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경계를 넘어 낯섦을 향해 나아가는 감각의 여정
[공연리뷰] 경계를 넘어 낯섦을 향해 나아가는 감각의 여정
  • 나수진 무용평론가
  • 승인 2024.03.10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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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현대무용단 '카베에'

[더프리뷰=서울] 나수진 무용평론가 = 2023년 4월 국립현대무용단과 안무가 황수현이 미래 지향적 어젠다(agenda)를 담은 작품 <카베에>를 발표했다. 이 두 주체는 창작 역량과 동시대성이라는 저울 위에 자주 오르내린다는 공통점이 있다. 2023년 상반기는 마스크 착용 의무 해지 등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대중의 일상이 정상화 가도에 오르기 시작한 시기로, 이러한 분위기에서 국립극장 레퍼토리 시즌에 정식으로 참여한 국립현대무용단이 내놓은 작품에 무용예술계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팬데믹 이후 변해버린 세계 속에서 국립현대무용단은 2월경 새로운 안목을 가지고 VR 기술융합공연인 <이십삼각삼각>을 기획해 관람 형식의 혁신을 꾀했다. 한편, 안무가 황수현은 퍼포밍과 관람행위 사이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며 새로움과 낯섦을 추구하는 작업자로 이름을 알려왔다. 이러한 두 창작 주체가 <카베에>에서 공간ㆍ감각ㆍ공동체성이라는 세 가지 소재를 중심으로 미래 사회와 무용예술계의 논제를 제시했다. 이들은 무대 위 ‘카베에(caveae)'에서 관객에게 낯선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개개인의 인지 변화와 공동체의 연쇄적 변화 가능성, 무용 공연예술의 미래성을 탐색했다.

공간, 액자식 무대를 깨고 관객을 끌어올리다

<카베에> 제작팀은 이번 무대를 국립극장에서 가장 큰 공간인 해오름극장에 꾸몄다. 특이점은 프로시니엄 극장의 드넓은 객석을 포기하고 관객석에 둘러싸인 원형 무대를 선택했다는 점이다. 컨템퍼러리 무용에서 원형 무대는 더는 낯설지 않은 최근의 추세다. 그럼에도 굳이 프로시니엄 형식의 대극장에서 드넓은 객석을 포기하고 관객석을 무대 위로 끌어올린 점은 관객을 작품 안에 포함함으로써 새로운 경험과 해석의 가능성을 제공하려는 의도를 드러낸다. 국립현대무용단은 이미 가상공간에서 무대와 관람석을 통합하는 혁신을 단행했었다. 이러한 흐름에 역행해 39인이라는 다소 큰 규모의 무용수와 관객을 단순한 물리적 원형 공간 안에 몰아넣은 구성에는 ‘관람 행위의 주체는 여전히 인간이며, 인간의 신체감각과 공동체의 연결성이 변하지 않는다’는 신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황수현이 그동안 퍼포밍과 관람 사이에 작동하는 감각-감정-신체의 관계성에 주목해 왔다는 점과 ‘극장에서 공동의 경험을 함으로써 발견되는 집단의 잠재성’을 이 작품을 통해 보여 주고자 한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국립현대무용단 ‘카베에’ ©박수환
국립현대무용단 ‘카베에’ ©박수환

작품의 타이틀 ‘카베에(caveae)’는 구멍, 동굴, 객석처럼 어둡고 움푹 팬 다수의 공동(空洞, cavity)을 뜻한다. 따라서 <카베에>에서 원형 무대는 어둡고 폐쇄적인 동굴 같은 공간을 상징한다. 음향이나 영상 기술이 전무한 고대의 원형 극장은 몰입에 최적화된 공간이었다. 이처럼 출구가 없는 원형 무대는 관객의 시선을 가두고 고도의 집중과 몰입을 유도하는 ‘움푹 팬 굴’과 같은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말이 카베에의 무대가 집단의식을 강요하는 강압적 공간임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랑시에르는 『해방된 관객』이라는 저서에서 “관객은 배우ㆍ작가ㆍ감독ㆍ무용수ㆍ공연자가 하는 방식으로” “자신 앞에 놓인 시의 요소들로 자신의 시를 짓고” “자신의 방식으로 극을 고쳐 만들어 공연에 참여한다.”라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관객은 “그들에게 주어진 스펙터클에 대해 거리를 갖는 관객인 동시에 능동적 해석자”다. 황수현 또한 관객을 단순히 공연을 ‘보는’ 존재가 아니라 공연이 선사하는 색다른 감각의 경험을 ‘공유’하고 함께 ‘만들어 가는’ 존재로 소개한다. 이 작품의 원형 무대는 군중이 한데 모인 거대한 동굴이자 개개인이 들어앉아 자기만의 방식으로 극을 고치며 공연에 참여하는 작은 동굴이 운집하는 거점인 셈이다. 이처럼 <카베에>의 원형 무대는 무용수와 관객이 완전히 분리되는 기존의 액자식 공연과 일방적 소통 구조를 깨트리고 관객을 능동적 참여자로 끌어올렸다. 또한 이를 통해 무용수들과 관객에게 동굴이라는 공간의 특성과 그 속에 담긴 작품 주제를 일관성 있게 각인하는 효과를 성공적으로 수행해 냈다.

감각, 낯섦과 새로움을 추구하다

황수현은 이미 전작에서 시각 중심의 감각 체계로부터 벗어나 청각ㆍ촉각ㆍ공감각 등 다채로운 감각을 추구해 왔다. 이번 작품에서는 동굴이라는 공간의 다양한 특성을 무대와 프로그램에 투영하고 활용했다. 예를 들면, 관객이 입장하는 순간부터 동굴에 들어서는 듯한 인상을 받을 수 있도록 막이 오르기 전부터 어두운 무대 위에 무용수들을 미리 배치했다. 무용수들은 숲속 바위처럼 삼삼오오 모여 앉아서 입으로 들릴 듯 말듯 새소리나 물이 떨어지는 소리를 낸다. 기계음이 아닌 무용수들이 직접 입으로 내는 생생한 소리와 다소 어두운 공간은 낯설고 스산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국립현대무용단 ‘카베에’ ©박수환
국립현대무용단 ‘카베에’ ©박수환

특별히 동굴을 직접 탐사하며 동굴 속 울림 현상을 경험한 뒤 무용수들의 발성을 공연의 주요 장치로 활용한 점은 <카베에>의 고유한 특질로 자리매김했다. 또한 이러한 시도는 청각과 같은 몸속 감각을 더 깊이 탐구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기존 무용 공연이 음향을 동작의 시녀로 활용했다면, <카베에>에서는 ‘소리’가 오히려 동작 위에 군림하며 움직임을 끌어간다. 즉 소리를 만드느라 벙긋거리는 입, 발성과 함께 벌어지는 가슴, 발성이 길어지면서 더 자주 깜빡이는 눈, 특정 소리의 근원지를 알 수 없어서 혼란스러워하는 눈동자 등이 모두 엄연한 움직임으로서 무용의 신체 범위와 감정의 깊이를 확장한다. 이때 소리가 뻗어나가는 곳을 향해 위아래로 움직이는 무용수의 시선과 고갯짓은 쭉 뻗은 손과 발 이상으로 무대 공간에 입체감을 형성한다.

국립현대무용단 ‘카베에’ ©박수환
국립현대무용단 ‘카베에’ ©박수환
국립현대무용단 ‘카베에’ ©박수환
국립현대무용단 ‘카베에’ ©박수환

특히 무대가 암전된 상태에서 들리는 다양한 소리는 무용수와 관객 모두를 실제 움직임이 아닌 개개인의 내면에서 심상으로 펼쳐지는 상상 속 움직임에 집중시킨다. 즉 황수현이 전작에서 ‘검정감각’이란 개념을 정립해 설명했듯이 시각적 자극이 차단된 암흑 속에서 청각을 바탕으로 미지의 장면을 상상하고, 위치와 공간감을 가늠함으로써 그려내는 무대 위 움직임은 또 다른 감정을 끌어낸다. 여기에 우연히 첨가된 관객의 숨소리와 기침 소리, 옷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는 기획자의 의도를 떠나 완전히 새로운 감각적 흐름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시도는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파괴하고, 무용수와 관객의 이항대립 구조를 넘어 같은 공간 안에서 모두가 해석의 주체이며 새로운 기표를 발화하는 화자의 위치로 전도된다. 이 모든 소리가 극의 일부이며,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부여한다.

이와 함께 촉각은 다른 모든 감각을 고조시키며 관객의 감정을 절정으로 끌어올린다. 무용수 39인이 바닥에서 몸을 끌거나 다른 무용수의 신체에 자기 신체를 접촉하는 장면은 단절과 고독의 시대에 경험하는 절묘한 감정을 끌어내며, 공동체의 연결성 문제를 관객의 눈앞에 드러낸다.

원초적 공동체성, 그 잠재력을 기대하다

공연이 후반부를 향해 갈수록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날짐승이나 들짐승이 보여주는 비교적 평범한 동작부터 동굴 벽을 기어다니는 환형동물이나 연체동물의 꿈틀거림 같은 원초적인 움직임으로 스펙트럼을 넓혀간다. 이는 관객이 공동체적 존재인 인간의 고뇌에 공명하고 전율하게 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특히 후반부에 이르러 무용수 39인이 동굴 속 박쥐 무리나 벌레 떼처럼 얽히고설키는 모습은 바로 곁에서 지켜보는 관중에게 일탈 같은 경험을 제공한다. 탈인간화한 군중은 서로 부대끼며 바닥을 기어다니다가 무언가에 홀린 듯 시선이 향하는 곳으로 나아가기 위해 타인을 짓밟는다. 하지만 인간 덩어리를 박차고 일어서려는 시도는 다른 신체들의 저지로 무산되곤 한다. 또는 이들은 인간 장벽을 만들어 서로 가두거나 갇힘으로써 고립되거나 동화된다. 장벽 외곽에서는 하나 둘 무리를 이탈하는 이들이 생겨난다. 이러한 갈등, 구속, 고립, 이탈로 분주한 무대는 곧 암전되고, 다시 불이 켜진 무대에서 무용수들이 내는 각기 다른 소리는 이윽고 서로 공명하며 화음을 만들어 낸다. 이때부터 무용수 각인은 타인과 마주치면 충돌을 피하려는 듯이 속도를 늦추거나 방향을 바꾼다. 더 나아가 다른 이들과 어깨를 맞추고 나란히 함께 걷고자 하는 이들까지 나타난다. 결국 동굴 속 무리는 나란히 일자 대형을 이룬다. 물론 이러한 군중의 대형은 이윽고 개개인이 각자의 자리에 멈춰 섬으로써 평면이 아닌 입체로 구현된다.

국립현대무용단 ‘카베에’ ©박수환
국립현대무용단 ‘카베에’ ©박수환
국립현대무용단 ‘카베에’ ©박수환
국립현대무용단 ‘카베에’ ©박수환

<카베에>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극장을 공동체가 태동해 살아가는 원초적 동굴, 곧 사회 공간으로 확장해 나간다. 군무와 독무, 빈 곳과 채워진 곳, 공동체와 개인, 연결과 단절, 갈등과 조율 같은 대립 개념은 마치 동굴 천장의 종유석과 바닥의 석순이 맞닿아 하나의 석주를 이루듯이 이항대립을 넘어 화해를 촉구한다.

에리카 피셔-리히테는 일상의 균열을 새로움이 생성되는 지점으로 보았다. 특히 예술은 일상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과 마주함으로써 새롭게 변화할 기회를 제공하며, 개별성의 변화는 곧 공동체의 변화를 이끈다고 보았다. <카베에>는 관객이 이러한 예술의 변화와 생성 능력을 믿고 극장에서 맛본 공동의 경험을 각자의 고유한 특질로 승화시켜 ‘마흔 번째 공연자’가 될 때 공동체의 잠재력이 발휘됨을 암시한다. 이러한 개개인의 작은 변화는 다양한 감각으로 생성되고 소멸하기를 수없이 반복하면서 겹겹이 층을 이루며 쌓여간다. 이에 <카베에>는 공동체의 잠재력을 낯설지만 강렬한 감각으로 일깨우고자 한 것이 아닐까?

결국 <카베에>는 다양한 원초적 감각을 자극하는 무대와 움직임을 구현함으로써 이 시대의 인간과 인간 공동체를 마음껏 감각하게 했다고 본다. 다만 안무가가 말하는 새로운 감각의 출현, 곧 ‘미래의 감각’이 무엇인지 작품 안에서 명확히 구현되지 않은 점은 주제의식 구현의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또한 섬세하고 촘촘한 감각과 조정되고 조율되는 공간감을 전하려는 의도가 오히려 개성이 강하고 기량이 뛰어난 무용수 개개인의 움직임을 묶어두는 결과로 이어진 점 역시 아쉬움으로 남는다. 즉 무용수 개개인의 고유한 개별적 움직임과 이들의 ‘사이’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았는데, 이는 개념무용이 해결해야 할 숙제이므로 장기적인 개선 의지를 지니고 접근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 무대 형식의 변화를 추구할 때는 <카베에>가 국립극장 레퍼토리 시즌에 정식으로 참여한 작업인 만큼 조금 더 과감한 시도로 컨템퍼러리 무용 공연의 역량을 강화할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 이번 작품처럼 공간감을 극대화할수록 주제 의식이 더 명료하게 드러나는 경우라면, 관객석을 무대 주변에 배치할 뿐 아니라 그 층위를 조금 더 높임으로써 동선의 입체감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작품을 의미 측면에서 평가한다면, <카베에>가 3년이라는 시간과 큰 비용을 들여 공연까지 긴 여정을 밟은 데 비해 공연 직후 공동체에 미친 파급력이 현저히 줄어든 점은 재고의 여지가 있다. 관객은 차치하더라도 작품이 공동에서 경험한 새롭고 낯선 감각은 예술계를 뛰어넘어 사회 전반에 구체적 행동으로 구현되어야 한다. 그럴 때라야 비로소 에리카 피셔-리히테가 말한 예술의 힘, 곧 변화와 새로움을 생성하는 힘이 효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이 글은 2023년 제 3회 국립극장 젊은공연예술 평론가상 최우수상 수상작이다. <더프리뷰> 2024년 1월 6일자 기사 참조. -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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