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무용 다시보기-7] 이미 알고 있는 러브스토리, 하지만 연신 눈길 가는 '사랑가'
[신무용 다시보기-7] 이미 알고 있는 러브스토리, 하지만 연신 눈길 가는 '사랑가'
  • 유화정 무용이론가
  • 승인 2023.06.19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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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프리뷰=서울] 유화정 무용이론가 = 장르를 막론하고 맥없이 춤을 대하는 무용수에게는 박수가 박한 법이다. 특히 한국춤은 가벼움보다는 무거움을, 직선보다는 곡선을 추구하는 덕에 안쪽으로 품어내는 쫀득하고 야무진 춤을 인정한다. 그런데 제법 걸쭉한 춤집을 가진 무용가도 춘향 역을 맡았을 때만큼은 다르게 접근한다. 살짝 어설프더라도 싱그럽고 풋풋한 춤으로 바꾼다는 말이다. 모두가 알고 있는 러브 스토리, 모두가 원하는 이팔청춘(二八靑春) 춘향의 이미지를 깨지 않아야 할 의무를 은연중에 느끼는 걸까. 오랜 세월 고되게 쌓은 춤의 연륜과 개성을 감추고 몽룡과의 완벽한 조화에만 집중할 때, 관객석에서는 탄성이 터진다. 이에 현명한 춘향이들은 과하게 노련한 춤이나, 몽룡을 노골적으로 유혹하는 연기 따위는 삼간다. 무용수로서의 나를 지우고 조선시대 춘향이, 몽룡이로 변신하는 공간. 관객과의 무언(無言)의 약속을 지키는 공간. 이것이 무용작품 <사랑가>의 무대이다.

<사랑가>가 신무용인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신무용이라면 양장을 한 무용가의 매력 넘치는 표정이라든지 서구무용을 적극 받아들인 혼종의 춤을 떠올리는데, 곱게 차려입은 규수와 도령의 겸손한 춤을 보면 신무용보다는 전통춤의 어느 레퍼토리겠거니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사랑가>의 원류는 신무용으로 이름날린 조택원(1907-1976)의 <춘향조곡>(조곡 춘향전, 1941)이며 그 전형을 따르는 계보 역시 신무용 바탕의 무용극을 완성한 송범으로 이어진다. 조택원은 일본의 현대무용가 이시이 바쿠의 문하생으로 춤을 학습한 뒤, 중앙보육학교(유치원 교사 양성학교, 현 중앙대학교의 전신)의 무용교수이자 조택원무용연구소 소장으로 활약하며 인기를 끌었다. 그의 삶과 춤은 격변하던 근대사회를 닮아 파란만장(波瀾萬丈) 그 자체였다. 뱃삯 달랑 들고 유학을 떠난 것은 물론 유럽, 미국, 일본, 한국을 1년 단위로 이동하며 생활하고, 두 번의 이혼과 세 번의 결혼을 단행하며, 일거수 일투족이 신문에 오르내리는 가십 속 인물이었다. 그가 <춘향조곡>에 대한 영감을 떠올린 곳은 프랑스 파리에서 1여년을 거주하고 귀국하던 뱃길이다. 발레 <빈사의 백조> <로미오와 줄리엣>에 대적할 수 있는 우리 춤을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에 전통설화인 춘향전을 모티브로 발레의 파드되 (pas de deux) 양식에 한국 전통의 춤사위를 적용했다. 그리고 1941년 1월 11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조택원 무용공연에서 <학>과 <춘향조곡>이 초연되었다.

조택원은 당시 전 4막의 초대형 무용극 <학>을 무대에 올리는 데 전력을 다했고, <춘향조곡>은 그에 수반하는 소품(小品)에 불과했으나 인기는 <학>을 크게 넘어섰다. 이에 대해 조택원은 “그처럼 심혈을 기울이고 엄청난 정력과 시간을 쏟은 <학>이 실패하고, 학에 비하면 몇 갑절 쉽게 된 <춘향조곡>이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은 정말 기이한 일이다. 이처럼 예술작품이란 반드시 무겁게, 어렵게 제작됐다고 해서 훌륭한 작품이 되고, 쉽게 만들어졌다고 해서 졸작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는 여기서 체험으로 알게 되었다."라고 심경을 토로했다.

<춘향조곡>의 구성은 '방자표표, 춘향난만, 몽룡춘흥, 광한루애가, 춘향수난, 재회장환'의 6부작이었으며 이 중 광한루에서 사랑의 감정을 느낀 춘향과 몽룡의 사랑춤, ‘광한루애가'가 <사랑가>의 원형이 되었다. 초연 당시 춘향 역할의 무용수는 일본인 이가기 하스에였는데 한국의 전통 옷을 입어본 적이 없었던 그는 옷에 몸을 붙이기 위해 6개월간 밤낮으로 입고 생활했다고 한다. 이후 '광한루애가'는 인기에 힘입어 미국, 유럽, 일본 등에서 여러 차례 공연되었으며 그 때마다 춘향 역할은 조용자, 김민자, 김경희, 이석예, 박외선, 엘로에이스 오로소(Eloeis Oroso) 등 국적을 가리지 않고 당대 최고의 무용수들이 도맡았다. 조택원이 몽룡 역할을 고정적으로 담당하고 상대 무용수만을 계속 바꾼 것은 당시 중견급 기량을 갖춘 여성 무용수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각 무용수의 개인적인 상황 역시 복잡하다보니, 긴 시간 안정적으로 춘향 역할을 담당할 사람을 찾기 어려웠다는 이유를 들 수 있다. 해방 후까지 권번에서 춤을 학습하고 전문예인으로서 활동하던 기생들이 각지에 있었지만 이들은 고등교육과 외국무용을 수혜한 신무용 기반의 여성 무용가와는 전혀 다른 문화적 범주에 있어 상대 무용수로 고려되지 못했다.

조택원의 춘향조곡 (연낙재 소장)
조택원의 '춘향조곡' (연낙재 소장)

<춘향조곡>의 원본 영상은 현재 두 가지 버전으로 공개되어 있는데 1956년 일본에서 촬영된 공연의 영상과 1947년 주한 미국공보원에서 제작한 영화 <한국 농촌생활(Korean Farm Life)>다. 후자의 영상을 참고하면 몽룡(조택원)은 푸른 쾌자에 복건을 둘러쓰고, 춘향은 연둣빛 저고리에 붉은 치마를 입었다. 음악은 가야금과 장고로 연주한 <천안삼거리> 편곡으로 보이며 본래 민요의 속도보다 세 배 이상 빠르고 장단도 굿거리가 아닌 자진모리다. 몽룡과 춘향은 창덕궁 후원의 연못을 배경으로 정자 위에 나란히 서서 서로를 향해 가볍게 목례하며 춤을 시작한다. 춤의 특징은 단연 어깻짓과 성큼걸음에 있고, 몽룡의 호쾌한 시선이 춘향의 단아한 표정을 만나 조화를 이룬다. 둘은 한 바퀴 휘 돌아 마주보고 같은 동작을 반대 방향으로 춘다. 또 성큼걸음(뒷발의 힘을 이용해 살짝 뛰듯이 걷는 방식)으로 좌우새하며 앞뒤로 걷다가 춘향이 손으로 머리를 휘감으며 돌면 몽룡이 따라가고, 몽룡이 휘감으며 돌면 춘향이 따라간다. 동작의 수가 많지는 않으나 두 무용수가 서로를 밀고 당기는 듯 은근한 속도의 춤으로 흐르다가 불현듯 바람처럼 돌아서며 맺는 식의 긴장감 있는 안무 구성이 돋보인다.

이후 <춘향조곡>의 서사 및 움직임 구성은 송범의 <연가>(1968)로 그 맥이 연결된다. 조택원무용연구소, 장추화무용연구소에서 현대무용, 발레, 남방무용, 한국 민속무용 등을 폭넓게 학습한 송범은 모던 발레의 기교와 클래식 발레의 형식을 활용하여 한국적인 무용극을 만들고자 했다. <연가>는 판소리 <춘향가> 중 사랑가 대목을 무용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1969년 멕시코 올림픽의 세계민속예술대전에 진출하기 위한 한국민속예술단의 레퍼토리로 선정, 초연되었다. 송범이 몽룡을, 김문숙이 춘향을 맡았으며 몽룡은 옥색 도포에 남색 쾌자를, 춘향은 연두저고리에 다홍치마를 입었다. 작품의 소재와 연출 면에서 조택원의 <춘향조곡>과 유사성이 많으나 한층 성숙해진 한국 무용수들의 기량이 구체적이고 다채로운 감정선을 만나 발전된 결과를 보였다. 송범은 이후 국립무용단 단장을 맡아 <별의 전설>(1973), <도미부인>(1984) 등 대형 무용극의 표현양식을 국공립무용단의 주요 레퍼토리로 고정시키는 데 역할했다. 1977년 2월에는 무용극 형식으로 재안무된 <춘향전>이 국립극장 대극장에서 사흘간 공연되기도 했다. 이 때는 춘향과 몽룡의 만남으로 시작되었던 전통적 구조가 전복되어 사또와 춘향의 대면이 도입부에 삽입되고 춘향이 회상하는 몽룡과의 사랑 이야기로 전개되었다.

송범, 김문숙의 사랑가 (사진 촬영: 정범태, 출처: 구희서 정범태, 한국의 명무, 한국일보사, 1985. 426p)
송범-김문숙의 '사랑가' (사진 정범태)
출처=구희서-정범태 '한국의 명무'(1985), 한국일보사, p.426

국립무용단, 서울시무용단, 경기도립무용단 등은 현재까지도 무용극 형식의 레퍼토리를 정기적으로 발표하고 있는데 ‘기-승-전-결'의 구조 안에서 주인공이 겪는 기쁨, 슬픔, 분노, 회한 등의 감정을 춤의 다양한 질감으로 표현하고, 보다 구체적인 표현은 마임과 제스처를 사용한다. 또 작품의 줄거리와 인물 설정에 관계 없이 젊은 남녀의 사랑 관계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며 이들의 이인무가 전체 작품의 하이라이트로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특징이 있다. 이에 조택원으로부터 영향받은 송범의 <연가>는 한국춤 기반의 남녀 이인무가 무용단의 무용극 레퍼토리로 전유되는 과정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정서에 대한 은유와 암시에 주목했던 무용시(舞踊詩)적 작품이 드라마의 특질을 강하게 입고, 대형 무용극의 흐름을 좌우하는 남녀 무용수의 감정구조로 확장된 것이다.

한편 현재 전국 각지에서 사랑받는 무용작품 <사랑가>는 송범과 한영숙의 춤을 계승한 정재만의 재창작 작품이다. 1976년 초연되었으며 정재만이 몽룡을, 김현자가 춘향을 맡았다. 조택원과 송범의 작품이 진양, 중모리, 중중모리, 굿거리, 자진모리 등의 장단을 중심으로 기악곡을 활용했다면 정재만의 작품은 판소리의 <사랑가> 대목을 활용하여 보다 명료한 색채의 분위기를 연출한다. 판소리는 신무용이 급격히 쇠락했던 시점에 우리 민족의 전통문화유산으로 인정받아 활개를 폈던 장르인데, 신무용으로부터 출발한 <사랑가>에서 이를 음악으로 사용함으로써 전에 없던 특별한 미감을 갖게 되었다. 또 조택원의 <춘향조곡>은 부채나 소매를 빠르게 돌리고 어깨를 위아래로 강하게 떨구는 등 경쾌하고 재치있는 표현을 통해 신무용의 동작적 특징을 직접적으로 드러낸 반면, 송범에 이어 정재만으로 계보가 연결되면서 가볍게 튀던 동작들이 무게를 잡기 시작했다. 이는 신무용과 전통무용 전체를 아우르며 한국춤을 집중적으로 학습한 현대 무용수들의 기량과 예술관으로부터 영향 받은 부분도 있을 것이다. 또 사랑을 느끼는 두 남녀의 정경을 묘사하는 데 주목했던 초기 작품에 비해 설렘, 슬픔, 안타까움, 토라짐 등 구체적인 감정선을 만나 입체적인 표현력을 취하게 된 점도 주요한 변화 양상이다.

박지혜의 전통춤 춤길(2019.3.14.),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 사진제공: 박지혜
박지혜의 전통춤공연 '춤길' (2019년 3월 14일),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
사진제공=박지혜

현재 수많은 무용수들이 추고 있는 <사랑가>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움직임의 전개 방식은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하는 동선의 사용, 몽룡의 부채로 두 사람의 얼굴 가리기, 마주 서거나 나란히 서서 같은 춤추기,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춘향의 몸 놀림과 애가 타는 몽룡, 서로의 등을 마주 대고 돌기, 몽룡 어깨에 춘향이 손을 잡고 얼굴 마주보기, 한 손 잡아 이동하기, 함께 풍경 감상하기, 몽룡이 다가서면 고개를 돌려 외면하는 춘향, 몽룡이 춘향 무릎 베고 눕기, 몽룡 가슴에 춘향이 기대 안기기’등으로 나타난다. 이를 통해 춘향과 몽룡이 각기 표현하고 있는 여성상과 남성상, 남녀의 사랑 관계가 어떤 모습을 취하는지 유추할 수 있다. <사랑가>의 원형은 발레와 모던 댄스를 적극 수용했던 신무용에 있음에도 <로미오와 줄리엣>과 같은 발레의 대표적인 남녀 이인무에서 볼 수 없는 분위기와 인물 설정이 확연하다. 춘향은 극도로 수줍어하며 닿기 두려워하는 머뭇거림을 반복적으로 보이고, 몽룡은 그에 비해 온화하고 호탕하며 감정에 솔직하게 대응한다. 또한 이팔청춘의 사랑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스킨쉽이라곤 한 손 잡기나 살짝 안기기에 그쳐, 솔직한 표현을 선호하는 젊은 세대의 공감을 얻기 어려운 동시에 예전 세대에게는 향수를 느끼게 하는 부분도 있다.

춘향과 이도령(1957). (왼쪽이 강선영, 오른쪽이 조영자), 출처: 이세기(2003), 강선영 평전_여유와 금도의 춤, p.52.
'춘향과 이도령'(1957). 왼쪽 강선영, 오른쪽 조용자.
출처=이세기(2003), '강선영 평전-여유와 금도의 춤', p.52.

결국 <사랑가>에 담긴 표현양식은 과거의 산물이며, 당대에 긍정적으로 수용되었던 남성과 여성의 태도, 사랑의 관계에서 으레 해야 할 역할을 엿볼 수 있는 일종의 역사서다. 수줍음 많고 정숙하며 아리따운 춘향이와 다정하고 적극적이며 믿음직한 몽룡이에 흠뻑 빠져 마음 편히 감상하는 측이 있는가 하면, 구식(舊式) 젠더의 재현에 반기를 들고 불편하게 감상하는 측도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신무용 작품들이 전승 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원형을 확인할 수 조차 없는 경우가 흔한데 <사랑가>는 지속적인 재창작을 거쳐 그 전형을 현재까지 가져왔으므로 민속적 소재를 활용한 신무용의 변화상을 파악할 수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인 동시에, 과거와 현대 사이 문화적 괴리를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또 <사랑가>의 원형을 조택원의 작품으로 두고 있는 만큼, 식민지 시기 서구와 일본에 의해 한국인들이 스스로를 주변화하게 된 과정을 이해하고, 춘향과 몽룡을 활용하여 외부에 한국을 드러냈던 입장과 상황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최근 월트 디즈니에서 만화영화 <인어공주>’를 실사화한 영화를 제작함에 있어 흑인 여성 배우를 주인공으로 캐스팅해 많은 사람들에게 칭찬은 커녕 맹렬한 비판을 얻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각인된 인어공주 판타지를 충족해주기는 커녕 전혀 다른 이미지를 내세워 깨부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을 보면, 굳이 <사랑가>에 대한 발칙한 시도가 필요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미 문화적으로 학습한 과거의 산물을 춤으로 확인하는 것, 모두가 이미 아는 이야기지만 자꾸만 그 춤을 무대에 올리게 되는 것에는 특정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신무용이든 전통춤이든 다양한 유형으로 현재까지 살아남은 춤들은 모두 각각의 존재 이유와 역할이 있음을 생각해 본다.

유화정 무용이론가
유화정 무용이론가
hjyoo27@gmail.com
이대 무용과 박사. 어릴 적부터 춤춰온 몸의 기억을 머리와 손끝으로 전달해 좋은 글을 쓰고자 한다. 춤추는 사람들의 경계가 해체되는 순간을 포착할 때 짜릿함을 느낀다.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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