2024 예술위 지원사업 선정 결과에 문제가 있다는 칼럼을 실었고, 와중에 웹진 <굿 스테이지>와 <더 프리뷰>, (사)한국현대무용진흥회의 <서울국제안무가 댄스페스티벌(SCF)>도 1차 심사에서부터 탈락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 가운데 <굿 스테이지>와 <더 프리뷰>는 무용뿐만 아니라 여러 장르를 다루는 매체로서 예술위의 안내에 따라 ‘음악’ 부문에 신청했는데 아예 서류심사에서 떨어졌다고 한다. 정초에 접한 역대 최악의 선정 결과는 생각할수록 황망하여 필자를 깊은 자괴감에 빠져들게 했고, 며칠째 집 밖에 나서질 못하게 했다.

문득 3년 전 예술위 무용위원으로 선임된 분이 심의위원 풀(Pool)에 대한 고민을 토로하면서 그 대안에 대해 두어 차례 물어 왔던 기억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번 선정 결과를 보니 문제가 해결되기는 고사하고, 공정과 상식을 넘어선 이름들이 심사위원 명단에 버젓이 올라 있어 뜨악했다. 지원 심의는 누가 누구를 심사하는 것인가, 이것이 이번 ‘참사’의 본질적 문제이다.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본 이번 ‘참사’의 책임 주체는 무용장르의 특수성을 무시하고, 무용생태계에 대한 무지함을 드러낸 예술위라고 감히 단언한다. 작년에 예술위 정병국 위원장이 취임사에서 강조했던 ‘상식 차원의 실천의지’는 온데간데없이 예술위 직원들은 ‘혁신과 변화’에만 방점을 둔 듯 보인다. 특히 그들은 지원제도의 변화에 역점을 두고 공연예술분야 지원을 ‘창작과정’ ‘창삭산실(신작)’ ‘창작주체‘라는 세 가지 영역으로 재구성했다. 그 틀 안에서 이런저런 지원 시스템을 통합하고 단순화시킨다는 명분 하에 정작 세심하게 다루어져야 할 ’예술가들‘과 ’현장‘은 완전히 무시되었다. 이런 명백한 판단오류가 이번 참사를 불렀고, 그 배경이 되는 근본 원인은 결국 현장과 현실에 대한 무지였던 것이다.

무식하면 용감해진다고 했던가? 팬데믹 종료 선언 이후 문화예술계 변화에 대해 철저하게 준비하지 않았음이 이번 사태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허구적인 정책구호와 지원 시스템의 패착이 드러나 버린 것이다. 정부가 십 수 년 전부터 강조해 온 ’선택과 집중’이라는 예술정책의 반영도 아니고, 그렇다고 인공지능(AI)과 챗GPT 시대를 대비한 것도 아닌, 시대 역행적이며 후진적인 선정으로 무용계를 발칵 뒤집어 놓고서 예술위는 ‘송구영신’이라면서 며칠간 휴면 상태에 들어가 있었다.

무용분야 2차 심의에서 유일하게 탈락한 비평매체로 <댄스포스트코리아>가 있다. 15년 전부터 우리 무용계가 취약했던 인문학적 접근과 아카이브 확장을 위해 노력해 온 매체인데, 심의위원으로 참여했던 예술행정가와 실기무용가들이 이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점이 너무 아쉽다. <댄스포스트코리아>는 기록, 아카이브, 연구, 창작, 비평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우리 춤문화의 진화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고, 그 효과는 무용계 전반에 실제적으로 나타났다. 이 매체는 지금도 다양한 방식의 리뷰, 무용사의 역사적 인물과 사건에 대한 인문학적 접근, 집중 인터뷰 형식의 안무 리서치 등 다른 매체들과는 다른 각도의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굿 스테이지>는 무용, 연극, 음악, 뮤지컬 등 문화예술계의 여러 장르를 아우르면서 20만 구독자를 보유한 문화예술 정보매체이다. 지난 2년간 ‘다원장르’ 매체로 문예위 지원을 받은 터라 더욱 당혹스럽다. 지난 1월 3일 송인호 발행인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이게 최선입니까”라는 제목으로 이번 지원사업의 폐해를 당당하게 지적했다. ‘창작주체’로 얼버무린 사업구조 변화의 문제점을 상세하게 언급하면서 무용을 넘어 다른 장르의 생태계 작동에도 제동을 건 ‘황당한 시스템 설계의 실패’를 지적했다. 지금 필자의 글이 실린 <더 프리뷰>의 지원사업 탈락도 같은 맥락이다. 국내 공연예술계 매체들 가운데 일반정보와 비평을 함께 충실히 다루는 보기 드문 형태인데다, 정확하고 깔끔한 내용과 품격있는 비평으로 갈수록 큰 성원을 받고 있는 매체인데 허망하게 예심 탈락이라니.

안타까운 상황은 또 이어진다. 젊은 안무가들의 해외무대 진출에 일정 부분 기여해온 서울국제안무페스벌(SCF)과 함께 ‘믿고 보는’ 몇몇 독립안무가들의 탈락 소식도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물론 믿을만한 매체라고 해서, 훌륭한 예술단체라고 해서 반드시 지원금을 받으란 법은 없다. 좋은 단체들이 떨어지고 수상쩍은 단체들이 혜택을 받는 모습을 어디 한두 번 보아왔던가. 그러나 올해의 사태가 심각한 것은 바로 '창작의 주체' 등 애매한 지원구조 재편성, 어울리지 않는 심의위원 구성 등 ‘구조적 문제‘에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4명의 심의위원(5명 가운데 1명이 사퇴해서 4명이 심의를 했다는데 이 부분도 이해하기 어렵다. 매우 중요한 심사였던만큼 누군가 사퇴를 했으면 충원을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는 훌륭한 인물들이지만 과연 이번 심사를 맡기에 적합한 사람들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위에 예를 든 몇몇 단체와 매체들을 편들기 위해 이 글을 썼다고 오해하지 말기를 바란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한둘이 아니지만 자칫 특정 개인이나 특정 단체에 대한 오해를 야기할까 두려워 탈락한 단체 중 일부를 예로 들었을 뿐이다.

예술위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2024년 지원사업 선정 결과에 대해 책임감 있는 보완책과 대안을 내놓기를 진심으로 촉구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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