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새로운 브루크네리안의 탄생 - 부천필과 홍석원이 연주한 브루크너 교향곡 6번
[공연리뷰] 새로운 브루크네리안의 탄생 - 부천필과 홍석원이 연주한 브루크너 교향곡 6번
  • 더프리뷰
  • 승인 2024.03.03 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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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천필하모닉 제313회 정기연주회, 2월 28일 부천아트센터

[더프리뷰=서울] 박제성 음악칼럼니스트 =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에서 김상윤은 서정적인 표현력과 매끄러운 소릿결을 바탕으로 작품을 주도해나갔고, 지휘자 홍석원은 협연자의 볼륨과 타이밍을 고려하여 정성스러우면서도 탄탄하게 오케스트라를 이끌어 근래 보기드문 호연을 만들어냈다.

이 날의 메인은 2부에서 연주한 브루크너 <교향곡 6번>. 올해가 브루크너 탄생 200주년인 만큼 이를 기념할 수 있는 회심의 레퍼토리로서, 부천필하모닉으로서는 브루크너 전문 오케스트라로서의 축적된 경험치를 갖고 있고, 홍석원으로서는 작곡가가 태어난 오스트리아에서의 카펠마이스터 이력과 작년 광주시향과의 6번 교향곡 연주회를 가진 경험을 갖고 있는 만큼 이 둘이 만들어낼 브루크너에 몹시 기대가 컸던 것이 사실.

김상윤과 부천 필하모닉 (사진제공 = 부천시립예술단)
김상윤과 부천필하모닉 (사진제공=부천시립예술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인 최초의 진정한 브루크네리안의 탄생을 목도할 수 있었던 의미 깊은 연주였다. 그는 브루크너 음악의 본질과 재현방식을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해석의 방향성 또한 대단히 놀라웠기 때문이다. 홍석원의 브루크너는 정확함과 정교함으로 승부하는 모범적인 현대 오케스트라 스타일에 의한 해석이라기보다는 음악 자체의 스토리 텔링과 악기군 사이의 대화에 따른 뉘앙스 컨트롤과 집요한 발전-소멸적인 브루크너 고유의 이디엄, 현악 주도에 따른 팽창력 높은 음향과 절묘한 음색과 음향 변화 등을 보여주는, 지금은 거의 접하기 힘든 옛 오스트리아 스타일에 의한 브루크너에 가까웠다. 한국 오케스트라에서 이러한 스타일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2015년 발터 벨러와 KBS 교향악단의 연주회 이후 처음이었던 것 같다.

1악장 마예스토조(Majestoso). 1악장부터 A장조 특유의 투명함과 경건함이 배인 색감을 현악군을 통해 보여주어 인상적이었는데, 무엇보다도 도입부 없이 느닷없이 시작되는 모르스 부호 같은 1주제 단조 리듬을 부점 느낌 같은 촌스러움 없이 정확한 16분음표의 시퀀스로 구현하는 첫 모습에서부터 이 연주가 엄청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곧 이어 등장하는 단편적인 여러 주제들의 복합적 변화와 폴리리듬의 메카닉적인 진행을 원숙한 필체로 자유롭게 이끌며, 더 나아가 일말의 유머러스함까지를 보여주는 홍석원의 솜씨를 보노라니 마치 거대한 르네상스 시대의 성당 천장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2주제의 어두움과 3주제의 웅장하면서도 격렬한 특성이 잘 살아나 대조를 이루었는데, 브루크너 교향곡에 최적화된 부천필하모닉 현악군을 풍윤하고 찰랑거리면서도 악센트의 정도와 스트레타적인 쾌감을 충분히 요구한 홍석원의 리더쉽이 빛을 발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결과 초반에서 도드라져보인 혼과 목관의 실수들 같은 지엽적인 점은 그다지 중요한 지적 포인트가 아닐 수밖에 없을 정도로 작곡가의 의도와 신선한 브루크너 사운드가 선명하게 청중에게 전달되었다.

부천 필하모닉 (사진제공 = 부천시립예술단)
부천필하모닉 연주 모습 (사진제공=부천시립예술단)

게네랄파우제 없이 모여 있는 각 주제들에서 파생되어 변형된 단편적인 선율이 주는 음향의 반전과 분위기의 환기를 우선적으로 현악의 리듬감과 목관의 음색/음량으로 제시해주어야 하는 이 교향곡에서 홍석원은 고정관념처럼 주어진 베토벤 <교향곡 6번 ‘전원’>을 계승한 ‘밝은’ 측면보다는 7번 교향곡의 웅장함에 가려 ‘그늘진’ 그림자, 즉 표면적인 요소들 뒤에 숨어있는 종교적인 경건함과 탐미적인 엄숙함에 주목했다는 데에서 진정한 브루크네리안이라고 평가하기에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2악장 '아다지오, 지극히 장중하게(Adagio. Sehr feierlich)'에서 홍석원과 부천필하모닉이 보여준 아름다움의 절경이 그러했다. 브루크너 <미사 D단조>의 베네딕투스가 인용된 2악장에서 현악과 오보에, 혼과 금관이 차례로 빚어내는 E장조의 소나타 형식이 주는 ‘작은 아름다움’은 3부 형식에 의한 7, 8번 2악장들의 ‘거대한 아름다움’보다 더 강렬한 섬광을 뿜어냈기 때문이다. 홍석원은 오보에 주도의 낭창적인 1주제부터 경건한 2주제와 장송행진곡 풍의 3주제가 만들어가는 이 천상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방식에 있어서 형식과 음색에서 기인하는 발전적인 느낌보다는 그 자체로 이미 완성되어 있는 압도적인 느낌을 강조하는 듯했다. 혼과 목관의 활약에 힘입어 코다에서 안식처와도 같은 평온함이 부드럽게 귀결되게끔 집요할 정도의 집중력을 부여한 홍석원의 솜씨 덕분에 대위법의 극치를 보여준 5번 2악장에 못지 않은 완벽한 소나타 형식의 극치를 경험할 수 있었다. 클라리넷과 현악합주로 시작하는 3악장 '스케르초, 빠르지 않게, 트리오, 느리게(Scherzo Nicht Schnell Trio Langsam)'는 짧지만 비범한 스케르초로서 세 개의 리듬이 섞여 있다. 홍석원은 역시나 각 파트별 리듬에는 정확성을, 리듬 자체에는 정묘한 뉘앙스와 산뜻한 탄력성을 부여하며 5번 교향곡 1악장 모티브나 느린 랜틀러 모티브 등을 과하지 않은 타격감과 운무적인 동시에 전원적인 느낌을 실어 예상치 못한 세련된 악장으로 만들어냈다.

프리지안 선법에 의한 A단조 주제가 트레몰로 반주로 슬금슬금 시작되어 이게 주제인지 도입부인지 선뜻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는 마지막 악장 피날레 '율동적으로 너무 빠르지 않게(Finale. Bewegt doch nich zu schnell)'. 혼과 트럼펫이 끼어들며 1주제에 단호한 단절을 가하고 이어 등장하는 장조의 코랄풍 2주제와 격렬한 3주제에서는 그 스케일과 음향 세기를 높여가는 등 홍석원과 부천필하모닉은 브루크너 본래의 음향적 에너지가 어떤 수준인가를 작심하고 보여주기 시작했다. 특히 현악의 동일 음형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패시지에서 동일한 뉘앙스의 비브라토와 소스테누토적인 리듬감을 바탕으로 볼륨을 규칙적으로 높여간 뒤 포르티시시모의 클라이막스로 귀결되는 장면이야말로 이번 공연의 백미! 더불어 중간 부분 첼로 멜로디 또한 프레이징이 갈라지지 않게 8분음표를 꾹꾹 누르며 브루크너의 결의가 느껴지게끔 연주하는 모습 또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워낙 조성이 많이 바뀌고 에피소드들도 정신없이 나왔다 들어갔다 해서 이 조각들을 어떻게 모아서 장대한 모자이크화를 만드느냐가 지휘자의 솜씨일진대, 홍석원은 부천필하모닉을 독려하며 모든 파트가 섬세함과 광폭함, 사그러짐과 폭발 모두를 충족시킨 고급스러운 피날레로 이끌었다.

홍석원과 부천 필하모닉 (사진제공 = 부천문화재단)
홍석원과 부천필하모닉 (사진제공=부천시립예술단)

덧붙이자면, 부천아트센터의 완벽한 어쿠스틱 컨디션이 부천필하모닉의 브루크너를 더욱 감동적으로 만든 1등공신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다른 콘서트 홀들에서는 부천만큼 깨끗하고 청량한 고역과 정돈된 악기들의 양감 및 자연스러운 밸런스, 넓은 다이내믹 레인지와 선명한 입체감을 겸비한 브루크너를 경험할 수 없을 것이다. 앞으로 부천필하모닉이 홍석원과의 브루크너 교향곡 연주를 꾸준하게 진행하여 브루크너 전문 악단으로서의 독보적인 위상을 다시 한 번 떨치게 되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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