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겸허히, 묵묵히 음악 앞에 섭니다" – 바리톤 최인식
[인터뷰] "겸허히, 묵묵히 음악 앞에 섭니다" – 바리톤 최인식
  • 한혜원 음악칼럼니스트
  • 승인 2024.03.29 10: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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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클라이맥스 공연 (사진제공=아트앤아티스트)

[더프리뷰=서울] 한혜원 음악칼럼니스트 = 지난 2월 25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아트앤아티스트 소속 성악가들의 갈라 콘서트 <오페라 클라이맥스 2024>가 열렸다. 국내 뿐만 아니라 세계 무대에서도 활약하는 성악가들을 최다 보유하고 있는 아트앤아티스트의 연주자들 – 베이스바리톤 사무엘 윤, 소프라노 캐슬린 김·이명주, 테너 정호윤·김민석, 바리톤 김기훈·최인식 – 이 <토스카> <리골레토> <파우스트> <라 트라비아타>의 명 아리아들을 노래했다.

대부분 국내 무대에서 자주 보아온 성악가들이었으나 단 한 사람, 바리톤 최인식은 생소한 이름이었다. <리골레토>의 ‘가신들, 이 천벌을 받을 놈들’과 <파우스트>의 발랑탱의 아리아 ‘떠나기 전에’를 불렀는데, 매우 풍성한 음색에 두 캐릭터에 대한 표현력이 뛰어나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2023년 빈체로 국제 콩쿠르 우승자이자 오는 5월 국립오페라단 <죽음의 도시> 프랑크로 국내 오페라 무대에 데뷔 예정인 바리톤 최인식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빈체로 콩쿠르 (사진제공=최인식)

아직 바리톤 최인식을 모르는 분들에게 성악을 시작한 이후의 약력을 소개해주십시오.

간단히 학력과 수상 경력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부산예고 졸업, 연세대학교 성악과 수석 졸업, 쾰른음대 석사 및 최고연주자 과정 역시 최고점으로 수석 졸업했습니다. 2018년 테네리페 국제 콩쿠르 3등과 청중상을 받았고, 2020년 비냐스 국제 콩쿠르에서도 3등과 청중상, 그리고 마드리드 극장 초청연주 기회를 받았습니다. 2023년 12월 베로나에서 열린 빈체로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했고 청중상도 받았습니다.

빈체로 국제 콩쿠르 우승 축하드립니다. 그런데 콩쿠르마다 청중상을 받으셨네요.

네, 주로 3등과 청중상을 함께 받다보니 빈체로 콩쿠르 때도 청중상을 받고 나서 3등하고 끝나나 보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3등, 2등에서 이름이 불리지 않으니 초조해지더라고요. 그러다 생각지도 못하게 우승을 하게 되어 너무너무 기뻤습니다.

빈체로 콩쿠르 (사진제공=최인식)

빈체로 국제 콩쿠르는 지금까지 3회 개최된 신생 콩쿠르인데 어떤 콩쿠르인지 알려주세요.

지난 제 3회 빈체로 콩쿠르는 오페라와 영화 연출계의 거장 프랑코 제피렐리에게 헌정하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베로나가 로미오와 줄리엣의 고장이기도 하지요. 700명 이상의 성악가들이 도전했고 정상급 콩쿠르로 성장해가고 있는 단계입니다. 2021년 빈체로 콩쿠르 초대 우승자가 테너 백석종 님입니다. 요즘 아주 핫한 테너시죠.

심사위원들로는 로열오페라 캐스팅디렉터 피터 마리오 카토나, 로시니 오페라 페스티벌 예술감독 에르네스토 팔라시오를 비롯해 빈 슈타츠오퍼, 달라스 오페라, 시카고 오페라 등의 디렉터들이 오셨어요.

와, 실제로 수상자들이 많이 캐스팅되나요? 현장 분위기는 어땠나요?

저도 기대에 부풀었었는데 엄청나게 제안 받지는 않았구요. 현재 스페인의 한 극장과 <루이자 밀러> 캐스팅 이야기가 진행 중입니다.

현장 분위기는 사실 장난 아니었습니다. 보시다시피 수상자들이 전부 남성이어서 서로 견제가 심했어요. 준우승한 이탈리아 친구는 콩쿠르 진행 중에 저와 말도 안 하려 하더라고요.

저는 우승 예감은 전혀 못 했습니다. 뭔가 잘되고 있다고 생각하면 흥분해서 오버하게 될까봐, 아예 스스로 최면을 걸었습니다. ‘나는 이미 우승했다, 지금 나는 앙코르 무대에 서 있다.’ 그래야 여유로운 연주를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Carmen WA 2021.22 İ Hans-Jörg Michel (사진제공=최인식)

연세대 수석 졸업이라고 하셨는데, 바리톤 김기훈 님도 프로필에 연세대 수석 졸업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기훈이가 한 학년 후배입니다. 기훈이와는 같은 김관동 교수님 제자라 아주 친합니다. 제가 전 학년 전체 수석을 하다 군대를 다녀왔더니 기훈이가 전체 수석을 차지한 적도 있지요. 배울 점도 많고 제가 아끼는 후배입니다.

김관동 교수님은 월드 클래스 제자들 덕에 흐뭇하시겠어요.

선생님은 늘 음악을 대하는 태도를 강조하셨어요. 학생 때는 이해를 잘 못 했지만 지금은 그 말씀 덕에 제가 이만큼 성장했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이 원래 표현을 많이 하시는 편이 아닌데, 요즘에는 가끔씩 자랑스럽다고 해주시고 표현을 해주세요. 독일에 홀로 나와 있는 입장에서 선생님의 말씀이 굉장히 힘이 되고 행복해요. 물론 미친 듯이 잘하고 있는 기훈이도 있지만, 제게도 열심히 하라고 늘 격려해주시지요.

본인이 노래를 잘한다는 것을 언제 알게 되었나요?

저는 중학교 시절 축제 때 학교의 가수였어요. 물론 가요를 불렀고요. 그러다 인문계 고등학교를 갔더니 입시 위주의 시스템이 숨 막히더라고요. 그래서 혼자 실용음악학원에 등록해 버렸어요.

그런데 어머니께서 “가수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너는 생긴 게 안 어울려서 어렵다.”면서 수강료를 환불받아 바로 성악 선생님께 데리고 가셨어요.

클래식에 무지한 상태에서 성악을 시작하게 되었지만 진지하게 노력했고, 고교 자퇴 후 예고에 재입학했죠. 신기하게도 성악 발성을 배우고 나니 가요가 잘 안 불러지더군요.

Manon 2017.18 Bernd Uhlig
Manon 2017.18 Bernd Uhlig (사진제공=최인식)

가요를 잘 부르셨는데 크로스오버의 유혹은 없었나요?

솔직히 코로나 시기에 그런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닙니다. 타국에서 공연도 없는데 외롭기도 했고요. 그러나 아직 이루지 못한 것들이 많은 상태에서 크로스오버를 시작했다가는 제가 준비했던 것들을 보여줄 기회가 줄어들 것 같아서 과감히 포기했습니다.

쾰른 오페라 극장 솔리스트이신데, 쾰른 오페라 극장과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셨나요?

제가 사무엘 윤 마스터 클래스 1기생입니다. 사무엘 윤 선생님이 쾰른 오페라 극장에 계실 때, 이 마스터 클래스를 통해 인터내셔널 오페라 스튜디오와 계약을 하게 됐어요. 저를 뽑아주신 데 대한 책임감으로 열심히 했더니 계약을 재연장하게 되었고, <라 보엠>의 마르첼로로 무대에 서게 되었어요. 스튜디오 출신들에게는 보통 큰 배역을 주지 않는데 가능성을 보려고 발탁하신 것 같습니다. 이 공연을 보고 극장장이 인정해주셔서 자연스럽게 쾰른 오페라 극장에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자신 있는 레퍼토리가 있나요?

제가 가장 사랑하는 오페라는 <라 보엠>이에요. ‘청춘’이라는 단어에 제가 열광하거든요. 막이 올라갈 때 ‘따단딴딴’하는 오케스트라 소리를 들으면 막 가슴이 뛰어요. 예술가의 희노애락을 담은 작품이기도 해서 더 애틋합니다. 제 소원은 크레펠트 묀헨글라트바흐 극장에서 일하고 있는 테너 친구 이웅이와 한국에서 <라 보엠>을 같이 공연하는 거에요.

그리고 쾰른에서 <가면무도회>를 준비 중인데, 레나토가 참 매력 있는 캐릭터에요. 배신감으로 분노를 표출하면서 그 분노의 틈에 숨겨진 서정성을 찾아 연구하고 있습니다. 4월 14일에 공연이 시작됩니다.

바리톤 최인식 (사진제공=최인식)

쾰른 오페라 극장은 어떤가요?

저는 이 극장이 너무 좋습니다. 작은 극장의 극장장으로 가는 친구들이 이동하라는 제안도 했지만 거절했어요. 저는 여기서 견디고 싶어요. 좋은 코치들에게 정말 많이 배우고 있어요. 15년 근무하면 종신단원이 됩니다. 2년 전 극장장이 새로 온 이후 변화가 많아져서 외부 활동도 많이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2월에 이탈리아 손드리오에서 <진주조개잡이> 공연을 하고 왔습니다.

도전해보고 싶은 배역이 있다면?

<파우스트>의 발랑탱과 <라 트라비아타>의 제르몽. 코로나 때 준비하다 못 올린 작품들이라, 공부하고 연습하던 때의 감정이 아직 남아 있거든요. 특히 제르몽은 노인 역이라 젊을 때 도전해보고 싶네요. 물론 나이 들어서도 해보고 싶고요. 레나토 브루손이 제르몽을 연기한 음반을 들으면 마치 플랫을 유도하듯 노래하는데 표현이.... 기가 막혀요.

5월 23-26일 국립오페라단의 <죽음의 도시>에서 프랑크를 노래하실 예정입니다. 지난해 해외 오디션에서 발탁되셨다고요.

코른골트의 <죽음의 도시>가 1926년 쾰른에서 초연됐던 작품인데, 또 오는 5월 한국 초연이라 뜻깊습니다. 죽은 아내를 잊지 못하는 남자 파울의 친구, 프랑크를 맡았습니다. 파울을 포함한 캐릭터들이 전체적으로 현실과 꿈, 삶과 죽음, 사랑과 집착을 오락가락하다 보니 제 정신도 좀 힘들어질 지경입니다.

지난해 9월 베를린과 빈에서 프랑크 배역 오디션이 있었습니다. 쾰른과 베를린은 왕복 10시간 거리에요. 저녁에 쾰른 극장에서 공연이 있어서, 새벽 6시 기차를 타고 베를린에 갔다가 오후 2시 오디션을 마치자마자 바로 떠나서 7시 반 공연을 했습니다.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뭔가에 홀린 듯 노래를 부르고 나왔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제가 뽑힐 거라고 상상도 못했는데 정말 감사한 기회를 얻었지요.

오페라 클라이맥스 무대 (사진제공=아트앤아티스트)

한국 무대 진출의 통로로 아트앤아티스트를 선택하셨습니다.

훌륭하신 선생님들이 여러 분 계시고 특히 사무엘 선생님이 계신 이유가 컸습니다. 기훈이는 (웃음) 조금 망설여졌지만, 역시 같이 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기훈이를 옆에 두고 계속 보고 싶어요.

쾰른에서 사무엘 선생님과 무대에 설 때 저는 주로 작은 역할을 맡았었는데, 선생님의 마지막 무대 <카르멘>에서는 같은 배역, 에스카미요를 했습니다. 그때 선생님이 여러 조언을 해주셨는데, 처음으로 동료로서의 대화를 해본 것 같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저를 동료로 대해주시니 기분이 특별해지더라고요.

<오페라 클라이맥스>로 국내 데뷔하신 셈인데 소감 한 마디.

사무엘 윤 선생님과 한 무대에 설 수 있다는 자체로 감사했습니다. 사무엘 선생님은 제게 크게 의미 있는 분이세요. 그분이 아니었으면 제가 독일에 갔을지, 쾰른에서 기회를 얻을 수 있었을지도 알 수 없습니다.

독일로 간 지 9년 만에 한국 무대에서 데뷔를 하니 설레고 떨렸습니다. 가족들도 울산과 부산에서 올라와 축하해 주셨고요. 부끄럽지만 이날 감기로 컨디션이 좋지 않아 스스로를 원망하기도 했는데, 5월 <죽음의 도시>에서 만회해 보려고 합니다.

사무엘 윤 선생님은 쾰른 오페라에서 궁정가수 칭호를 받았는데 최인식 님도 그런 꿈을 꾸십니까?

누구나 그런 꿈을 꾸지만 제게는 닿을 수 없는 곳 같습니다. 그저 초심을 유지하고자 노력합니다. 겸손한 예술가의 자세로 성실히 임하다보면, 어떤 명예로운 위치에 오를 수도 있겠지요. 꼭 해야 한다는 생각은 안 해봤습니다. 전 괜찮습니다. 다 하늘이 하는 거죠.

앞으로의 공연 일정을 알고 싶습니다.

5월 23-26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죽음의 도시>를 공연하고, 6월 24일에는 쾰른 오페라 극장에서 <진주조개잡이> 주르가로 관객들과 만납니다. 이때 오페랄리아 우승자 앤서니 레온과 함께 무대에 섭니다. 그리고 7월에는 빅 이벤트, 제가 한국에서 결혼합니다! 결혼할 친구는 아헨 극장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5월, 국립오페라단 <죽음의 도시>에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바리톤 최인식은 인터뷰이로서 재미있는 인물은 아니었다. 젊은 성악가 특유의 허세도 없고 포부도 나의 기대만큼 크지 않았다. 입담이 좋은 편도 아니었다.

그는 신중했고 겸손했다. 본인이 이룬 바를 운으로 여길 만큼 낙천적이지도 않았으나, 자신의 역량을 자신하지도 않았다. 주어진 기회를 충실히 해내며 인정받아온 이력을 자랑하지도 않았다. 이 우직한 외골수 음악가는 마치 큰 강에 스스로 돌을 놓아가며 건너오고 있는 듯했다. 지름길이라고는 모르는 성실한 이에게 하늘이 감동하여, 고구려 시조 주몽 설화처럼 물고기와 자라를 보내주면 좋겠다고 상상해보았다.

오는 5월 국립오페라단이 올리는 코른골트의 <죽음의 도시>에서 바리톤 최인식의 또 다른 변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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