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뮤지컬 ‘컴프롬어웨이’ - 9.11 테러의 트라우마, 그럼에도 '희망'
[공연리뷰] 뮤지컬 ‘컴프롬어웨이’ - 9.11 테러의 트라우마, 그럼에도 '희망'
  • 더프리뷰
  • 승인 2024.02.04 10: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뮤지컬 컴프롬어웨이 공연모습 (사진 제공= 쇼노트)
뮤지컬 '컴프롬어웨이' 공연 모습 (사진제공=쇼노트)

[더프리뷰=서울] 유희성 공연칼럼니스트 = 2001년 9월 11일, 뉴욕의 상징이었던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항공기 테러로 붕괴되는, 보는 눈을 의심할 정도로 그야말로 믿기지 않는 장면이 TV를 통해 생중계되었다.

그 순간 누구나를 막론하고 공포로 얼어붙었고, 더불어 이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를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전 인류를 얼어붙게 만들며 최악의 혼란에 빠뜨렸다.

테러 직후 미국 영공이 폐쇄되면서 미국으로 향하던 수 십 대의 항공기들이 캐나다에 불시착하게 되고, 승객들은 마냥 불안과 초조, 공포의 시간을 겪게 된다. 느닷없는 낯선 상태를 거듭하는 승객들의 일상과, 느닷없는 이방인들의 방문으로 혼란하고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인 현지인들 사이에서 평행을 치닫는 이질감의 순간들. 뚜렷한 해결책도 없고 나아질 거라는 보장도 보이지 않는 가운데 그저 막막하고 답답한 승객들과 주민들의 일상이 곳곳에 그려진다.

그 충격적인 공포와 트라우마의 상흔으로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막막하고 힘든 시간을 지내 온 이들은 여전히 완벽하게 치유받지 못한 정서적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아직까지도 간헐적으로 지속되는 크고 작은 테러의 위협으로부터 절대 안전과 평화는 그 어디에도 없는 것 같다는 불안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뮤지컬 '컴프롬어웨이' 공연 (사진제공=쇼노트)

그로부터 10년 후, 9.11 테러의 직접적인 사건 내용이 아닌, 당시 캐나다 뉴펀들랜드 섬의 작은 마을 갠더에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캐릭터들이 겪은 에피소드식 구성으로 엮어 낸 뮤지컬 <컴프롬어웨이>가 탄생한다.

9.11 테러로 인한 불시착이 운명처럼 만들어 낸 희망의 이야기, 뮤지컬 <컴프롬어웨이>의 항해가 시작된 것이다.

캐나다 출신 아이린 산코프(Irene Sankoff)와 데이비드 헤인(David Hein)이 대본과 작곡으로 참여했다. 이들 두 사람은 9.11 테러 10주년이었던 2011년 실제로 갠더 마을을 방문, 현지인들 및 당시 이곳에 불시착했던 승객들을 인터뷰하며 작품을 구상했다. 그리고 워크숍 등 지속적인 단계별 개발과정을 거쳐 2015년 샌디에이고에서 첫 공연을 선보인 이후 시애틀, 워싱턴 D.C, 토론토 등을 거쳐 2017년 드디어 브로드웨이에서 막을 올렸다.

이듬해 토니 어워즈 최우수 연출상을 비롯해 올리비에 어워즈 최우수 작품상, 음악상, 안무상 수상, 드라마데스크 어워즈 최우수 작품상, 대본상, 여우주연상, 외부비평가협회상 등 주요 뮤지컬 어워즈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뮤지컬 <컴프롬어웨이>의 창의적인 캐릭터 구축은 신선하고 독특하다.

대다수의 뮤지컬 작품들처럼 배우들이 자연스럽게 1인2역 이상을 소화하며 마을 주민과 탑승객을 겸할 뿐 아니라, 주역, 조역, 단역, 앙상블과 더불어 효과음까지 소화하며 매 순간 텍스트의 정서와 상황에 적절한 상태와 어울림으로 늘 함께 더불어 춤추고 노래하고 연기하면서 최고의 합을 맞추어 이 작품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이끌어 낸다.

뮤지컬 '컴프롬어웨이' 공연 (사진제공=쇼노트)

이러한 작품의 특성을 잘 반영하거나 더 깊이있게 리딩할 수 있는 상징적인 프러덕션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오히려 너무 볼거리가 많고 세련된 무대 메커니즘이 들어온 것이 관객을 작품의 정서나 상태에 집중시키는 데 있어서 마이너스가 되지 않았나 싶다. 하나되고 응축된 합일의 지향점을 만들어내면서 캐릭터들의 다양한 변신을 통한 서사나 음악적 정서에 동화된다기 보다는 시각적으로 다소 분산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이 작품에 참여한 실력있는 배우들의 진면목을 확인한 것과 더불어 우리에게는 그다지 친숙하지 않았던 아일랜드의 악기 만돌린, 바우린, 휘슬, 피들 등을 활용한 켈트 음악의 신비롭고 흥겨운 리듬의 음악성과 하모니를 향유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이 작품을 봐야 할 이유는 충분했다. 오히려 조금 더 액터 뮤지션으로서 무대에 적극적으로 노출되거나 참여했으면 하는 바람까지 생겼다.

배우들의 열연은 그야말로 최고의 앙상블로 하나가 되는 벅찬 하모니였다.

뮤지컬 '컴프롬어웨이' 공연 모습 (사진제공=쇼노트)

오랫동안 한국 뮤지컬의 대표 배우 중 한 명인 믿고 보는 남경주의 열연, 명료하고 활기찬 음색으로 작품의 중심을 잡아 준 고창석 배우, 갠더의 소식통 오즈 역과 혼란을 겪은 방문자 역을 깨알 연기와 명료한 딕션, 안정적인 가창으로 작품을 이끈 심재현 배우, 다채로운 표정 변화와 개성을 통한 맛깔스런 연기 변신과 열연의 뷸라/들로리스 역 장예원 배우, 또한 정영아 배우의 천연덕스럽고 자신있고 시원시원한 에너지와 주민진 배우의 감쪽같은 천의 얼굴의 연기 변신, 그리고 마냥 사랑스럽지만 결코 튀지 않으면서 절묘한 가창과 극태의 연기 변신을 통해 작품의 격을 끌어 올린 최현주 배우의 알찬 캐릭터 소화력은 이 작품의 결을 공고히 했다.

무엇보다도 편견에 맞서 아메리칸 에어라인 최초의 여성 기장이 된 파일럿 비벌리 역과 갠더 학교의 선생님인 아네트 역으로 주민들의 일상 속 사방에서 출현하는 신영숙 배우의 일거수 일투족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리고 소소하고 위트있는 개성적인 표정 연기와 카멜레온처럼 변하는 극적 상황과 상태에 따른 음색 변화, 시원하고 폭풍 같은 아리아의 절창을 통한 심쿵 매력을 체험하는 것만으로도, 관극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최고의 행운을 누릴 수 있으리라 단언한다.

지난해 11월 29일 개막한 이번 공연은 오는 2월 18일까지 계속된다. 광림아트센터 BBCH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