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뮤지컬 ‘파과’ - 60대 여성킬러 이야기
[공연리뷰] 뮤지컬 ‘파과’ - 60대 여성킬러 이야기
  • 더프리뷰
  • 승인 2024.03.25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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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3.21. - 5.26.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파과 공연 모습 (사진제공=PAGE1)
'파과' 공연 모습 (사진제공=PAGE1)

[더프리뷰=서울] 유희성 공연칼럼니스트 = <파과>는 구병모 작가의 동명 장편소설을 모티브로 뮤지컬로 거듭났다.

‘파과’는 짧은 시간 빛나다 사라질,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뜨거운 찬사다. ‘파과’는 부서진 과일, 즉 흠집 난 과실이자 16세 이팔청춘, 즉 가장 빛나는 시절을 뜻한다.

누구라도 애초의 신선하고 상큼한 상태에서 어느덧 깨지고 상하고 부서져 사라져버리는 ‘파과(破瓜)'임을 받아들일 때, 불공평하고 불합리하게 주어진 모든 실패와 상실마저도 기꺼이 수긍하며, 그럼에도 살아내리라 의연하게 받아들이고 결국 살아낼 때, 비로소 파과의 순간이 찾아온다.

60대 여성 킬러 ‘조각’. 한때 ‘손톱’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던 독특한 캐릭터를 통한 여성 서사.

근 40년간 날카롭고 냉혹한 청부살인을 업으로 삼아 빈틈없고 깔끔한 마무리로 방역작업을 해 왔지만, 이제는 몸과 기억도 예전 같지 않게 삐걱거리며 어느새 퇴물 취급을 받기도 한다.

자신도 모르게 차츰차츰 받아들이는 노화와 쇠잔의 과정을 겪으며, 지켜야 할 건 만들지 말자 했던 조각의 마음 속에, 어느새 지키고 싶은 것들이 다시 하나 둘 씩 생겨난다. 늙은 개를 데려다 키우는가 하면, 타인의 눈과 목소리에서 연민과 공허, 그 이후 이어질 예후까지, 오래전 사라져 버렸던 온기에 대한 그리움까지... 우매한 삶이 애석하기만 하다.

파과 공연 모습 (사진제공=PAGE1)
'파과' - 조각 차지연, 투우 신성록 (사진제공=PAGE1)

철부지 어린 소녀가 생소하기만 한 절망의 끝에서 겪는, 사랑인지도 모르면서 그저 좋기만 했던 감정.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그를 향한 따스함과 동경이 살아있음의 전부인 양, 그저 숙명처럼 매 순간 몸과 마음이 한곳을 향한 해바라기가 되었고, 세월이 한없이 흘러도 어디서든 그에 대한 회상만으로도 존재의 이유를 찾고, 그 기억만으로도 오롯이 살아갈 수 있는, 처절하고 지독하게 일그러진 '조각'의 한없이 고독한 일생을 만나게 된다.

이러한 캐릭터에 마치 빙의라도 된 듯 무대에 꼿꼿하고 애처롭게, 더러는 흠칫하고 서늘한 놀라움과 과격한 액션으로 깜짝 놀랄 모습으로, 언제나 그랬듯이 출중한 가창력과 캐릭터에 혼연일체된 차지연 배우만의 아우라를 만난 것만으로도 이 작품으로 감동 받기에 충분했다.

어린 조각 역 류주혜 배우의 민첩한 액션과 호소력있는 가창력, 성인이 된 조각 역 차지연 배우의 음색의 합과 음악적 블렌딩은 빼어나게 아름다웠다.

또한 전혀 다른 환경과 상태에서 증오와 복수, 연민과 회한으로 얼룩져 또 다르게 뭉개지고 일그러진, 어쩌면 그것마저 사랑일지도 모를 투우 역으로 또 다른 방역의 삶을 연기한 노윤 배우. 일찌감치 뮤지컬 <곤투모로우>에서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노련하고 완숙한 가창력으로 차세대 대극장 뮤지컬의 중심에 있게 될 거라는 예견은 이 작품에서도 유효했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나타날 수 있는, 마치 신비로운 환영처럼 마음을 훔치고는 어느새 사라진 별빛 같은 운명의 남자 류와 강박사 역 지현준 배우의 믿고 보는 마성의 보이스와 명료한 딕션의 출중함은 이 작품에서도 빛이 났고, 속물근성이라기보다는 세상의 이치를 꿰뚫고 사는 해우 역의 독보적 전천후 팔방미인 김태한 배우, 그리고 이들과 더불어 세상의 모든 인간군상이자 방관자, 협조자 등으로 작품의 모세혈관같은 역할을 하는 깨알 에너지들인 코러스역 배우들은 최고의 뮤지컬 앙상블을 구현해 냈다.

음악은 캐릭터들의 심리상태를 반영한 정서를 묻혀내며, 읖조린 듯 말하고, 이윽고 열창까지 이끌어 낸 뮤지컬 넘버들의 향연이었다. 무엇보다도 작품의 전환용 브릿지가 아닌 인물의 상태나 사건의 연결이 물 흐르듯이 매끄럽고 다음 장면과 연결되거나 겹치며, 변화의 느슨한 연결과 더불어 때로는 빠른 변환을 구축하는 데 효율적으로 열일했다.

'파과' 공연 장면 (사진제공=PAGE1)

이나영은 음악감독을 맡아 대부분의 넘버를 작곡했고 작곡가 정재일, 우디박의 음악과 더불어 드라마와 작품의 이미지를 풍성하고 확연하게 구축해 냈다.

무엇보다도, MR를 활용하거나 합창 녹음까지 동반하는 프러덕션에 비해, 오롯이 라이브 음악을 통한 현장감이 돋보였다. 여기에 배우들과 드라마의 상태를 이입한 김필수 음향 디자이너가 가세해 현장성 넘치는 무대음악의 정수를 완성해 냈으며, 더더욱이나 가창의 전달력을 참으로 매끄럽게 구현해 냈다.

김소희 안무자는 드라마에 적합한 안무로, 또는 춤만으로도 충분히 드라마의 정서와 상태를 표출했다. 집단과 개인의 움직임을 통한 에너지 표출과 기호화된 움직임이 드라마를 이끌거나 동화하면서 적합한 에너지를 넘쳐나게 했다. 거기에 서정주 무술감독의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의 파격적이고 격한 움직임과 동선, 배우들의 몸을 사리지 않는 과감한 무술동작의 실행으로 한국판 액션 누아르 완결판 뮤지컬로 우뚝 서게 했다.

과거와 현재, 그 이후의 삶과 환경까지 드러내 유추할 수 있게 하는 박은혜 무대디자이너의 무대구조와, 다양한 바톤을 활용한 효율적인 공간구성, 그리고 뮤지컬 <데빌>에서 엄청난 양의 무빙을 통해 입체적인 빛의 라인을 통한 새로운 시선과 공간을 구현한 조명 디자인으로 한동안 화두가 되었던 원유섭 조명디자이너의 레이저를 활용한 또 다른 획기적인 모험으로 확연히 기존 무대와의 차별성이 느껴졌다.

거기에 참신하고 창의적인 발상과 실행, 더러 부분적이지만 효율적인 판타지를 구현한 한지원 영상디자이너까지 합세해, 이 작품만의 무대 미장센의 미덕을 일구어 내기까지 조율과 협업을 이끌어 내며,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진화하고 진취적인 작품의 완성도를 실현한 이지나 연출의 내공과 실행이 돋보인다.

무엇보다도, 초연임에도 불구하고 배우와 스태프들의 합과 완성도를 이끌어 낸 페이지 1의 이성일 대표와 프러덕션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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