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요한수난곡과 마가수난곡으로 전하는 감동 – 복음사가 홍민섭을 만나다
[인터뷰] 요한수난곡과 마가수난곡으로 전하는 감동 – 복음사가 홍민섭을 만나다
  • 한혜원 음악칼럼니스트
  • 승인 2024.03.04 14: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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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치히 바흐 페스티벌에서 연주하는 홍민섭 (사진제공=홍민섭)

[더프리뷰=서울] 한혜원 음악칼럼니스트 = 사순절이 시작되었다. 수난곡 시즌이 온 것. 수난곡은 예수가 붙잡혀 십자가에 달리기까지의 고난을 담은 오라토리오 형식의 음악이다.

3월 6일에는 콜레기움 보칼레 서울이 바흐의 <요한수난곡>을, 3월 14일에는 바흐 솔리스텐 서울이 카이저의 <마가수난곡>을 연주한다. 콜레기움 보칼레 서울은 2023년 <마태수난곡>으로 지난 2월 28일 서울문화재단 서울예술상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바흐 솔리스텐 서울이 올리는 라인하르트 카이저의 <마가수난곡>은 국내 초연으로 주목받고 있다. 화제의 두 수난곡 무대에 복음사가로 참여하는 테너 홍민섭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성악을 시작하면서의 여정을 짧게 소개해주세요.

고1 겨울부터 성가대 지휘자 선생님께 성악 레슨을 받고 한양대에 들어갔어요. 신영조 선생님께서 가곡을 전공하는 게 좋겠다 하셔서 가곡을 공부했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최상호 선생님 아래서 가곡·오라토리오 전문사를 수료했습니다. 이후 베를린 국립음대로 유학을 가게 되었고 역시 리트·콘서트 전공 석사, 라이프치히 음대 고음악 최고연주자과정을 마쳤습니다. 2013년부터 리아스 캄머코어 베를린 종신단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는 원래 오랫동안 바로크 음악에 관심이 많았어요. 유학 준비하면서 독일을 오갈 때, 우연히 비올라 다 감바하시는 강효정 선생님과 비행기를 같이 탔는데, 그 분 짐이 너무 많아서 제가 감바를 들고 타게 되었어요. 그때 바로크에 대한 관심을 이야기했더니 “일반 성악 전공을 하면서 바로크를 해도 늦지 않다”고 하셨죠. 그래서 베를린 국립음대에서는 가곡을 전공했고, 합창단에 들어간 이후에야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고음악을 공부했습니다.

콜레기움 보칼레 베를린과 함께 연주한 푸치니의 <메사 디 글로리아> (사진제공=홍민섭)

3월 6일 콜레기움 보칼레 서울과 바흐의 <요한수난곡>, 14일에는 바흐 솔리스텐 서울과 라인하르트 카이저의 <마가수난곡>에서 각각 복음사가를 맡았습니다. 두 작품에 대해 소개해 주시고, 두 작품에서 복음사가를 하면서 차별성을 두시는 점이 있다면?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는 1723년에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교회 음악감독으로 취임했고, 그 다음해인 1724년 수난절에 <요한수난곡>을 초연했습니다. 지난해가 바흐의 라이프치히 토마스 교회 음악감독 봉직 300주년이어서 토마스 교회와 니콜라이 교회에서 정말 많은 바흐 공연들과 축제가 열렸습니다. 유럽 각지에서 연주자들이 왔었지요. 그리고 올해는 <요한수난곡>이 초연된지 300주년이 되는 해라 유럽 전역에서 <요한수난곡>을 올립니다.

지난해 콜레기움 보칼레 서울이 공연한 <마태수난곡>과 비교하자면, 가장 큰 특징은 곡의 중반부에 크게 비중을 둔 합창파트입니다. 빌라도에게 바라바 대신 예수를 못박으라는 군중의 외침, 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의 비난이 드라마틱하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합창을 들으면서 전율을 느낄 거라고 확신합니다.

라인하르트 카이저의 <마가수난곡>은 국내 초연인 만큼 더욱 긴장해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카이저는 바흐보다 10살 가량 많고, 함부르크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음악가입니다. 70여편의 오페라와 4곡의 교회음악을 작곡했는데, 이번에 한국에서 초연되는 <마가수난곡>이 그중 하나입니다. 올해가 카이저 탄생 350년이 되는 해라 유럽에서도 카이저의 곡들이 많이 연주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바흐가 수난곡을 쓰기 전 많은 당대 음악가들의 작품을 보며 연구를 했는데, 그중 특별히 카이저의 <마가수난곡>을 스스로 필사하고 편곡하며, 세 번이나 직접 연주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카이저의 작품이 바흐의 아이디어의 원동력이 된 것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실제로 이 수난곡을 공부하면서 문득문득 비슷하게 들리는 화성들이나 인물에 따른 기악편성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바흐에 익숙하다보니 새로운 화성으로 나가는 게 조금 어렵기도 해서, 공부 진짜 많이 하고 있어요.

복음사가는 그 복음서를 쓴 기록자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요한수난곡>의 복음사가는 요한, <마가수난곡>의 복음사가는 마가입니다. 저는 그 기록자의 입장을 많이 생각합니다. 작곡가도 중요하지만 성경을 쓴 사람의 시각을 재연하려고 노력합니다. 두 수난곡 모두 종교의 유무와 상관없이 거대한 감동을 보장합니다.

벤노 샤흐트너 지휘의  요한수난곡 무대
벤노 샤흐트너 지휘의 <요한수난곡> 무대 (사진제공=홍민섭)

콜레기움 보칼레 서울이 최근 서울문화재단 서울예술상 최우수상을 받았습니다. 콜레기움 보칼레 서울과 오랫동안 인연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콜레기움 보칼레 서울은 2007년 창단된 고음악 합창단체입니다. 저는 콜레기움 보칼레 서울에서 2010년부터 정식 단원으로 2년 정도 활동하다 유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당시는 바흐 솔리스텐 서울 안의 작은 조직이었어요. 바흐 솔리스텐은 성악을 전공한 분들이 계셨고, 이 분들이 솔로라면 콜레기움 보칼레는 합창을 맡는 역할을 했습니다. 정말 연구를 하자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아카데믹한 모임이었습니다. 대부분의 단원들이 합창지휘나 작곡, 음악학 전공자들이었지요. 주로 대학 세미나에 참가했고 공연보다는 마스터 클래스에 특별출연했던 기억이 나는데, 바흐 솔리스텐 서울로부터 독립하고 점차 성악 전공자들이 모여들어 규모가 갖춰지게 되었지요. 2017년부터 LG아트센터에서 바흐의 모테트 전곡을 연주하는 등 전문 공연장에서 연주를 시작했습니다. 제가 단원이었던 시절 기억나는 레퍼토리가 바로 바흐의 모테트 전곡이네요.

이번 무대에 같이 설 소프라노 윤지, 카운터테너 정민호 선생 역시 콜레기움 보칼레 서울 출신입니다. 재작년에 10년 만에 함께 무대에 섰는데 감회가 새롭더라고요. 최근에는 서울 바흐 페스티벌에서 바흐 칸타타, 그리고 지난해 <마태 수난곡>에 불러주셔서 참여했습니다. 콜레기움 보칼레 서울은 김선아 지휘자님의 트레이닝 아래 바흐를 진심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콜레기움 보칼레서울의 2023 <마태수난곡> © Brantist

바흐 솔리스텐 서울과의 만남도 이야기해 주세요.

아, 제가 대학생 때 어느 교회 성가대에 오디션을 보고 솔리스트를 하게 됐어요. 그런데 그 교회 처음 가자마자 지휘자님도 새로 오신 거에요 그때 지휘자로 오신 분이 바로 박승희 선생님이셨어요. 이미 바로크를 공부하려고 마음먹었던 때였고, 선생님의 블로그도 정독하고 있던 때여서 깜짝 놀랐죠.

첫 인사를 하자마자 "선생님 저 바로크에 관심이 많아요" 하고 말씀을 드렸는데, 반가워하시면서 같이 공부해보자고 하셨어요. 그래서 바로크 음악을 연구하는 성악가들의 단체인 바흐 솔리스텐 서울에 객원 단원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바흐 솔리스텐 서울과는 스즈키 마사아키 선생님 지휘로 <b단조 미사>(2011)를 연주했고, 박승희 선생님 지휘로 북스테후데의 <멤브라 예수 노스트리>을 녹음했습니다. <요한수난곡> 연주(2014) 때는 박승희 선생님이 복음사가를 하셨고 제가 아리아를 맡았었어요. 그때는 박승희 선생님이 음악감독, 김선아 선생님이 지휘를 하는 체제였어요. 바흐 솔리스텐 서울은 2005년 창단되었고, 살아있는 시대 연주를 알리는 데 힘써왔습니다. 카이저의 <마가수난곡>은 국내 처음 소개되느니만큼 열심히 준비 중입니다.

 

두 무대 모두 다양한 바로크 악기가 등장할 예정이라고 하는데, 바로크 악기가 있으면 노래할 때도 달라지는 점이 있나요? 더 조심하거나 표현해야 할 부분이 있는지?

두 단체 모두 정격연주를 추구해서 각각 콜레기움 무지쿰 서울과 바흐 솔리스텐 서울 바로크 오케스트라가 연주합니다. 이제는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는 부분인데, 바로크 악기는 415Hz로 연주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모던 악기보다 대략 반음 정도 낮습니다. 그로 인해 성악가들은 음역과 모음의 빛깔도 고려해야 하고, 반음이 낮아지며 가사의 뉘앙스도 달라지는 것을 신경 써야 합니다.

보통 바로크 음악을 정제되고 유려한 음악이라고 일컫는데 제 생각은 그렇지 않습니다. 매우 직설적이고 때로는 거친 음악이라고 여겨지거든요. 매끈하게 만들어진 메탈 현이 아닌, 양의 창자를 꼬아 만든 거친 현, 완벽하게 음정을 구사하는 모던 관악기의 키가 아닌 뚫린 구멍을 직접 손가락으로 막아 내는 바로크 관악기에서 나오는 날 것의 소리들. 그 악기들의 연주에 맞추어 노래하면 역시 생생하고 정직한 소리, 날 것 같은 질감을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두게 됩니다. 며칠 전 바흐 음악의 선구자 톤 쿠프만 선생님을 개인적으로 뵐 기회가 있었는데, 그분께 들은 말씀 또한 제 생각에 확신을 갖게 했습니다.

바흐 솔리스텐 서울 (사진제공=바흐 솔리스텐 서울)

2014년부터 소속하신 리아스 캄머코어 베를린(RIAS Kammerchor Berlin)은 어떤 단체인가요?

RIAS라는 단어에 대한 설명은 2차 세계대전 후 독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독일 패전 후인 1945년부터 1949년까지 연합국인 미·소·영·프가 독일을 분할통치 했는데, 수도 베를린 역시 연합국이 4분하여 통치했습니다. 그때 미국이 베를린 서남쪽 구역을 통치하면서 미국인들이 듣는 라디오 방송국을 만들었는데 이 방송국이 Radio In American Sector 곧 RIAS라는 방송국입니다. 우리나라도 KBS 교향악단이 있듯 방송국 산하에는 음악단체들이 있잖아요? 그래서 1948년 RIAS 합창단과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설립되었어요. 현재는 RIAS는 Deutschland Radio라는 전국방송 라디오 채널이 되었고, 라디오 심포니도 도이치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되었습니다. 합창단은 음반도 많고 RIAS라는 이름의 저작권도 있다 보니 명칭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바로크와 르네상스 음악을 주 레퍼토리로 하고는 있지만 현대음악도 연주하고 있습니다. 35명의 종신 단원이 있고 독일 법은 67세까지 정년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테너는 8명입니다. 교회음악을 많이 연주하다 보니 동료들을 보면 성경을 많이 읽거나 성경의 배경지식도 많아요. 그리고 여기서는 아무래도 제가 독일어가 모국어가 아니다 보니 복음사가보다는 아리아를 맡게 되네요. 오는 11월 23-24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한화클래식 공연을 위해 RIAS 캄머코어가 내한합니다. 베를린 고음악 아카데미와 함께 무대에 설 예정입니다.

 

르네 야콥스나 이반 피셔 등과 협연한 경력이 있는데 기억에 남는 공연이 있다면 이야기해주세요.

르네 야콥스와는 솔로로 연주한 적도 두 번 있지만, RIAS 캄머코어와의 프로젝트가 해마다 두세 번 가량 있어서 기억하는 일들이 참 많아요. 르네 야콥스는 음악에 색채감을 많이 입히신다고 할까, 상당히 회화적인 느낌을 받습니다. 솔리스트들에게 텍스트의 표현 연기를 엄청나게 요구하셔서 솔리스트들의 능력을 최대한 끌어내십니다. 빠른 템포는 더욱 달리고 서정적인 부분은 더 아름답게 만들어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만들어내세요. 리허설에서 말씀을 진짜 많이 하셔서 그런지, 무대 뒤에서는 말씀이 별로 없습니다.

바르셀로나에서 <요한수난곡>을 했을 때 진짜 센세이셔널했어요. 이 작품은 합창이 극적이잖아요. 그러다보니 합창을 더 강조하기 위해 합창단을 앞에 세우고 오케스트라를 뒤에 앉게 했어요. 오케스트라는 앉아서 연주를 하고 합창단은 서 있다 보니,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리허설 때 안 보인다고 아우성을 쳤죠. 그런데 그냥 그렇게 진행했어요. 파격적인 무대였죠. 그 외에 오케스트라를 왼쪽, 합창은 오른쪽으로 나누어 세워서 색다른 입체감을 시도한 적도 있습니다.

이반 피셔 지휘자님은 정말 따뜻한 분입니다. 매우 내향적이시지만 생각을 정말 많이 하세요. 음악은 말할 필요도 없이 훌륭하고요. 예전에 부다페스트에서 사고로 한국인들이 많이 돌아가신 사건이 있었잖아요. 그 직후 이반 피셔 선생님이 내한공연을 하셨는데 본인이 페이스북에 직접 촬영한 영상과 메시지를 올려 한국인들을 위로하셨어요.

콜레기움 보칼레 베를린과 함께 연주한 푸치니의 <메사 디 글로리아> (사진제공=홍민섭)

개인 연주활동도 많으실텐데 인상깊은 무대 이야기 해주세요.

언젠가 포츠담에서 바흐의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를 연주했어요. 그 작품 안에 어려운 테너 아리아가 하나 있거든요. 멜리스마가 많아요. 리허설 후 쉬는 시간에 첼리스트 한 분이 “20-30년 동안 연주해온 곡이지만 이 아리아를 연주할 때마다 멜리스마 신경 쓰느라 재미가 없었는데, 너랑 리허설하고 처음으로 이 곡이 좋아졌다”고 하시는 거에요. 정말 감사했던 기억이에요. 그때 이런 생각을 했어요. 어려운 노래를 화려하게 해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가사를 정말 잘 표현해야겠구나. 예수의 탄생을 보려고 목자들이 달려가며 기쁨에 차 부르는 노래거든요.

 

앞으로의 연주 계획들을 알고 싶습니다.

두 수난곡 연주를 마치면 3월 19일, 국립합창단 민인기 지휘자 취임연주회에서 하이든의 <전쟁 미사> 독창자로 섭니다. 그리고 베를린으로 돌아가 합창단과 <요한수난곡>을 파리와 베를린에서 하고요, 다시 한국으로 날아와 국립합창단과 대구에서 <전쟁미사>를 다시 한 번 연주하고 독일 파울루스키르헤에서 <요한수난곡> 복음사가로 무대에 섭니다.

9월 11일에는 콜레기움 보칼레 서울과 서울 바로크 축제에 참가합니다. 콜레기움 보칼레 재팬의 스즈키 마사아키 지휘로 <b단조 미사>를 연주합니다. 11월에는 한화클래식 무대에 RIAS 캄머코어 공연이 예정되어 있고, 직후 요미우리 오케스트라와 일본 투어에 나섭니다.

희망사항으로는, 제가 가곡을 전공했기 때문에 언젠가는 가곡 리사이틀을 한 번 열어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공부할수록 어려운 게 가곡의 세계 같아요. 그야말로 애증의 장르에요. 준비하면서 때를 기다려 보겠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바로크 오페라에도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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