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결국 사랑하는 것은 나 자신 - '남성창극 살로메'
[공연리뷰] 결국 사랑하는 것은 나 자신 - '남성창극 살로메'
  • 유화정 무용이론가
  • 승인 2024.03.01 09: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남성창극 살로메' (c)하지영 (제공=한국문화예술위원회)

[더프리뷰=서울] 유화정 무용이론가 = '살로메', 그 이름만으로도 광기와 파괴의 정서가 강렬한데 여기에 '남성창극'을 덧붙여 독특함을 더했다. 창극의 변화무쌍한 시도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과거의 여성국극단을 연상케 하는 젠더프리 공연을 선보이려는 것일지, 그 의도와 결실이 궁금해지는 전략이다. 새빨갛게 물들인 홍보 포스터와 달리 실제 직면한 무대는 담백하게 검다. 그 중 눈부시게 빛나는 둥근 고리 한 개와 주변을 에워싸는 희뿌연 연기가 시선을 앗아가며 환상의 공간을 연출한다. 이 고리가 달빛의 형상인지, 천국으로 연결되는 길목인지 은유의 비밀을 파헤치려 집중할 즈음, 적막을 깨는 악기 소리가 공연의 시작을 알린다. 쉴 틈 없이 감정의 절정으로 치닫는 극한의 레이스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우회하지 않는 시선과 목청

<살로메>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의 관계는 현대의 도덕관념으로는 받아들이기 거북스러울 만큼 복잡하게 얽혀 있다. 헤로데(왕)는 의붓딸인 살로메를 사랑하고, 살로메는 요한(예언자)을 사랑하며, 헤로디아(여왕)는 메나드(시종)를 사랑하고, 메나드는 나라보스(호위대장)를 사랑하며, 나라보스는 살로메를 사랑한다. 사랑이라 표현했지만 섹슈얼리티에 매몰된 소유욕이자 집착에 가깝다. 각 배우들은 자신이 맡은 인물이 선택한 사랑의 방법과 감정 유형에 집중한다. 적지 않은 인물이 한데 모여 자신의 감정에만 집중하는 극이라, 처음부터 끝까지 날선 리듬으로 내달린다. 증오, 질투, 집착, 요구, 관찰로 점철된 욕망이 저마다 춤을 추고 종잡을 수 없는 변덕이 짜증스러운 비명으로 치달을 때 관객은 전율을 느낀다. 그런데 전율을 식힐 틈도 없이 다음 바통을 넘겨받은 인물이 또 다른 색깔의 집착과 짜증을 쥐어짠다. 내지르는 가운데 차갑게 고요해지는 반어법조차 없다. 관객 입장에서는 피곤한 극이 맞다. 사건과 인물 사이 인과를 현대적으로 해석하거나 토종화하는 데는 크게 관심 두지 않은 듯하다. 대신 원작의 괴기한 분위기를 판소리의 내지르는 창법과 만나도록 하는 데 집중했다. 끝까지 파헤쳐서 악을 쓰고 마는 특성이 그로테스크한 난장과 잘 어울릴 것이라는 예상은 잘 맞아떨어졌다. 배우들은 자신이 집착하는 대상에게 시선을 내리꽂고 그 주변에는 관심조차 없다. 그들의 우회하지 않는 시선과 목청이 거미줄처럼 엇갈리는 흥미로운 연출이 돋보였다.

'남성창극 살로메' (c)하지영 (제공=한국문화예술위원회)

누가 질세라 쏟아내는 배우들

살로메를 연기한 김준수(2월 3일 저녁 7시 공연)는 소리, 언어, 몸짓 그 어느 하나 놓치지 않고 자신만의 리듬으로 능청스럽게 살로메를 해석해낸다. 악독하고 섬뜩한데 애처로운 연기가 비소로 터지거나 눈물로 얼룩진다. "나는 보고 있어도 보이지 않을 때가 있어." 하찮은 곳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 살로메의 성격, 그리고 성격을 만든 환경과 현재의 지위를 한 마디로 종결짓는 대사다. 극의 후반, 살로메는 은쟁반 위에 올려둔 요한의 머리를 향해 남아있던 단 한 방울의 에너지마저 전력을 다해 쏟아낸다. 묶었던 머리칼이 풀어지고 눈물 콧물이 흐르며 무대 위 달은 붉게 물든다. 눈과 입으로 발산하기 어려울 만큼 제멋대로 뻗어나가는 그의 에너지 때문에 살로메의 몸은 막이 내릴 때까지 계속해서 터져 나간다. 기쁨이든, 슬픔이든, 분노든, 감정의 끝은 한 지점에서 만나리라. 예민하고, 고집불통이고, 스스로를 못 이겨 바들바들 떨며 날뛰는 살로메는 다른 인물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 덕에 무대에 선 모두가 자신이 가진 전부를 쏟아내는 진풍경이 연출된다.

대부분의 인물들이 광기와 집착으로 얼룩졌으나 각 상황에 반응하는 유형은 제각기라 지루하지 않다. 헤로디아(여왕)는 살로메처럼 단박에 터지는 뜨거움은 아니지만, 쌓아온 감정을 컨트롤하는 데 지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뜨거움을 연기한다. 의붓딸에게 변태처럼 집착하는 남편 헤로데에게 "(내 딸 살로메) 그만 좀 쳐다봐요."라며 어금니를 꽉 깨물어 화내는 대목, 살로메가 왕의 요구를 거절하거나 춤을 춰준 대가로 요한의 목을 요청하는 대목에서 뒤에 선 채 "하! 하! 하!" 악 쓰며 비웃는 연기가 압권이다. 헤로데(왕)는 본 적 없이 새롭지만 묘하게 설득되는 질감으로 배역에 흠뻑 빠졌으며, 요한(예언자)은 중저음의 목소리로 그가 갇힌 우물의 공간을 울려 무게를 더했다. 나라보스(호위무사)와 메나드(시종)는 극 중 인물 가운데 가장 평등한 관계의 사랑을 유연하게 연기했으며, 나아만은 이 모든 악의 고리를 관조하는 현실적 인물로서 갈기갈기 찢어진 인물들의 관계와 갈 곳 잃은 관객의 심정을 보듬었다. 7인의 주요 배역이 저마다의 불꽃을 터뜨리는 가운데 코러스 5인의 역할 또한 돋보였는데 고독하게 비워둔 무대를 연기, 소리, 춤으로 채워주는 능력이 예사 뮤지컬의 앙상블 이상으로 출중했다.

'남성창극 살로메' (c)하지영 (제공=한국문화예술위원회)

사랑 뒤에 숨은 권력 이야기

살로메에서 이야기하는 사랑은 결국 섹슈얼리티를 향한 욕망의 심리다. 대상의 외양으로부터 느끼는 섹슈얼리티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인물들은 현실에서 볼 법한 사랑 이야기를 한참 벗어났다. 메나드와 나라보스를 제외한 인물들의 관계는 모두 한 쪽이 권력을 강하게 가져간 평등치 못한 관계다. 살로메는 ‘'다른 남자들은 모두 지긋지긋했지만 너는 달랐어"라며 요한에게 사랑과 집착을 쏟아내는데, 둘 사이 일말의 소통조차 없는 일방적인 감정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살로메는 왜 요한에게 집착하는가? 살로메는 여왕의 친딸이자 왕의 의붓딸인 공주인데도 불구하고 권력을 제대로 거머쥐지 못했다. 최고의 권력자 헤로데 왕은 살로메에게 추근대며 자신을 위해 춤을 춰 달라 요구하고, 살로메는 이로부터 해방을 원한다. 그녀가 갈 수 있는 해방의 길은 왕이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고결한 인물이자 종교의 최고 권력자인 요한인 것이다. 살로메의 욕망은 결국 요한의 죽음과 자신의 죽음으로 종결된다. 이 죽음의 연쇄를 만들어 낸 살로메의 '일곱 베일의 춤'은 욕망의 끝을 장식하는 극의 하이라이트인데, 기존의 희곡이나 오페라에서 벗어나 좀더 독창적으로 해석하지 못한 선정적인 춤 장면 연출이 아쉬웠다. 다섯 명의 코러스가 베일을 한 장씩 들고 나와 춤을 추고 그 가운데 살로메가 골반을 흔들며 추는 무국적의 춤은 이제껏 풀어 놓은 수많은 감정들을 한데 모아주기에 부족하다. 핏빛으로 물든 원탁 위에서의 춤은 모리스 베자르의 <볼레로>(1960)>에서 상의를 벗은 채 춤 추는 여성 무용수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지만, 그 이상의 의미와 분위기로 무대를 장악했다면 더없이 빛날 수 있었을 것이다.

정말 젠더프리(gender-free)일까

제목에 '남성창극'을 붙이고 여성 배우는 단 한 명도 출연시키지 않은 대담함은 대중의 관심을 부르기에 충분했다. 사회적으로 부여된 성의 역할로부터 자유로운 '젠더 프리 캐스팅'을 의도한 것이라 생각된다. <살로메>의 주요 인물들은 그들의 국적, 지위, 성격 면에서 판타지적 요소가 다분하고, 서로 간에 얽힌 관계 또한 현실의 기준으로부터 한참을 벗어났기 때문에 특정 성별로 한정 지을 필요가 없다. 이에 살로메, 헤로디아, 메나드 등 여성으로 특정될 수 있는 인물들을 남성 배우가 연기하도록 한 것은 젠더프리 공연으로 향하는 첫 걸음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연기한 인물이 젠더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특정 인물을 그 어떤 성별로도 인식하지 못하는 경지에 달해야 한다. 단발적으로 화제를 끌기 위한 의도가 있었을지라도 진정한 젠더프리의 의미를 가리지 않도록 섬세한 주의가 필요한 것이다. 특히 남성이 여성을 모사할 때 관습적으로 나오는 과한 행위가 웃음을 유발한다면 희화화의 문제로 번질 수 있다. 놀랄 때, 넘어질 때, 그리고 춤을 출 때 보통 여성의 움직임이나 말투를 과장해서 연기하는 순간, 진정한 의미의 젠더프리로부터 벗어난다. 남성들만이 모여 공연을 구성한 이유를 설득하지 못하면, 젠더프리는 그저 작품의 홍보를 위해 던진 돌로 여겨질 뿐인 것이다.

'남성창극 살로메' (c)하지영 (제공=한국문화예술위원회)

검은 우물의 뚜껑을 덮다.

극 초반에 황홀히 빛나는 달빛처럼 연출되었던 둥근 고리는 속이 시커먼 우물이 되어 악에 받친 인물들의 마지막 무덤으로 종결된다. 무대 위에서 벌어진 죽음의 난장을 주섬주섬 정리하는 나아만은 비로소 관객의 긴장을 다독이며 읊조린다. "내일은 또 누가 사네 못사네, 죽네 못 죽네 하려나." "달빛은 핑계다." "인간의 악취가 심해서 안되겠다"며 시신을 모두 우물에 던지고 육중한 뚜껑을 덮는 나아만의 역할마저 없었다면 관객의 어지러운 심경은 끝까지 정리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원작에서는 살로메만이 죽음으로 치닫지만 창극 <살로메>에서는 나아만과 코러스를 제외한 모든 인물을 죽음으로 정리하는 지점이 탁월하다. 악한 존재가 깨끗이 정화되기를 바라는 창작진의 감정이 적용된 것일까? 작금의 사회에서 살로메를 뛰어넘는 악한 존재는 심심치 않게 발견되기 때문에, 그리고 어쩌면 내 안에 있는 악함과 집착증세를 살로메에 투영하는 것도 어렵지 않기 때문에, 모두 우물에 던지고 뚜껑으로 막아버리고 싶은 욕망이 해소되는 지점이었다.

유화정 무용이론가
유화정 무용이론가
hjyoo27@gmail.com
이대 무용과 박사. 어릴 적부터 춤춰온 몸의 기억을 머리와 손끝으로 전달해 좋은 글을 쓰고자 한다. 춤추는 사람들의 경계가 해체되는 순간을 포착할 때 짜릿함을 느낀다. 다른기사 보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