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바이올리니스트 윤소영의 ‘기호지세(騎虎之勢)’
[공연리뷰] 바이올리니스트 윤소영의 ‘기호지세(騎虎之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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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01.22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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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소영 바이올린 리사이틀, 2023년 11월 29일 롯데콘서트홀

[더프리뷰=서울] 최태경 음악칼럼니스트 = 지난 늦가을 세계적인 현악기 스트링 브랜드 'Thomastik-Infeld'의 아티스트로 선정된 바이올리니스트 윤소영과 피아니스트 이진상의 듀오 리사이틀에 다녀왔다. 롯데콘서트홀의 '인 하우스 아티스트 시리즈'의 일환으로 윤소영과 이진상은 아르보 패트르의 <프라트레스>를 미디어아트와 함께 시작하였다.

아르보 패르트는 미니멀리즘적인 요소를 종교적 색채와 결합한 에스토니아의 현대음악 작곡가로서 대표작으로는 <거울 속의 거울(Spiegel im Spiegel)>이 널리 알려져 있다. 아르보 패르트의 <프라트레스>는 그의 대표작이지만 흔히 연주되지 않으며, 리코셰(Ricochet, 연속되는 음들을 활을 줄에 던져서 튕겨지는 소리를 유발하는 테크닉)가 주를 이루는 곡이다. 리코셰는 현란한 기교를 보여주기 위하여 비르투오조 곡에 자주 사용되는 주법이다. 그렇기에 많은 연주자들이 기술적 무결함을 위하여 이를 연마하려고 노력을 한다. 하지만, 모든 리코셰가 오직 비르투오조적인 성격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고난도 활 주법이라는 명목 하에 무대 위 많은 현악기 연주자들이 리코셰를 연주할 때, 오로지 화려한 기술적 측면에만 집중하여 음악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잃는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그러나 윤소영의 현란하면서도 유연한 활의 움직임에서 나오는 이질적이지 않은 알토란 같은 작은 음들의 나열은 기교를 넘은 경지로서 음악적 흐름을 온전히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 탁월함을 보여주었고, 관객들은 그 속에 혼을 바칠 수 밖에 없었다.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8번>은 전반적으로 특정 멜로디의 반복이 굉장히 많이 나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는 고전적 형식미의 뛰어남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반면 정형화된 형식으로 인한 지루함을 배제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그래서 많은 연주자들이 반복되는 구간을 연주할 때 동일한 부분을 다르게 연주하여 이를 해결하고자 노력을 한다. 하지만 이 마저도 해당 곡을 속속들이 잘 알고 있는 이가 아니라면 이 역시도 비슷하게 들릴 가능성이 많고, 음악적 변형이라는 짜여진 각본을 잘 구성했더라도 이 또한 듣는 이가 큰 색다름을 느끼기는 어렵다. 그러나 윤소영과 이진상의 듀오에서는 이러한 단조로움과 따분함을 전혀 느끼지 못하였다. 필자는 그녀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 부분에 대하여 그녀의 신선한 아이디어 혹은 탁월한 해법이 존재하였는지에 대해 질문하였다. 그녀는 "지루하지 않은 흥미를 관객들에게 선사하기 위해, 이 부분에 대해 굉장히 고심을 하였고 리허설 중 이진상과의 대화를 통해 무대 위 두 사람의 즉흥성을 따르는 것을 바탕으로 연주를 준비하였다"고 답하였다.

또한 이 곡은 바이올리니스트 윤소영에 대해 떠올리는 이미지를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많은 이들이 그녀의 아이덴티티와 연주 스타일에 대하여 논할 때, 격렬하고 강인한 카리스마를 지닌 연주자라 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격렬하지도 않고 강인한 카리스마를 그리 요하지도 않는 우리의 사랑스러운 베토벤 <소나타 8번>을 통해, 그녀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의 따뜻함을 느꼈고 존재하지 않을 듯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녀에 대한 긍정적 선입견에 '아름다운 소리'라는 카테고리를 추가하고 싶다.

프로코피에프 <바이올린 소나타 1번>은 왜 그녀가 이 시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인지를 깨닫게 만들어 주는 곡이었다. 공허의 어둠 속에서 드러난 칼날보다 예리한 섬뜩함이 온몸을 휘어감는 것과 같은 전율의 소리에 숙연함을 벗어날 수 없었다. 또한 그녀의 독보적인 장점 중 하나인 절정의 카리스마 역시도 이 곡을 통해 역시나 돋보일 수밖에 없었다. 윤소영은 난해함으로 가득한 이 곡을 단지 관객에게 이해를 시키는 것이 아니라, 함께 바라보고, 듣고, 상상함으로써 한 치 앞의 무한한 환상을 그려주었다. 윤소영, 이진상, 나 그리고 당신(필자 그리고 옆의 관객) 모두가 같은 ‘무언가’를 느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바르톡 <루마니안 댄스>의 훌륭한 면모는 그녀의 리듬감에서 나왔다. 지난 11월 24일 인천시립교향악단과의 쇼스타코비치 <바이올린 콘체르토 1번> 협연에서 보여준 것과 같은 숨막히는 리듬의 결정체는 그녀의 압도적인 장점이다. 정교한 리듬에 입혀진 루마니아의 투박한 민속적 색채는 흥미롭지 아니할 수 없었다.

그녀의 연주를 통해 '기호지세(騎虎之勢)'라는 고사성어가 떠올랐다. 라이브 연주의 감동은 마치 틀릴 듯 말 듯 위험을 감수하고 전진할 수 있는 에너지와 그 아슬아슬함에서 나온다. 실수가 두려워 안정적인 연주에 안주하게 된다면 관객에게 연주자의 에너지를 전하기 힘들고, 따분한 연주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연주자 자신을 극도로 밀어 부치고 이를 즐기는 순간, 연주자와 관객 모두의 거대한 카타르시스가 나온다고 믿는다. 이것이 라이브 연주의 묘미가 아닌가! 호랑이 등에 올라탄 그녀는 떨어질까 두려워하지 않았고 그대로 즐겼다. 이는 역설적이게도 무대 위 엄청난 지배력이 되었다.

바이올리니스트 윤소영은 오는 3월 28일 롯데 콘서트홀에서 한경 필하모닉과 함께 관객들에게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선사할 예정이다. 또한 올 한 해 세계 각국을 순회하며 25회의 리사이틀을 소화할 예정인데, 그녀는 각별한 고심과 새로운 시도를 통해 관객들에게 큰 감동과 기쁨을 선사하고 싶다고 전했다. 

당신이 바이올린 연주를 관람할 때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가? 아름다운 소리, 강렬한 카리스마, 지독한 슬픔, 드라마틱한 감동의 순간? 그 무엇을 기대하든, 윤소영의 연주는 당신을 만족시킬 것이라 확신한다.

공연 포스터 (사진제공 = 롯데문화재단)
이진상-윤소영 공연 포스터 (사진제공=롯데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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