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논객의 춤시선-25] 남해안별신굿보존회 이야기
[낭만논객의 춤시선-25] 남해안별신굿보존회 이야기
  • 장승헌 공연기획자
  • 승인 2024.03.21 07: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영혼과 예술의 시간 300분으로도 부족했던 남녘바다, 넋들을 위한 소리
남해안별신굿 (사진=장승헌)

[더프리뷰=서울] 장승헌 공연기획자 = 꽃샘추위가 끝나가던 즈음, 멀리 남도 통영 바다의 굿판이 서울에 사는 우리 모두를 위로하러 상경했다. 지난 3월 9일(토)오후 2시부터 7시까지 무려 다섯 시간동안 진행된 국가무형유산 남해안별신굿( 예능보유자 정영만) 보존회 식구들이 바로 그들이다. 먼저 떠난 넋들을 위한 굿판(제의와 음악과 춤)을 서울 남산국악당 실내외 무대를 오가며 봄꽃을 기다리는 전통예술 애호가들의 마음을 위로하며 펼쳐 놓은 것이다.

이번 공연은 남해안별신굿보존회와 서울남산국악당이 의기투합, 2024년 갑진년의 봄 시즌을 열어준 의미 있는 공동기획이었다. ‘영혼과 예술을 위한 300분’이라는 카피가 ‘심쿵’하게 했다.

공연장 로비가 유난스레 다양한 관객들로 붐볐다. 필자 역시 총총 공연장에 들어서니 이미 남해안별신굿 다큐멘터리 영상이 상영되고 있었다. 이윽고 연주자들이 차례로 자리를 하면서 제1부 ‘부정굿’이 자연스레 시작된다. 이를테면 신을 맞이하기 전, 굿이 펼쳐지는 공간을 정화하며 자리를 밝히는 음악이다. 사회를 맡은 진옥섭(전통예술 기획/연출가)은 이번 기획공연의 소개에 이어 남해안별신굿의 위상에 대해 특유의 말솜씨로 객석의 기대감을 한껏 끌어올렸다.

남해안별신굿 (c)김상봉 (사진제공=(사)남해안별신굿보존회)

남해안별신굿은 경상남도 통영과 거제를 중심으로 남해, 부산, 여수 등 남해안 일대의 도서지역과 내륙지방 곳곳 농어촌 마을을 통해 이어진 공동체 민간문화를 이어가는 공동제의다. 특히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 해안을 중심으로 오랫동안 이어져 온 민간신앙이기도 하다. 그 중 남해안별신굿은 이른바 세습무들이 주관하는 굿으로 현재 예능보유자 정영만 선생(제11대)을 중심으로 12대 세 남매(정석진, 정은주, 정승훈), 이수자(이현호, 이선희)와 함께 타악연주자 황민왕 등 10명이 넘는 전수자 모두가 열과 성을 다하며 남녘 바닷가 통영 무악의 본바탕인 마을굿판을 든든하게 이어 나가고 있다.

본격적 굿판은 ‘길군악’으로 시작되었다. 길군악(또는 행악)은 조선 후기 삼도수군 통제영의 최고수청 및 세악청에서 연주되던 음악이다. 이날 남해안별신굿보존회 회원들의 연주 또한 통영삼현육각 음악 중 하나인 청신길군악을 장중하게 들려주었다. 다음으로 ‘수부시나위’가 이어진다. 기악합주 형식인 이 시나위 음악은 정영만 예능보유자(대사산이)의 징과 구음과 함께 통영피리(정석진) 특유의 음색까지도 잔잔하게 귀를 자극했다. 극장공간을 장악하는 무속음악의 힘이 남다르게 느껴졌다.

다시 촘촘한 진옥섭의 해설에 이어 곧바로 ‘가망굿’이다. 신에게 날씨 피해(폭풍)의 예방과 풍성한 결실과 풍어를 온 마음으로 기원하는 가망굿은 무녀 (승방)들의 비나리 형식의 소리로 이끌어 나갔다. 이어진 ‘지동굿’은 남해안별신굿의 중심이 되는 굿으로 마을을 태동시킨 동태부와 마을 조상들을 위한 굿이다. 어촌의 대소사를 기록해 놓은 문서가 보관되어 있는 지동괘를 합류시켜 마을 최고령 어르신을 굿판에 참여시키는 풍경이 특별하다. 이날 공연에서는 김동진 전 통영시장과 조평규 박사, 박동규 재경통영향우회장 등 여섯 분이 무대 뒤편에 자리해 무게감을 더했다.

1부 마지막은 ‘선왕굿’이다. 팔도명산 선왕들과 해안지역의 선왕 및 어선과 집에서 모시는 선왕까지 모두를 아우르는, 각 가정의 평안과 바다에서의 풍어를 염원하는 굿판인 것이다.

남해안별신굿 (c)김상봉 (사진제공=(사)남해안별신굿보존회)

1부 무대에서는 서울에서 국악전공 예술고와 명문대 무용과를 나왔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남해안별신굿에 입문해 주변을 의아하게 만든 여성 무용가가 있었다. 심민서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녀는 결혼과 출산으로 체형이 변해 새로운 승방(무녀)으로 변신, ‘부정굿’과 ‘선왕굿’ 판을 통해 당당한 아우라와 묵직한 존재감을 과시하는 모습이 필자의 뇌리에 신선한 잔상으로 남아 있다.

2시간 여 굿판이 진행되던 중, 해설자가 관객들에게 남산국악당 야외마당으로 이동해 주기를 청했다. 관객들은 최면에 걸린 듯 삼삼오오 간단한 짐을 챙겨 계단으로, 혹은 엘리베이터로 올라와 잔디마당 작은 간이의자에 속속 다시 자리를 잡는다. 긴 줄로 이어진 한켠에서는 떡과 음료 혹은 통영에서 직접 가져온 막걸리 잔도 보이기 시작했다. 가족소풍 나온 듯한 휴식의 시간이 잠시 흐르고, 제2부 ‘거상놀이’가 자연스레 분위기를 바꿔 놓는다.

남해안별신굿 (사진=장승헌)

해안마을 지성촌에서 비롯된 놀이로, 웃어른에 대한 공경의 마음을 담아 악가무와 함께 자손들이 예식으로 대접하는 놀이다. 오랜 우리네 노인공경, 마음 따뜻해지는 시간으로의 회귀이다. 남해안별신굿 출연자 전원이 큰 절을 올리고 연주와 소리로 보다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며 ‘들상’ 혹은 ‘자호밥상’으로 불리는 떡과 과일, 음료를 대접해 드리는 막간 여유로운 자리이다. 거상놀이를 할 때 연행자는 권주가를 부르고 무녀들이 ‘승방무’를 추거나 통영신청의 기생들이 '통영진춤‘을 추기도 한다. 권번춤으로 불리는 이 통영진춤은 부산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한국무용가 하선주(남해안별신굿 전수자) 씨가 단아한 권번춤의 오래된 옛 법도에 따라 추어보였다. 목에 두른 흰색 목도리가 어느 순간 살풀이 수건으로 흩날리는 가운데, 액운을 털어내는 단아한 춤사위를 통해 한 순간 봄날 오후 우리춤 속으로 - 자리한 관객들의 마음을 봄꽃으로 화사하게 물들여 놓는다. 정영만 선생은 선 채로 구음형식의 춤 장단을 읇조리고 있어 가무일체의 좋은 선례를 보여주기도 했다.

사회자의 깜짝 제안으로 즉석에서 판소리 명인 채수정(한예종 전통예술원 교수) 님이 검정 연습복 차림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한옥 무대로 나섰다. 며칠 후 있을 국립극장 ’완창 판소리-흥보가‘ 공연 연습으로 목이 많이 잠겨 있노라며 짧은 무속음악과 흥겨운 민요로 자리한 많은 관객들에게 귀 호강을 시켜 주기도 했다. 한시간 여 진행된 ’거상놀이‘가 훈훈하게 갈무리되었다. 이제 다시 지하 공연장으로 이동해 본격적인 제3부 굿판으로 이어지는 강행군임에도, 객석에 200여 관객이 다시 제 자리를 잡았다. 참으로 대단한 열정들이 아닐 수 없다.

남해안별신굿 (사진=장승헌)

3부 첫 무대는 제12대 세습무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고 있는 차세대 대사산이(연주자)와 승방(무녀) 세 남매의 무대로 문을 열었다. 정석진(산이), 정은주(승방), 정승훈(산이)이 각자 삼각구도를 만들어 ‘말미’라는 무속음악을 통해 세습무의 정체성과 연결성에 대한 고민을 담아 객석을 먹먹하게 만들어 놓는다. 이어서 네 무녀가 등장하는 ‘원혼굿’. 새하얀 가로로 길게 두 무녀가 양편에 서서 양손에 힘주어 천을 들고 있으면 한지로 만든 작은 돛배 모양의 배를 이리저리 밀며 큰 무녀(이선희 이수자)가 구슬픈 만가를 부른다. 객석에서 하나 둘 씩 무대로 올라가 구복을 기원하고 지전들을 얹으며 먼저 떠난 망자들의 위무와 천도를 함께 기원하는 풍경이 이어진다. 남도 시나위에 근간을 둔 산조 연주가락을 통해 저마다 연주 개인기를 보여 준 ‘굿산조’가 신선하게 다가왔다.

한편, 나라를 위해 희생한 군사들의 넋을 위로하고 달래는 ‘군웅굿’. 아울러 죽은 넋들의 천도를 비는 ‘시왕탄일’. 해금 연주만 하던 정은주 무녀(승방)가 스스로 풀어나가는 ‘대신풀이’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다시 영상에는 지난 선조들의 얼굴 모습과 오랜 기억 속 섬마을 사람들의 흑백사진들이 각인된다. 숙연해지는 것은 자연스런 일.

마지막으로 해설자 진옥섭이 마이크를 잡고 아이고 힘들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공연 시작 전부터 무대 상단에 매달려 있던 용선의 의미를 재해석, 갑진년 모두의 근심 걱정을 털고 희망과 화해의 손을 잡으라는 덕담과 노잣돈이 필요함을 언급하면서 용선춤과 명인 정영만 선생을 호출한다. 꽹과리를 손에 들고 용선과 대화를 나누며 무거운 굿판 분위기를 일순간 유머와 해학으로 이끄는 내공이 실로 어마무시하다. 이윽고 용선이 움직이자 이를 이끄는 무녀(하선주)의 부채와 원색의 무복과 관, 그리고 춤이 절묘한 조합을 이룬다. 이날 공연 중 가장 화려한 풍경이 아닐 수가 없다. 너울거리며 춤을 추는 용선(고연세)을 향해 다시 객석의 많은 이들이 저마다 구복과 천도, 그리고 이 굿판의 대미를 장식하는 수고와 안녕, 구복신앙의 전형을 진심어린 마음으로 화답하는 모습들이 경건하고 아름답다.

장장 다섯 시간, 300분의 긴 굿판이 갈무리되는 가운데, 굿이 끝나고 잡신을 대접하는 굿거리 ‘시석‘으로 굿상에 차려진 제수음식(과일, 떡 등)을 관객들에게 하나 둘씩 무녀들이 나눠주면서 마을굿이 종료되기에 이른다. 정영만 예능보유자의 감사 인사와 함께 관객들을 향해 19명 전 출연진이 큰 절을 올린다. 갑자기 눈가가 시려졌다.

남해안별신굿 (c)김상봉 (사진제공=(사)남해안별신굿보존회)

경상남도 통영, 거제, 고성지역에는 섬이 많다. 작은 고기잡이배를 몰고 나가 먹거리를 구해 가족의 생계를 영위하던 무명의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3박4일, 혹은 1박2일씩 밤을 꼬박 새며 이어지는 이 국가무형유산 <남해안별신굿>의 일과였다. 이제는 지역축제인 한산대첩제나 연중 한 두 번 하는 마을굿, 그리고 서울에서는 무형문화재 공개행사를 통해 굿의 일부를 공연 형식으로 극장 공간에서 전해주고 있는 현실이다. 섬과 섬을 오가며 수 백년을 이어 온 12대 ‘세습무업’은 과연 시간이 흐르면 또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는지... 그리고 남해안 바닷가 사람들의 기원으로 엮은 씨줄과 날줄로 촘촘이 엮어 성긴 그물망을 생존의 업으로 살고 있는 어촌 사람들의 해원의 마음을 담은 소리와 장단, 그 억겁의 시간들 속에 이제 우리는 무엇을 향해 일상을 살아가야 할지.

국가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 정영만 선생이 직접 사인해 준 음반 <넋 노래>의 표지 얼굴에 담긴 11대 세습무의 아린 표정을 다시 들여다본다. 2024년 3월 9일 저녁, 각자 나름의 현실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그리 편안하지만은 않았던 신묘한(?) 저녁이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